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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an 22. 2024

관계란 기억의 총합

2년 만에 엄마에게서 걸려 온 전화 한 통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제발, 나를 한 번만 만나달라’

‘돌이켜보니 내가 정말 부족했다.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모른다’

‘네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다’

‘네가 꿈에 나오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다’

‘분명 만나서 이야기하면 좀 다를 거다’


헤어진 전 애인이 술 취해 한밤중 전화로 지껄였을 법한 아무 의미 없고 난감하기만 한 말을

나는 한낮에 2년 만에 걸려온 엄마에게서 듣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안쓰럽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스토커와 다름없는 말들에 소름이 끼쳤다.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700일이 넘는 날들 동안

예상은 했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의 모습이

안타깝고 잠시 서글펐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나에게 시달리며

여전히 지옥을 헤매고 있다는 자기 고백에

의도치 않은 사소한 복수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고소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엄마를 만나고 있지 않다고 믿었는데

실은 나와 엄마의 관계의 열쇠는 엄마가 쥐고 있었다.


엄마가 나(자식들)에 대한 집착을 놓고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비로소 단절된 관계가 의미 있는 관계로 변할 수 있는 거였다.


내가 평생 엄마에게 바란 것은

‘엄마의 행복’이었는데

달리 말하면

‘집착의 올가미에서 제발 나를 놓아주세요’

‘당신과의 관계를 나는 감당할 수 없어요’라는

저항이자 발버둥이었다.


엄마는 자신도 이제 나이도 들고 해서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고 했는데

나야말로 그에 대한 모든 기대, 심지어 실망감과 원망감마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희미해지는 것 같다.


관계란 결국에 기억의 총합인데

기억 속 엄마는 늘 무표정이고 웃고 있어도 어딘가 슬퍼 보이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울고 있다.

평생 술독에 빠져 살고 있는 아빠와의 몇 개 없는 추억에서

오히려 참으로 따듯하고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는 한다.

엄마와의 좋은 추억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마음이 아리고 조금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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