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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pr 30. 2024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4)

자기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것 ②

그런데 애석하게도 나보다 더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보낸 전남편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아버지로부터 받은 나의 상처와 고통에 제대로 공감하지도, 이를 수용하거나 감싸주지 못했다. 그 또한 어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지독한 마음의 상처 때문에 조금이라도 술에 취해 주정 부리는 사람을 극단적으로 저주할 만큼 극혐 했지만, 현재의 아버지들은(자기 아버지와 장인어른) 예외로 취급해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고 헌신하는 양가적인 행동을 보이고는 했다. 그리고 여전히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힘겨움과 고통을 호소하는 나에게, 심지어 자기 아버지를 살뜰히 챙기기를 바라며 그것이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라고 주장하고는 했다.


당시에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네 자매의 아버지처럼 다정하지만 무능했던 그의 자기 아버지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무리한 헌신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고통이 너무 크고 상처가 너무 깊어서 오랜 혼란스럽고 복잡한 감정을 영원히 봉인해 [부정]하고 [억압]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내고 있었구나 싶다. 더는 아버지와의 내적 갈등을 견딜 수 없고,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아버지가 싫은 감정을 [부인]하고 ‘아버지를 용서했다’라고 [합리화]하며, [반동형성]으로 이제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원하는 대로 무조건 잘해드리기로, 아버지와 자신의 자아를 분리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아버지와 일치한 채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기로 했구나 싶다. 내가 남편인 자신보다 자기 아버지에게 더 잘하기를 바란다는 얼토당토않은 바람은 더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견딜 수 없다는 고통의 외침이었구나 싶다.


‘여전히 아버지를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고. 고집 세고 한편으로 안쓰러운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감정이 복잡해서 자신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무엇보다 자신도 아버지처럼 돼 버릴까 봐 두렵고 무섭다고. 그러니 자신이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마음도 좀 편해지도록 도와달라고.’


그가 자존심을 굽히고 용기를 내 자기감정을 직면하고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우리 관계가 달라졌을까. 하지만 그는 두려움과 불안을 감추기 위한 거짓 자아를 만드는 데 (나보다도 훨씬 노련하고)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가식의 가면 아래에서 무엇을 진정으로 느끼고 있는지, 자기감정을 제대로 느끼는 법을 잊고 말았다. 기꺼이 자신의 불완전함(약점과 단점)을 수용하고, 자신의 불안정한 시기를 손을 잡고 함께 견뎌줄 사람이 곁에 있는 기회를 저버린 채, 더 깊고 음습한 자기만의 방에 갇혀서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도록 철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토록 두려워하고 벗어나고 싶던 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으로, 그렇게 아버지와 닮은 삶을 걸어가고 있었다.



반동형성


억압된 욕구가 반대 경향의 행동으로 나타나는 일. 수용하기 어려운 심리 상태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서 불안을 회피하는 방어기제.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논리.


(예) 불편하고 싫은 사람에게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고 잘해주는 일



알코올 의존증 아버지에 관한 솔직한 마음을 처음으로 털어놓을 정도로 신뢰했던 그에게, 정작 나는 전혀 신뢰하거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에(물론, 그는 내가 아닌 그 누구도 믿지 않고 불신하는 사람이지만), 이혼을 앞둔 당시에는 자신이 꾸린 가정을 자기 스스로 깨뜨리고 도망가고 싶을 만큼 내가 그에게 버겁고 고통스러운 존재였구나 싶어서, 문득 너무나도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 길을 가다 말고 미친 여자처럼 얼굴에 눈물범벅이 되도록 통곡을 하고 말았다.


‘가족(또는 연인, 친구 등)이 걱정할까 봐 자신이 당면한 힘든 일을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정작 자신을 진심으로 염려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물론, 가족이 유약하거나 큰 병을 앓고 있는 등 자기 앞가림을 하기에도 버거운 사람이라면 자신의 걱정이나 고통을 말하지 않는 것이 배려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 정도도 이해하고 감당하지 못할 만큼 옹졸하고 약하다고 생각한 건가. 우리 사이의 신뢰와 공고함이 고작 부스러지기 쉬운 유리 조각 정도의 수준인 건가. 누구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한 그에게 나는 신뢰하거나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건가’ 싶어서 자괴감이 들고 슬픔이 차오르게 된다.


가족이 걱정할까 봐 말하지 않는다는 심리 이면에는 사실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건 아닌지, 강하고 완벽하고 멋진 모습만을 보이고 싶은 건 아닌지, 소중하고 배려한다면서 실은 가족을 신뢰하지 못해서 벽을 치고, 가족들과 나눠져야 할 짐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혼자서 과도한 책임감에 짓눌려 있는 건 아닌지, 가족에게라도 자존심을 세워서 영웅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은 아닌지 돌아보기를 바란다. 정말로 친밀하고 신뢰하는 사이라면 사소한 감정도 이해받고 싶고, 불안, 우울, 슬픔, 외로움, 좌절감 등을 위로받고, 그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에 잠시나마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파트너에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냈을 때, 창피하거나 불편하다는 느낌보다는 편안하고 온화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들면 우리는 아주 새롭고 중요한 사실에 눈뜨게 된다. 즉, 사람 사이의 아주 친밀한 관계는 우리에게 지리멸렬한 현실 세계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아무런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성스러운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쓰고 있던 가면을 벗는 것과 같은 성스러운 행위 – 진실을 털어놓고 내면의 갈등을 함께 나누며, 자신의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것-는 두 개의 영혼이 더 깊은 곳에서 만나게 해준다.

_존 웰우드 John Welwood

존 웰우드(1943년 3월 12일~2019년 1월 17일)는 심리학과 영적 개념을 통합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이자 심리 치료사이다.



아버지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그다음으로 털어놓은 존재는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이다. 역시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효사상이 강조되는 우리나라에서 ‘배은망덕한 자식이라고 욕하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을 안고, 억압하고 있던 감정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분출한 스즈처럼 평생을 묵혀온 아버지를 향한 혼란스러운 마음, 고마우면서도 불편하고 싫은 양가적인 감정, 가까이 갈 수도 그렇다고 멀어질 수도 없는 죄책감, 근원을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 등을 진솔하게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다.


얼굴도 모르고 고작 닉네임만 아는 사람들이 ‘힘들었겠다. 하지만 그 불안정한 환경에서도 잘 성장한 것 같다. 기특하다’, ‘자신도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했는데, 아버지는 변하지 않을 거다.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살기를 바란다’, ‘낳았다고 다 부모가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세상에는 상처를 안고 사는 자식들이 참 많다’,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털어놓다니. 용기가 대단하다’ 같은 공감과 위로,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환대와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주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출간한 뒤에는 내가 솔직하게 자기 공개를 한 만큼, 나와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친 주변 지인과 독자들로부터 그들의 진솔한 고백을 들을 수 있었고, 이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치유제가 돼 주었다.


결혼 직후부터 만 4년 2개월의 결혼생활 내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은 적이 없었고, 차라리 벽과 얘기하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오히려 둘이 있어서 시리다는 말로도 부족한 외로움이 뼛속 깊이 사무쳤는데, 글과 책이 매개가 된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 사람들과의 가식 없는 정직한 소통에서 평생 경험하지 못한 깊은 유대감과 온전함,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로소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서도 내 마음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은 긴장감과 불편함에서 벗어났고, 근원을 알 수 없던 정서적 허기와 결핍, 공허감도 사라졌다. 거짓 자아를 깨고 나의 두려움(상처)과 약점(열등감)을 솔직하게 내보일 수 있는 용기,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태도, 그리고 이를 있는 그대로 공감하고 수용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들의 존재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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