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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y 20. 2024

<타이타닉> 로즈가 재벌 2세 칼을 끝내 거절한 이유

구속과 속박은 사랑이 아니다

명문가 아가씨 로즈는 왜 재벌 2세 칼 하클리에게 끝내 마음을 열지 못했을까. 마땅한 정착지도 없는 떠돌이 예술가 잭은 만난 지 며칠 만에 그리 쉽게 받아들이면서, 56캐럿의 고귀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바칠 정도로 자신을 위하는 칼에게는 왜 매정하게 돌아섰을까. 칼과 로즈의 관계에서 사랑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무시무시한 소유욕과 통제 욕구를 짚어보려고 한다. 자기 자신과 현재의 연인 혹은 과거의 애인, 부모님, 직장 동료와 상사, 친구 등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칼과 로즈, 로즈의 엄마에게 투영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만일 로즈가 잭의 존재를 모르고 결국 예정대로 칼과 결혼했다면, 로즈의 인생은 어땠을지 상상해 보고자 한다.




칼과 로즈의 성격 차이는 영화 초반 예술 작품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에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로즈는 자신의 선실을 색감이 부족하다며 (극 중에서는 무명 또는 신인 작가로 암시되는) 피카소의 작품으로 꾸미면서 ‘꼭 꿈속에 있는 것 같은, 진실은 있지만 논리는 없는 멋진 그림’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칼은 로즈의 말을 전혀 경청하거나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피카소의 그림은) 유치한 돈 낭비였다며, 장담하지만 앞으로도 돈 한 푼 안 될 것’이라고 오로지 자본의 논리로 재단해 자기주장만 늘어놓는다. 로즈는 아직 사람들이나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않은 한 인간의 가치와 잠재력을 꿰뚫는 안목을 지녔지만, 칼은 모든 인간을 오직 돈이 될지 안 될지, 자신의 사업과 지위를 확장하거나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인간을 도구적 잣대로 평가하는데 익숙한 물질만능주의자이다.


사건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곤란한 상황을 돈으로 간편하게 해결해 소모적인 실랑이(갈등)를 차단(회피)하거나,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압도적인 물질적 보상을 앞세우는 등 ‘세상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칼의 확고한 신념은 영화 전반에 걸쳐 일관성 있게 드러난다. 배에 짐을 싣는 터미널을 안내하는 담당자에게 능숙하게 돈을 쥐어 주며 당신을 믿겠다고 말하고, 타이타닉에서 떨어질 뻔한 로즈를 구한 잭에게도 처음에는 곧바로 돈으로 보상하려고 한며, 부족한 구명정을 확보하고자 일등항해사 머독을 돈으로 매수한다. 대양의 심장이라는 (극 중 설정상) 루이 16세가 걸던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로즈에게 선사하며 환심을 사려는 것도 결국은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돈으로 움직이고 통제하려는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성이면서도 시대를 앞서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추구하고, 사람 사이에 무엇보다 정신적인 교감을 중요시하는 로즈와 여성을 귀여운 종달새 같은 존재로서 남성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소유물로 바라보는 가부장적 시대의 가치관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내재화하고, 정서적인 공감 능력은 거의 0에 수렴하며, 오로지 겉으로 드러나는 돈과 권력, 사회적 지위에 천착하는 칼은 결코 서로 융화할 수 없는 양극단에 선 인물들이다.




사실, 칼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자기 주관이 뚜렷한 고집 센 젊고 아름다운 로즈가 아니라, 여자에게는 선택권이 없고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은 당연하다는 시대적 가치관을 불편감 없이 수용하고, 명예와 돈, 가문, 상류층으로서의 특권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매일 우아하게 치장하고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산해진미를 맛보고 귀부인들과 사교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가십과 타인 험담을 나누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자 기쁨인 로즈의 엄마이다.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며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칼과 로즈의 엄마는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꼭 닮았다. 칼은 로즈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어주며 ‘이것은 왕족을 위한 보석이고, 우리가 바로 현대의 왕족’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로즈의 엄마는 구명보트가 부족해 승객 절반이 죽을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조차 구명정에는 1등급은 없는지 붐빌까 봐 염려된다는 한심하고 편협한 소리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지껄인다. 타인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욕구가 강한 칼과 자유 의지 없이 남자에게 ‘의존’해 자신의 끝없는 ‘허영심’을 충족하면 삶이 만족스러운 로즈의 엄마는 천생연분이다. 만일 자신들이 현대판 왕족이라고 굳건히 믿는 이 둘이 결혼했다면, 거의 한몸이나 다름없는 나르시시즘의 두 사람은 물질적 결핍 또는 경제적 궁핍에 처하지 않는 한 별다른 갈등 없이 평온하고 만족스럽게 살았을 것이다.그러나 물질적인 과시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즉, 체면이 너무나 중요한 내면이 곤궁하고 자아가 약한 사람들인 만큼 재정적 위기가 조금이라도 닥친다면 둘의 관계는 모래성처럼 쉽사리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실제로 칼은 소원대로 부모가 일군 미국에서 가장 큰 철강회사를 물려받았지만, 1929년 대공황 때 충격을 받고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그려지는데, 이 역시도 인생에서 돈이 전부라고 믿는 칼의 가치관이 반영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 의지自由意志

[법률] 성년자(成年者)로서 정신에 이상이나 장애가 없는 한, 선악에 대하여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 상태.

[심리] 외적인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내적 동기나 이상에 따라 어떤 목적을 위한 행동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의지.

[철학] 외부의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어떤 목적을 스스로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의지.



전날 밤, 잭과 3등석 객실에서 흥겨운 파티를 즐긴 로즈가 칼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할 때, 칼은 약혼녀이자 곧 아내가 될 로즈를 향한 폭발적인 분노감과 폭력 행동의 표출로 자신의 소유욕과 통제 욕구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칼은 로즈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아내가 남편에게 공경하듯 자신의 말을 잘 따르라’고 지시하며,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한다. 또한 두 사람의 대화에서 칼은 이따금 하인을 시켜 로즈를 미행해 로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음을 알 수 있다. 분노란 자신의 영역을 침범받았을 때, 달리 말하면 자신의 것을 부당하게 빼앗겼을 때 느끼는 감정이므로, 칼의 분노는 자신의 소유물인 로즈를 침범당했다는 감정적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칼의 분노조절장애(간헐적 폭발장애)는 로즈가 자기 말을 위반하고 잭과 끝까지 함께하고자 구명정에서 탈출해 다시 배에 올라 자신의 눈앞에서 로즈와 잭이 재회했을 때 최고조에 이른다. 급기야 이성을 잃고 자신의 하인인 러브조이의 상의에서 총을 뽑아 들어 잭과 로즈를 향해 총알을 난사한다. 칼은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남도 가질 수 없다는 부적절한 폭력적인 행동으로, 그에게 로즈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빛내 줄 아름다운 장식품이자 다른 것들보다 조금 더 가치 있는 쓸모 있는 소유물이라고 입증한 셈이다.




아마도 칼은 지금껏 자신은 특별하고 우월하며,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자기 말에 복종해야 하고 비판할 자격이 없으며, 오로지 칼 자신 정도로 훌륭한 사람만이 그을 이해할 수 있다는 특권 의식이 익숙했을 것이다.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인 칼리드 하클리에게 로즈 드윗 부카터는 난생처음 경험하는 좌절이었을 것이다. 사람과 인생, 사랑까지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는 세계에 살던 칼에게 로즈는 유일하게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난공불락인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강력하게 위협하는 로즈를 어떻게든 자기 곁에 묶어두고 소유하고자 맹렬히 집착했을 것이다.


만일 칼이 로즈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꼈다면 로즈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했을 것이다. 무명의 피카소 그림을 멋진 작품이라고 칭송하는 로즈의 말을 무시하고 유치한 돈 낭비라고 힐난하기보다, 자신은 비록 예술에 문외한이지만 피카소라는 화가를 공부하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로즈가 피카소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는 데 이용했을 것이다. 물론, 부유한 약혼자로서 칼은 로즈가 원하는 작품을 구매하도록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지만, 자기 주관과 욕구가 뚜렷한 까다롭고 섬세한 로즈 같은 여성에게 완전히 부합하는 사랑의 방식은 아니다.



** 만일 로즈가 칼과 결혼했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나르시시스트의 주변 사람은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지 다음 글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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