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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Dec 16. 2022

너무 열심히 살면 안 되는 이유

열심히 살지 말기. 그냥 대충 살기

이번에 기말시험 여섯 과목은 비록 벼락치기였지만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일주일 동안 하루에 한 과목씩 시험을 치러냈다. 사실, 평소에 수업을 집중해서 들었고, 격주로 퀴즈를 보느라 틈틈이 복습을 성실하게 했고, 게다가 시험은 오픈북이라서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할 필요는 없었다. 여러 과목 중 <발달심리학>은 암기량이 엄청나서 열두 시간 가까이 책상머리에 앉아있었는데, 이 정도로 머리를 쓰고 나니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네 번째 시험을 마치고는 위기가 찾아와서 나머지 두 과목을 공부할 때는 없는 힘을 짜내느라 기운을 전부 써버리고 말았다. 결국 시험을 다 마치고는 기진맥진해서 몇 날 며칠을 멍한 상태로 보내고 있다. 이게 다, ‘너무 열심히’ 한 대가이다. 올해 내 목표는 ‘열심히 살지 말기. 그냥 대충 살기’였는데, 한순간에 원래 습관이 도져서 망해버렸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 일 아닌가? 망한 게 아니라 오히려 칭찬받을 일 아닌가? 지금 공부 열심히 했다고 자기 자랑을 떠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시는지? 물론, 이번에 시험에서 요구하는 수준보다 공부를 좀 더 강박적으로 열심히 한 이유는 따로 있어서, ‘망했다’는 표현은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은 말이긴 한다. 하지만 계획보다 무리한 것 또한 사실이기에 ‘너무 열심히’ 몰두한 나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무리하면 무리한 대로 언젠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크고 작은 후유증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것이 일이든, 사랑이든, 공부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너무 열심히 하면 안 되는 이유이고, ‘너무 열심히’ 한 나 자신을 반성한다는 것은 농담보다는 진심에 가깝다. 인생은 너무 열심히 살면 안 된다. 되도록이면 마음 가는 대로, 솔솔 부는 미풍에 잎사귀가 춤추듯이 자연스럽게 대충 살아야 한다.


무한정 게으르고 나태하고 무책임한 사람에게는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부류는 어차피 옆에서 아무리 열심히 하라고 떠들어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열심히 하라는 충고나 조언, 격려가 일상의 잔소리가 아니라 정신이 번쩍 드는 자극으로 다가올 정도의 사람이라면 이미 나태하고 무책임한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대부분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열심히 사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라 더는 ‘열심히 하라’는 격려 따위는 필요치 않다. 이렇게 저렇게 따져봐도 결국, ‘열심히’라는 단어는 일상을 살아가는데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불필요한 이 단어를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어쩌면 죽을 때까지 너무 남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미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은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늘 열심히 사는 게 몸에 배서 자신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도 안간힘을 쓰고 인내하며 열심히 살아서 몸과 정신의 피폐함이 한계에 이르렀는데도, 이 상태가 늘 익숙한 나머지 자신이 현재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경보조차 감지를 못한다는 점이다. 나는 이를 비교적 풍요로운 2022년을 살아가면서도 우리나라가 가난하던 1960년대, 1970년대 산업화 시절, 무조건 ‘열심히’ 해야지 배 곪지 않던 불안이 내재화되고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는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는, 오히려 열심히 살지 않기를 목표로 해야 할 이들이 ‘열심히 하라’는 말을 여전히 귀담아듣고 더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친다. 지나치게 열심히 사는 인생을 자기들 선에서 그치면 그나마 낫겠는데, 시대가 변했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이 ‘열심히 정신’을 후대로 대물림하며, 젊은이들은 다시 맹목적인 ‘열심’과 ‘최선’ 바이러스에 감염돼 고통의 문턱에 들어서고 만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번 기말시험처럼 여전히 ‘열심히’의 망령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몰입하는 열심히의 수준이 ‘과하게 지나침’인지, ‘지나침’인지, ‘약간 지나침’인지, ‘적정’한 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무엇이든지 열심히 해야 한다고, 그게 좋은 것,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와서 열심과 최선, 성실이 기본 삶의 태도였지만, 이제는 이 중에서 성실만 남겨놓고 기본적인 삶의 태도는 ‘적당히’, ‘대충’, ‘가볍게’로 삼기로 했다. 열심과 최선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발휘하는 강약 조절을 잘하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그럼, 나는 왜 갑자기 ‘열심히 살지 말기. 그냥 대충 살기’를 지향하게 되었을까. 올해 초, 이사를 했을 때, 이삿짐센터 직원들께서 가신 뒤 혼자 남아서 세세한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입 밖으로 ‘힘들다’, ‘쉬고 싶다’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중얼거리면서도 쉬지 않고 계속 짐 정리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직 정리가 덜 된 아수라장이 아니라, 모든 짐 정리를 마치고 먼지 한 톨 없는 깔끔한 집안에서 쉬고 싶었던 건데, 이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짐 정리를 몇 날 며칠 심지어 한 달에 거쳐서 마치기는 다반사이다. 아수라장이면 어떤가. 일단 이사는 잘 마쳤고, 정리가 좀 늦는다고, 먼지 틈새에서 좀 쉰다고 하늘이 무너지거나 온몸에 이상한 균이 번지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는다.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그냥 쉬면 된다. 그런데 나처럼 오랫동안 열심히 정신에 감염된 사람은 참고 견디는 데 익숙해서 이젠 휴식이 필요하다며 몸이 보내는 간절한 별일의 신호를 별일 아닌 것으로 넘겨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해버리고 만다.


이후, 나 자신을 관찰해보니 종종 ‘힘들다’, ‘쉬고 싶다’라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결코 쉬지 않고, 목표하고 계획한 일을 마치려고 무리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었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자신의 한계치를 넘겨서 몸과 마음을 무리해서 사용하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이다. 목표를 달성하고 계획한 일을 마쳤다는 성취감과 자부심 뒤에 결국 몸과 마음의 병도 같이 뒤따르고 만다.


돌아보니 


열정과 애정을 담아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열심히 한다 → 목표를 성취하고 결과를 인정받는다 → 더 큰 성취를 요구받는다 → 더 열심히 하려고 발버둥 친다 → 힘들다,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 → 그러나 결코 쉬지 않는다 → 완전히 소진이 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몸과 마음의 병이 난다 →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 (일/사랑/인간관계 등을) 결국, 그만둔다


어렸을 때부터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에도, 일에도, 사랑에도, 인간관계에도 강약이 필요한 법인데, 나는 열심히 정신에 사로잡혀 처음부터 끝까지 강강강강으로 나 자신을 매정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너무 열심히 공부한 대가로 10대 때는 잘 체해서 응급실에 가는 일이 잦았는데 지금도 스트레스가 심하면 위와 장의 소화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사춘기를 겪지 않아서 뒤늦은 정체감 혼란 속에서 극심한 사춘기를 겪고 있다. 너무 열심히 일한 대가로 번아웃을 겪었고, 일부 동료들의 질투를 유발해 경계를 받으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감내하다가 결국 회사를 떠나고 말았다. 마지막이 가장 상처가 깊은데, 너무 열심히 사랑한 대가로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결혼을 거쳐 이혼에 이른 결과, 화병과 가벼운 불안증을 떠안게 되었고, 삼십 대 중반에 벌써부터 혈압과 스트레스 관리에 각별히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상생활을 맞이하게 되었다.




과하게 열심히 산 보상으로 인생을 대체로 원하는 방향으로 잘 이끌어왔지만, 그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니 이처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부도, 일도, 사랑도 그처럼은 다시 할 수 없을 만큼, 온몸과 마음을 다해서 열심히 해낸 시기를 거쳐서 후회도 없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되었다.


지금껏 무턱대고 열심히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열심히 사는 게 좀 지겨워졌다고 할까. 이젠 그만 열심히 살고 싶다. 대~충 마음 가는 대로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내 책상에 선물 받은 작은 화분이 있는데, 별로 정이 안 가서 분갈이 시기가 한참 지났는데도 내버려 뒀다. 때 되면 물만 주고 그렇게 대~충 키우는데도 잎은 점점 무성해지고, 얼마 전에는 심지어 꽃까지 피웠다. 이 화분을 볼 때마다 인생 대~충 살아도 된다고 되뇌고 있는데, 과연 잘 될지는 전혀 자신 없지만, 그래도 노력해야지……가 아니라 노력하지 말고, 우리 그냥 가볍게, 대충대충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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