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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pr 29. 2024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4)

자기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것 ①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요시다 아키미의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세 자매 사치, 요시노, 치카가 아버지 부인되는 사람의 삼촌에게 연락을 받고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15년 전,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났고, 이후로 세 자매는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다.


아버지를 그나마 기억하는 첫째 사치는 아버지를 ‘너무 좋아서 몹쓸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친구 보증 섰다가 빚을 다 떠안고, 괜한 동정심을 베풀었다가 다른 여자와 살림까지 차려서 엄마와 자신들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웃과 타자에게는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었지만, 가족에게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사람이었다.


이들은 장례식장에서 이복동생 스즈를 만난다. 어른스럽고 야무진 중학생 스즈는 왠지 모르게 표정이 굳어 있고 불안해 보인다. 앞으로 스즈는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스즈의 새엄마는 말끝을 흐리며 도의적인 대답을 한다.

“무…… 물론 같이 살아야죠. 가족이니까요. 애들(스즈의 이복 남동생 두 명)도 잘 따르고 남편이 아픈 뒤로 집안일도 잘 도와줬고…… 정말 야무진 아이거든요.”

부모님의 이혼 계기가 된 스즈의 엄마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스즈를 데리고 이 유약하고 의존적인 여자와 다시 재혼을 해 살다가 본인도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유약하고 의존적인 엄마 때문에 일찍 철들 수밖에 없었던 큰 언니 사치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의연하고 착한 아이로 살아야 하는 스즈에게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마주하고, 스즈에게 자기들과 같이 살기를 제안한다.


낯선 이복 언니들의 집에 온 스즈는 늘 그랬듯 야무지게 제 역할을 다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럽고 무표정이다. 어느 날, 셋째 언니 치카와 대화를 나누다 집에서 담근 매실주를 맛보는데, 순한 줄 알았던 매실주는 술을 좋아하는 둘째 언니 요시노가 소주를 잔뜩 부은 독주였다. 독한 매실주 한잔에 스즈는 기절하고 놀란 언니들은 달려온다.


- 스즈: 더워…… 속 메슥거려! (파닥파닥파닥파닥 발버둥 치며) 요코(새엄마) 아줌마 싫어! 아빠 바보! 그리고 꼬맹이들도 정말 싫어! 말도 진짜 안 듣고, 내 동생도 아니고. 내가 알 게 뭐야!


어쩌다 마신 술기운 때문이지만 스즈는 언니들 앞에서 처음으로 투정을 부리며 그동안 억눌린 감정을 분출하고, 중학생 아이 다운 [솔직한] 모습을 내보인다.


- 사치: 치카도 잘못했지만 스즈, 어린애한테 술은 독이나 마찬가지야. 앞으론 절대 마시면 안 돼!

- 스즈: 하지만…… 난 그런 거 처음이었단 말이야. 집에서 담근 매실주 마셔보고 싶었어.

- 사치: 올해는 벌써 매실을 다 따버려서 안 되지만, 내년에 술 안 넣고 스즈가 마실 매실주 담가줄게.

- 스즈: 우와, 신난다. 빨리 따고 싶어!


큰 언니 사치에게 훈계를 들은 중학생 스즈는 고분고분하기만 하던 예전과 달리 집에서 담근 매실주 마시기가 소원이었다고 자신의 속마음을 또렷이 밝힌다. 늘 경직돼 있고 존댓말은 쓰던 스즈는 자신이 마실 매실주를 담글 1년 뒤가 기다려지고 ‘신난다’라며 이제는 언니들에게 반말로 자신의 들뜬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한다. 이처럼 스즈가 자기 본연의 반짝이고 고집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되찾으면서, 스즈와 언니들 사이의 경계도 허물어진다.




오랫동안 내 약점이라고 생각한 아버지의 알코올 의존증과 이 때문에 받은 깊은 마음의 상처를 털어놓은 최초의 사람은 전남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심지어 오랜 친구들에게조차 이를 말하지 않은 건 일단은 별로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라 굳이 말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있었고, 말하고 싶은 또는 말해야 하는 순간에도 애써 태연한 척 감췄던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까 봐, 이해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지나치게 목에 힘을 주고 센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며, 비록 절친한 친구이더라도 (무의식적인 익숙한 습관에서 비롯한) 밝은 척, 괜찮은 척 어느 정도 이상으로는 가까워지지 않도록 친밀함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어떤 이들은 내가 부모님께 사랑을 넘치게 받아서 해맑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고 오해하기도 했는데, 이는 아버지의 정서적 학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통, 아픔, 외로움, 불안,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하고 현실을 왜곡해 기쁨,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정서가 과하게 활성화된 것이 굳어진 결과였다. 밝은 성격은 내 마음의 상처와 외부의 부정적인 시선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 기제였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스즈가 언니들과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계속 존댓말을 쓰며 어른스럽고 공손하게 살았다면 어땠을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배려하고, 제 몫의 역할을 묵묵히 다 하고, 눈치가 빠르고, 책임감 있는 스즈는 주변 사람들과 무난하게 두루두루 잘 어울리고, 일도 그럭저럭 잘하는 좋은 어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상상 속 가상의 스즈와 마찬가지로 나도 무난하게 착하고 좋은 사람, 책임감 있고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주변의 인정을 받으며 그럭저럭 별 탈 없이 살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밝고 긍정적인 겉모습과는 달리 내면은 뭔가 늘 긴장되고 조마조마한 상태로 사회적 성취나 주변의 신뢰와 인정으로는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허기와 결핍, 공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거짓과 가식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것은 정직하고 명쾌한 자아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다. 거짓과 비밀은 우리를 짓눌러서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질환을 유발한다. 지금까지 거짓말을 밥 먹듯 해온 사람은 정직한 생활을 하게 되면 이런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부담이 깡그리 사라지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_벨 훅스, <All about Love(이영기 옮김, 책읽는수요일, 2012.10)> 84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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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는 거짓 자아에서 벗어나 자기 감정에 솔직해진 뒤 일어난 구체적인 내외적인 변화의 경험담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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