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셋이 필요한 순간
‘까똑’
남편이었다.
‘여보, 부탁이 있어요. 엄마가 반찬 보낸다고 했거든. 오늘 올 거예요. 정리 좀 부탁할게요.’
‘그래요, 알았어요.’
라고 답변을 마치고 현관문을 열어 보니 큰 택배 상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낑낑 거리며 택배 상자를 거실로 들여놓았다. 꽤 무거웠다. 큰 택배 상자를 가만히 쳐다봤다. 화가 났다. 배송지 주소대로 제대로 목적지를 찾아온 택배는 과연 무슨 죄를 저지른 걸까.
시어머니께서는 가끔 음식을 택배로 부쳐주신다. 직접 만든 반찬을 보내주시거나 홈쇼핑이나 인터넷 판매 식품을 결제 후 수령지를 우리집으로 하실 때도 있다. 두세 달에 한두 번 가량이니 횟수가 잦은 편은 아니다. 이번 택배는 직접 요리하신 반찬들이었다. 역대급으로 가짓수가 많았다. 심지어 직접 만드신 사과잼까지 있었다.
보내주신 음식들은 늘 잘 먹고 있다. 시어머니께서는 음식 솜씨가 좋으시고 내 입맛에도 잘 맞는다. 홈쇼핑 식품도 드신 후 괜찮았던 반찬을 보내주시는 건지 다 맛있었다. 정성과 성의는 감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의 반찬은 부담스럽다. 가족이라도 권력관계의 위, 아래는 존재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보다 권력 관계 위에 있다. 첫째, 시어머니는 며느리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다. 우리나라 장유유서(長幼有序) 문화에 따르면 나이가 많다는 자체로 권력이 작용하기도 한다. 둘째, 대체로 20~30대 자녀보다 50~60대 부모가 경제력이 높은 편이다. 셋째, 시가에서 시어머니는 기존 가족으로서 지위가 확고하다. 반면 며느리는 갓 가족 구성원으로 합류해 모든 게 낯설고 가족 내 지지기반이 전무하다.
높은 권력을 지닌 이의 말과 행동에 낮은 권력 관계에 있는 사람은 가타부타 말을 하기가 어렵다. 거부할 권리가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만드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지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해요. 잘 먹겠습니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진심이 몇 방울 추가된 말씀 드리는 정도다. 시어머니의 반찬을 처음 몇 번은 맛있게 먹다가 나중에는 ‘해치워야 한다.’라는 의무감으로 먹었다. 늘 소화할 수 있는 양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음식 상당량은 안타깝게도 음식물 쓰레기로 전락하곤 한다.
역대급 반찬 가짓수에 화가 난 이유는,
첫째, ‘만든 음식을 택배로 부친다.’는 것은 남편과 시어머니 사이에서 벌어진 협의이다. 나는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이다. 평소에도 배우자에게 ‘시어머니의 반찬이 부담스럽다, 친정 엄마도 마찬가지라 결혼 전 혼자 살 때도 본가에서 음식을 잘 받아오지 않았다.’라고 의사를 밝혀왔다. 그는 반찬을 주신다는 데 왜 싫다는 거지? 라는 태도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양가 어머니들의 반찬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결정은 자신이 내리고 정리하는 책임은 아내인 나의 몫이다? 그것도 갑자기? 내 시간에 대한 배려는?
포장을 뜯고 맞는 그릇에 담고 음식 국물을 닦는 등 정리하는데 거의 2시간이 걸렸다. 만일 이날 내가 바빠서 바로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냉동 보관이 필요한 음식도 있었다. 눈 앞에 보이는 음식을 정리를 못하고 있으니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거다. 배우자를 원망했을 것이다. 고작 이런 일로 남편을 원망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거듭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물론, 우리 두 사람이 같이 먹을 음식이고 시어머니께서도 그러라고 보내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둘째, 성인으로서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인과 미성년의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혼자 원룸에 살 때도 일찍부터 엄마의 반찬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엄마가 요리한 익숙한 반찬은 맛있고 MSG 없이 좋은 식재료를 사용해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한 집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보고 살면 모를까. 거주지를 독립한 자식의 반찬까지 부모가 신경 쓰며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게 퍽 이상하게 느껴졌다. 품을 떠난 자식을 반찬을 매개로 억지로 연결 고리를 만들어 계속 붙들어두려는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독립을 한 이상 풀포기를 뽑아 먹든, 굽는 기술이 부족해 태운 고기를 먹든, 매일 편의점 컵라면을 먹든 내 먹거리는 스스로 해결하고 싶었다. 엄마의 맛있는 별미는 본가에 갈 때 먹으면 충분했다. 반찬도 집에 갔을 때 겸사겸사 몇 끼니 정도 조금 챙겨오면 그만이었다. 엄마의 음식을 매일 먹지 못하는 대신 정성과 사랑이 듬뿍 담긴 엄마의 요리를 맛 볼 수 있는 본가에 가는 날이 기다려졌다. 새로운 설렘과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욱 요리에 정진하고자 했다. 아내이자 여성이여서가 아니다. 원룸에 살 때보다 요리를 할 여건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신혼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주방이 넓어졌다. 다양한 조리 기구를 구비할 수 있었다. 내 먹거리를 스스로 해결하기에 더 편리해졌다. 좋은 식재료를 구분하는 방법을 공부를 했다. 유튜브 요리 영상을 참고해 같은 요리를 반복하면서 시행 착오를 줄여갔다. 나만의 레시피를 완성했고 점차 만들 수 있는 요리 갯수도 늘어났다.
배우자도 같은 생각이길 바랐지만 그의 가치관은 나와 달랐다. 그는 곧잘 하는데도 불구하고 뒷정리 때문에 요리 자체를 귀찮아 한다. 자신이 먹을 음식을 스스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데는 별 감흥이 없다. 식사로 자신의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간편한 음식을 바란다. 제육볶음, 김치찌개, 김밥 등을 사먹거나 햄버거, 피자 같은 간편식, 카레, 덮밥 같은 한 그릇 음식을 선호한다. 내가 어머니들의 반찬을 싫어하는 이유를 그가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갔다. 그에게 어머니들의 반찬은 맛있을뿐더러 불편함을 줄여주는 감사하기만 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셋째, 시어머니의 반찬이 가장 싫은 이유다. 앞에서 언급한 외식, 간편식, 한 그릇 음식을 선호하는 남편의 식사 성향을 고려하면 답은 이미 나와있다. 시어머니의 음식은 요청을 드리지도, 바라지도 않았던 내가 결국 의무감으로 먹기 때문이다. 이 세상 하직한 뒤에 남긴 음식을 저 세상에서 다 먹는 죄를 받는다던데…… 저 세상의 존재를 믿지 않더라도 만든 사람의 성의를 봐서 최대한 먹고 버리는 양은 최소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밥솥에 밥이 있어도 차리는 게 귀찮아서 김밥을 사서 먹는 남편이다. 그가 냉장고에서 어머님께서 정성껏 만드신 밑반찬을 꺼내서 일일이 뚜껑을 열고 그릇에 덜어서 식사를 할 리 만무하다. 반찬 중에는 깍두기, 열무김치, 갓김치 등 김치류도 많다. 남편은 원래 김치는 거의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김치 종류도 전부 내 차지다.
안 보내주셔서 못 먹는 사람도 있는데 신경 써서 음식을 보내주시는 게 뭐가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심지어 맛도 좋으니 말이다. 자신이 다 먹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며 음식을 받아온 배우자는 한두 번밖에 젓가락을 대지 않는다. 냉장고에 음식이 잘 보관되어 있는지 썩어가는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한 사람은 거의 먹지 않으니 가뜩이나 두 사람이 소화하기에 벅찬 음식양은 두 배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 좋게 음식을 받아온 이 따로, 아까운 마음에 먹으려 노력하는 이가 따로 있다는 게 문제다.
배우자는 ‘정기적으로 햄버거를 먹어줘야 한다.’라고 했다. 결혼 후 겪은 문화 충격이었다. 나는 연중 햄버거를 먹는 횟수가 손에 꼽는다. 1년에 4~5번이 채 되지 않는 듯 하다. 피자, 치킨을 포함하더라도 월에 1회 이상인 경우가 드물어 연중 최대 12회가 되지 않는다. 직접 매장을 가거나 배달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회식, 단체 모임, 지인 약속일 때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먹는 게 고작이었다. 고기류 중 함바그, 고기완자, 미트볼은 체질에 잘 안 맞는지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했다. 햄버거, 피자, 치킨 중에서도 햄버거는 내게 가장 낮은 순위였다. 거의 먹지 않는다고 보는 게 낫겠다. 밥솥에 밥이 있고 냉장고에 밑반찬이 가득하면 집에서는 집밥을 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경우 배우자의 다음과 같은 말은 결혼 2년이 지날 때까지도 도저히 이해 불가였다.
‘아~ 오늘은 뭘 먹지? 맛있는 걸 먹고 싶네. 그래, 오늘은 햄버거다!’ 집에 맛있는 먹거리가 넘치는데 햄버거를 배달 주문 한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싶었다. 더군다나 어제 요리한 음식을 같이 맛있게 먹은 후 한 끼 정도 더 먹을 양이 남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확 상했다. ‘분명히 어제 내가 만든 김치찌개와 명란달걀말이를 맛있게 먹은 것 같았는데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인 가족이다 보니 요리를 한 음식을 최소한 두세 번, 국 같은 경우는 몇 날 며칠 먹을 각오를 한다. 어제 요리해서 먹고 남은 음식을 오늘 먹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오늘은 뭘 먹지? 맛있는 걸 먹고 싶네.’라는 말을 오해했다. ‘어제 요리해 먹은 음식이 그닥 입맛에 맞지는 않았네. 또 먹고 싶지는 않네. 오늘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네.’라는 의미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그의 말이 음식을 준비한 내 성의를 무시하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순전히 그는 나와 달리 1일 1고기를 추구하는 햄버거, 피자, 치킨, 각종 고기류, 스팸을 사랑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걸.
넷째, 이제는 극복한 내 마음속 편견들 때문이었다. 시어머니의 반찬을 볼 때면 ‘내가 자기 아들 잘 못 먹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초에는 스스로 내면화한 가부장제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전형적인 가부장제 가정 환경에서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나도 주5일 출근을 하고 배우자보다 연봉도 높으면서 남편의 아침밥은 내가 챙겨야 한다는 무리수 섞인 생각을 했다. 정작 남편은 아무런 기대도, 강요도 없었다.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출근하는 게 결혼 로망이라거나 그 비스무리 한 기색조차 내비친 적도 없었다. 언젠가 한 선배가 결혼 직후 아내가 한 달 동안 매일 아침을 차려줘서 감동을 받았고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딱 한 달이 되는 날 아내가 ‘여기까지라고. 이제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고 했다. 당시에는 그녀가 현명하고 멋있다는 생각에 기억하고 있었다. 나도 결혼을 하게 된다면 배우자에게 한 달 동안 매일 아침을 차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 지어낸 마음속 쓸데없는 편견과 압박감은 이 연장선에 있었다.
시어머니께서 낮에 근처에 일이 있어서 오신 김에 자신의 아들(남편)을 만나러 잠시 우리집에 들르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가장 먼저 냉장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살림 고수인 시어머니께서 우리집 냉장고를 열어보셨으면 어떡하지? 한번 쭉 훑어보시면 단번에 살림하는 집 냉장고가 아닌 게 파악이 되셨을 텐데. 두 달 전에 주신 오징어채와 콩자반은 거의 먹지 않고 보내주신 그대로 있었을 텐데. 밑반찬과 채소 등 기본 식재료 보다 맥주, 주스, 케이크, 인스턴트 피자, 고기류 등 간식과 간편식이 더 눈에 띄셨을 텐데. 내가 살림 못하고 우리 둘 밥 굶는다고 생각하시는 거 아니야? 라고 짧은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이런 제 발 저림은 ‘So What?’, ‘그래서 뭐 어쩔 건데?’라는 생각으로 해소되었다. ‘어머님께서 냉장고를 열어보셨으면 어떡하지?’ So what? 자식이라지만 남의 집 냉장고를 왜 열어보는데? 검사하려는 태도가 이상한 거 아니야? 분명한 월권이라고. ‘살림 안 한다고 생각하시면 어떡하지?’ So what? 나도 회사를 다닌다고. 전업주부인 어머니와는 다르다고. 게다가 집밥을 먹지 않는 건 내가 아니라 그녀의 아들이라고. 우리집 살림 책임은 나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녀의 아들과 며느리, 둘 모두에게 있다고. 이게 우리가 사는 방식이라고.
시어머니의 의사나 의도와 상관 없이 ‘So What?’으로 생각을 했다. 익숙하되 불편했던 성 역할 고정관념에 관한 편견을 깨고 내적 갈등을 정리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더이상 ‘시어머니께서 내가 자기 아들 밥을 잘 못 챙긴다고 생각하시는 건가?’라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내가 구매해도 되는 홈쇼핑이나 인터넷 식품을 택배로 보내주시면 ‘우리가 생각나서 맛있게 먹으라고 보내주셨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시어머니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진심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쨌든 남편의 택배 음식 정리 요청을 수락한 상황이었다. 죄도 없이 따가운 눈총을 견디던 택배 상자를 열기로 했다. 마인드셋이 필요한 순간이다. 불쾌한 감정을 뒤로한 채 택배 정리를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면서 머리를 식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사실 나는 착착 물건 정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과정도 즐겁고 깔끔하게 정리된 결과물을 보면 쾌감을 느낀다. 내게 정리란 일종의 놀이 같다.
어차피 사랑하는 배우자가 먹을 음식이지 않은가. 택배로 보내진 완성된 음식 정리가 어려운 일인가. 재료를 직접 장만해 요리 하는 과정이 번거롭지. 시어머니의 음식 중 파김치가 무척 맛있었다. 정리를 하던 중 한 꼬집 맛보았는데 밥도둑이었다. 파김치 하나만으로 밥 한 공기를 뚝딱할 수 있을 듯했다. ‘아싸! 남편은 파김치에는 손도 대지 않겠지. 김치를 거의 먹지 않으니까. 이건 내 차지다!’ 이토록 단순한 인간이었던가. 내 모든 분노와 오해는 파김치 하나로 완전히 사라졌다.
정리를 마치는 데 두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순전히 음식 정리에 1시간 30분, 택배 뜯기, 음식이 담긴 봉투 처리, 마지막 바닥 청소 등 뒷정리에 반 시간 정도가 걸렸다. 바닥 닦기, 설거지 하기 등 본 활동은 집안일의 일부분이다. 바닥 닦은 걸레 빨아서 널기, 설거지 후 개수대와 싱크대 청소, 마른 그릇 정리하기 등 뒷정리에 소모되는 에너지와 시간이 만만치 않다.
남편은 분명히 택배 음식 정리가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부탁을 했을 거다. 택배 상자를 뜯어서 음식을 냉장고에 넣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을 거다. 실제로 그는 나중에 나 혼자 두 시간 넘게 정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흠칫 놀랐다. 나도 남편 생각처럼 정리가 이토록 고될 줄은 몰랐다. 가짓수가 많고 음식 국물이 흐르는 요리가 다수였기 때문이다. 알았다면 냉동 보관을 해야 하는 음식만 냉동실에 넣는 선에서 마무리했을 것이다. 나머지는 포장을 뜯지 않은 채로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남편과 같이 정리를 했을 것이다. 이날은 판은 벌어졌고 하나 둘 정리를 하다 보니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남편을 끌어들여 두 번 정리하지 말고 한 번에 끝내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해 무리를 했다.
체력이 고갈되고 몸이 고될수록 시어머니 생각이 났다. 다 만들어져 포장된 음식을 뜯어서 그릇에 담는 정리도 힘이 들었다. 직접 음식을 하나 둘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이 들어 갔을까. 온라인 또는 마트에서 일일이 재료를 골라 주문을 하거나 사온다. 재료를 씻고 다듬어 깎고 자르는 손질을 한다. 준비된 재료를 끓이고 졸이고 무쳐서 요리를 완성한다. 하나씩 포장을 한 뒤 택배 상자에 담고 아이스팩을 넣어 우체국에서 택배를 부친다. 보통 정성이 아니었다.
윗세대인 엄마들은 가족의 먹거리를 책임져왔다. 그들에게 나물 무침, 오징어채, 무채, 콩자반, 장조림 등 밑반찬은 특별한 요리가 아니다. 너무 자주 만들어서 밑반찬 하나 정도는 금세 뚝딱뚝딱 완성한다. 하지만 밑반찬이 간단하다면 간단하지만, 번거롭다고 생각하면 만들기에 그렇게 번거로울 수가 없다. 나도 요리를 자주 하기에 조리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시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음식들을 내가 직접 요리 한다고 상상을 했다. 몇 날 며칠까지는 아니지만 하루 또는 이틀은 꼬박 걸릴 갯수와 양이었다. 시어머니 덕분에 공짜로 한 달 치의 식량을 확보한 셈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시어머니의 음식에서 자식을 생각하는 무던한 마음이 느껴졌다. 뭉클하고 감사했다. 괜히 미움을 산 택배에게 미안했다.
귀가한 남편이 ‘네가 직접 레몬청 담그듯이 이번에 엄마가 사과잼도 직접 했다고 하시던데. 코로나 때문에 정말 심심하셨나 봐.’라는 말을 했다. 아하! 택배 상자가 유난히 무거웠던 이유였다.
*위 내용과 많은 분들이 남겨주신 댓글을 참고해서 좀 더 정리한 생각을 내레이션을 넣어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영상도 살펴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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