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로즈가 칼과 결혼했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주변 사람을 파괴하는 '나르시시스트'의 특징
만일 로즈가 잭과 인연이 닿지 않은 채 예정대로 칼과 결혼했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극과 극의 성향의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히며 불행한 결혼생활을 맞이했을 것이다.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한 로즈는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지배와 복종을 강요하는 칼을 견디지 못하고 결혼 전처럼 매사 맞서서 갈등을 겪다가 어쩌면 매 맞는 아내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테이블을 뒤엎거나 섣불리 타인에게 총을 겨누는 칼이기에 충분히 설득력 있는 상상이다.
그나마 칼은 배우자에게 재정적인 지원은 아끼지 않는 사람이므로, 로즈는 칼과 쇼윈도 부부로서 남남처럼 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사 모으고 후원하는 데서 삶의 이유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칼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다면 아이를 돌보고 사랑하는 데 삶의 목적을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약혼식을 앞두고도 이미 자기 인생은 다 산 듯 보인다며, 인생을 비관해 죽으려고 할 만큼 절박하고 감정적으로 무너진 로즈였기에 결혼생활에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가능성도 높다. 죽기 전에 잭 같은 사람과 사랑에 빠져 남편을 배신하고 불륜을 저지른 부도덕한 여성으로 사교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원래 영화 내용처럼 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르고.
부(富)와 돈, 좋은 직업, 멋진 외모, 달콤한 말, 권력과 사회적 지위 등에 현혹돼 자기를 통제하고 착취하려는 사람에게 자신을 기꺼이 내주는 관계는 비일비재하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비교적 자신과 타인을 객관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는 로즈는 신분제의 잔재에 따른 시대와의 불화라고 할 수 있지만,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시대를 살면서도 화려한 겉모습과 과도한 친절 이면에 자기 자신에게 순응하고 복종하기를 바라는 칼 같은 사람에게 길들여져 로즈의 엄마처럼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구속과 속박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만일 자신이 칼 같은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나르시시스트와 반복적으로 엮이는 경향이 있다면, 자신이야말로 로즈의 엄마처럼 겉으로 보이는 것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의존적인 사람은 아닌지, 허영심이 강하고, 별다른 노력 없이 달콤한 열매만 거저 얻으려는 무임승차의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 지 자기 자신을 꼭 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만일 자신을 통제하고 소유하려는 사람에게 외롭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의존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자기 자신 또는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것으로 비용을 치르게 된다. 그나마 칼은 진짜 재벌이고 당시의 결혼관에 따라 배우자가 순종하면 평생의 재정적 안정을 보장하는 사람이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의 겉모습을 실제보다 부풀린 감정 사기꾼의 감언이설에 넘어가면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오랫동안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50캐럿의 다이아몬드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진실한 관계는 결코 돈으로 거저 얻을 수 없는 법이다.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자신이 과도하게 중요하다는 느낌, 존경에 대한 지나친 요구, 타인에 대한 공감 결여가 장기간 나타난다. 이들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며, 자신에 대한 비현실적인 과대평가로 특권 의식을 나타내고, 타인을 착취하거나 무시하기를 좋아하는 부류이다. 그러나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특성과 달리 자기애가 강해서 치명적인 부정적인 결과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겉으로는 평화주의적이거나 온순하고 순응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 이유 없이 타인에게 특별 대우나 복종을 바라는 비합리적인 기대가 매우 크다.
- 자신은 특별한 존재이므로 특별하거나 상류층인 사람과만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무한한 성공, 권력, 탁월함, 아름다움, 이상적 사랑 등에 대한 환상에 집착한다.
- 과도한 찬사와 끊임없는 인정을 요구한다.
- 목적 달성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착취적 인간관계를 맺는다.
- 사람들이 자신을 질투한다고 믿고, 자신 또한 타인을 강렬히 질투한다.
- 공감 능력이 결여돼 타인의 욕구와 감정을 인식하거나 확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병적인 자기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 ‘외현적 자기애(Overt Narcissism)’는 제삼자가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만큼 자기애적 속성이 잘 드러난다. 외향적이고 자신만만하며, 타인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자기주장을 한다. 흔히 생각하는 ‘나르시시스트’가 외현적 자기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 ‘내현적 자기애(Covert Narcissism)’는 겉으로는 잘난 척하거나 거만한 자기애적 특성이 안 드러나지만, 내면의 깊숙한 곳에 자기애적 특성이 자리잡고 있다. 내향적이고 수줍은 성격으로 보이지만, 주변의 시선에 예민해 타인의 반응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평생 유병률은 1% 미만이며, 진단되는 사람의 약 50~75%는 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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