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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22. 2023

이제는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

부모와 꼭 다르게 살고 싶은 한 가지

부모를 향해 수십 년간 쌓인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이 제법 정리된 것 같다. 사랑과 보호, 학대와 방임을 오간 부모에게 느낀 혼란스러운 양가적인 감정도 부풀리거나 축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바라보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지운 채 이제는 ‘괜찮다’고 믿으며 애써 밝게 웃으며 살고자 했다면, 이제는 과거의 아픔과 고통을 간직하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들 가운데 “나는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 “나는 아빠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라며 부모와 다르게 살기를 목표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는 않다. 무의식에서 은연중에 부모와 달리 살기를 지향하며 삶을 이끌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어찌했든 내 인생은 이미 부모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같지 않고, 나는 부모와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매우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나로서 살아가고 있기에 부모와 굳이 비교할 필요성을 느끼진 못하지만, 부모에게 물려받은 단점 하나는 꼭 고치고 싶다. 바로 ‘매사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기’이다.




부모님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감사함을 모르고 만족할 줄 몰라서 매사가 불만불평인 사람들’로 나타내고 싶다. 가만 보면 이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집의 내력이기도 하다. 할머니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면 40년 가까이 아들, 며느리의 부양을 받고, 아들 부부 대신 안방을 차지해 안정된 편안한 노후를 누리시면서도 걸핏하면 값비싼 모피코트 타령을 하고 계시다. 어릴 때는 고모들이 할머니와 소원한 것이 의아했는데, 아마 내가 우리 부모에게 느낀 불편감과 서운함을 고모들은 똑같이 할머니에게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빠는 딸인 나는 (여자애가) 애교가 없고 사근사근하지 않다며 싫어했고, 아들인 동생은 (남자애가) 말이 많고 수다스럽다며 싫어했다. 만일 내가 수다스럽고 남동생이 과묵했다면 어땠을까. 장담컨대 이때는 또 다른 트집을 잡아서 자식을 깎아내리려고 했을 것이다.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책에서도 썼지만, 내가 저녁 식사에서 수다스럽게 떠들어대자 이번에는 자기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라고 ‘계집애가 시끄럽게 쫑알쫑알 댄다’며 버럭 화를 낸 전적이 여러 번 있기도 하다. 공부를 잘하는 자식은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자신을 무시할까 염려했고, (자기 기준에서) 공부를 못하는 자식은 한심하다며 싫어했으니, 아빠의 자식은 뭘 하더라도 결국 아빠 마음에 들 순 없을 것이다.


엄마는 성인이 된 자식이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는 것, 담배를 피우는 것 등 – 지극히 개인적인 기호이자 취향조차 인정하지 못해서 애써 실망감과 화난 감정을 감추는 대신 몸을 부들부들 떠는 사람이다. 엄마는 우리가 초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성적도 좋고 학교에서 인정받으며 선생님의 칭찬도 듬뿍 받아 주변 엄마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고 했다. 엄마는 동생이 오랫동안 아프고 현재 자식들과 관계가 틀어진 것을 ‘이때 자신이 너무 행복해서 지금 벌을 받나 보다’라고 했는데, 나야말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느라 혼이 났다. 엄마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아빠의 술주정이 극에 달해 우리 삼 남매가 인생에서 가장 공포와 불안에 떨던 시기였다. 엄마는 과거 너무 행복해서 현재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보호하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유기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써 현재에 이른 것이다. 엄마는 순진한 얼굴로 진지하게 어쩜 이렇게 눈치 없이 분노를 자극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지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이제는 어른의 시선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삼 남매는 꽤 괜찮은 아이들이었다. 아니, 이모저모 따져볼수록 상당히 훌륭한 아이들이었는데, 엄마, 아빠는 왜 우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않았을까. 딱히 말썽을 피운 적도 없고, 무리하게 뭔가를 사달라고 떼를 쓴 적도 없고, 엄마가 하라는 대로, 선생님과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착하게 순응하며 살았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었을까. 무뚝뚝하면 무뚝뚝한 대로, 수다스러우면 수다스러운 대로, 머리를 염색하면 염색한 대로 사랑의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 예쁘게 봐줄 순 없었을까. 사소한 것에 집착해 몸서리치게 불평을 토로하다 타인(자식)을 통제하는 데 실패해 불행을 자처하는 것 – 나는 이를 ‘가진 것(우리 부모의 경우, 자식들)의 소중함을 잊고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매사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다면 어떻게 어땠을까. 부모님의 인생은 그들이 믿는 대로 정말 억울하고 힘든 게 맞을까. 아빠는 가족들 때문에 자신이 고된 일을 견뎠다며 평생을 억울해하고 있는데, 자신이 번 돈으로 가족들이 의식주를 해결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자식들의 미소와 웃음에서 보람을 느끼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술주정으로 자식들에게 영원한 상처를 입히는 대신 아빠 자신도 그토록 바랐던 자식들과 살가운 스킨십과 애정표현을 주고받는 다정하고 예쁜 추억을 켜켜이 쌓았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시어머니를 평생 어려워하고, 안방을 내드리고 살림을 간섭받는 억울함에 사로잡혀 있다. 게다가 남편은 알코올 의존증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엄마는 남편이 경제적 책임을 다했기에 거친 생계 전선에 뛰어들지 않을 수 있었다. 일찍이 주거도 안정돼 전전긍긍 이사 다닐 걱정을 한 적도 없다. 착한 자식들은 엄마 말을 잘 따르고 학교에서도 인정받으며, 주위 사람들은 자식 잘 키웠다며 부러워했다. 시어머니는 비록 껄끄럽지만, 집안일을 분담해 수고로움을 덜며, 때때로 삼 남매 양육을 돕기도 했다. 살림 간섭도 달리 보면 자신보다 살림을 더 잘하는, 할 일 없이 노는 시어머니에게 맡겨 버리면 오히려 여유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도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따른 상처는 여전히 아프지만, 위험하고 험한 일에 내몰린 아빠의 불안감과 고통, 끝없는 자기혐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가족을 향한 무거운 짐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고 가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인 경제적인 책임을 다한 아빠에게 이것만큼은 진심으로 감사하고, 내심 존경심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엄마는 자녀를 양육하는 역할에서 제대로 먹이는 것 외에는 대체 뭘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남편은 돈 잘 벌고, 자식들은 말 잘 듣고, 시어머니는 살림과 육아를 돕는 환경에서 엄마야 말로 없는 문제를 만들어서 문제 삼느라 전업주부로 종일 집에 있으면서도 자녀들에게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거나 소통을 하지 못하고, 애먼 데 온갖 에너지를 쏟느라 귀한 인생을 낭비하고 살진 않았나 싶은 생각이다.



총 2개의 글로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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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자세한 책 소개는 각 온라인서점을 확인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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