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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21. 2023

"나한테 돈 말고 해준 게 뭐가 있어?"

(마음의) 묵은 빚 청산

“아빠가 나한테 돈 말고 해준 게 뭐가 있어?”

“우리 부모님은 돈 밖에 몰라. 아마 내가 사라져도 모를걸?”


드라마에서 애정결핍 부잣집 자식이 할 만한 대사가 부모를 향한 내 결핍이자 현재의 마음이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 경제적 결핍이 큰 부모님은 자식만큼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없는 힘을 쥐어짜서 살았다. 실제로는 인생의 부침 가운데 경제적 곤란을 겪기도 했지만 부모로서 자식에게 티를 내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부모의 보호와 노력 덕분에 나는 경제적 결핍을 모른 채 성장했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부자를 향한 콤플렉스나 돈에 대한 집착 없이(그러나 돈의 가치와 중요성, 돈이 가져오는 행복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가 경제적 책임을 다 했다는 것.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 나에게는 묵직한 부채감의 근원이었다. 아버지가 번 돈으로 먹고 입고 자고 교육받았으면서 (폭력적인) ‘아버지’를 수용하지 못하고 거부하는 마음이 익숙한 죄책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문득, 아버지에게 받은 경제적 지원은 어린 내가 그 사람의 강압적인 폭력을 견딘 대가로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고, 술 취한 자신을 가족들이 이해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합리화한 사람이다. 가족들이 자신이 번 돈으로 생활하기에 술주정을 견뎌야 한다는 것 – 다른 아이들은 거저 주어졌을 의식주 등의 해결이 나에게는 부모의 학대와 방임을 견딘 대가로 주어졌고, 이는 다름 아닌 사실이다. 내 오랜 부채감이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싹 사라졌다. 성인이 돼 지원받은 대학 등록금 등의 돈은 위자료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빠가 나한테 돈 말고 해준 게 뭐가 있어?”라는 일말의 기대와 원망이 섞인 말은 사실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에게 정말로 돈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 사람들이다. 공감적 지지, 정서적인 이해와 수용 등은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물질적 지원이 전부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 부모와 나 사이에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주고받을 것들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비로소 부모를 향한 내 왜곡된 묵은 마음의 빚을 청산했다.


과거의 아버지의 술주정과 정서적 학대, 엄마의 폭력 옹호와 학대, 방임이 없었다면. 아니, 아빠가 근래라도 정신 차리고 술을 끊었다면…… 비록 지워지진 않아도 과거의 상처를 묻어두고, 엄마의 자식을 향한 포기하지 않는 집착을 견디면서(접촉 횟수가 잦지 않으니까) 부모님과 좋은 일은 나누고 가끔은 볼멘소리도 하면서 그럭저럭 관계를 이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단언컨대 나에게 이런 기회는 주어질 것 같지는 않고, 이제야 현실을 받아들이는 단계인 것 같다.


한편, 아빠는 만취하면 할머니에게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라며 면전에 대고 분노감을 폭발하고는 했는데, 나는 "아빠가 나에게 돈 말고 해준 게 뭐가 있느냐"라며 글로 감정을 터뜨리고 있다. 결핍과 화의 대물림이다. 세대를 거치면서 대물림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내 세대에서 아주 조금은 더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동생들까지 생각하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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