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엄마에게서 걸려 온 전화 한 통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제발, 나를 한 번만 만나달라’
‘돌이켜보니 내가 정말 부족했다.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모른다’
‘네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다’
‘네가 꿈에 나오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다’
‘분명 만나서 이야기하면 좀 다를 거다’
헤어진 전 애인이 술 취해 한밤중 전화로 지껄였을 법한 아무 의미 없고 난감하기만 한 말을
나는 한낮에 2년 만에 걸려온 엄마에게서 듣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안쓰럽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스토커와 다름없는 말들에 소름이 끼쳤다.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700일이 넘는 날들 동안
예상은 했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의 모습이
안타깝고 잠시 서글펐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나에게 시달리며
여전히 지옥을 헤매고 있다는 자기 고백에
의도치 않은 사소한 복수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고소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엄마를 만나고 있지 않다고 믿었는데
실은 나와 엄마의 관계의 열쇠는 엄마가 쥐고 있었다.
엄마가 나(자식들)에 대한 집착을 놓고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비로소 단절된 관계가 의미 있는 관계로 변할 수 있는 거였다.
내가 평생 엄마에게 바란 것은
‘엄마의 행복’이었는데
달리 말하면
‘집착의 올가미에서 제발 나를 놓아주세요’
‘당신과의 관계를 나는 감당할 수 없어요’라는
저항이자 발버둥이었다.
엄마는 자신도 이제 나이도 들고 해서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고 했는데
나야말로 그에 대한 모든 기대, 심지어 실망감과 원망감마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희미해지는 것 같다.
관계란 결국에 기억의 총합인데
기억 속 엄마는 늘 무표정이고 웃고 있어도 어딘가 슬퍼 보이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울고 있다.
평생 술독에 빠져 살고 있는 아빠와의 몇 개 없는 추억에서
오히려 참으로 따듯하고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는 한다.
엄마와의 좋은 추억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마음이 아리고 조금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