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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y 13. 2024

갈등 없는 커플이 위험한 이유 (1)

연애할 때 한 번도 싸운 적 없는데, 왜 결혼하곤 사사건건 부딪히는 걸까

특별한 날, 당신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마음을 담아 고심 끝에 정성껏 준비한 선물, 선물을 받은 상대방은 실제로 얼마나 만족할까?


조엘 왈드포겔 미국 미네소타대 칼슨 경영대학원 교수가 1993년 발표한 <크리스마스의 사중손실>이라는 제목의 논문은 선물의 경제적 비효율성을 수치화해 증명하고 있다. 당시 예일대 교수였던 왈드포겔은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 86명을 대상으로 지난 1년간 받은 선물의 가격을 조사했는데, 평균 438.2달러로 나타났다. 그다음 만일 그 선물을 자신이 직접 샀다면 얼마의 가격을 치렀을지 물었더니 평균 313.4달러라고 응답했다. 학생들은 자신이 받은 선물의 가치를 실제 가격보다 30% 정도 낮게 평가한 셈이다. 가령 누군가에게 10만 원짜리 선물을 주면 실제로 그 사람이 느끼는 경제적 효용은 7만 원에 그친다는 의미이다.


미국인의 52%는 매년 한 개 이상의 원치 않는 선물을 받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또한 미국 성인 2112명을 대상으로 연말 선물로 받고 싶지 않은 것을 조사했더니(복수 응답) 의류 및 액세서리 49%, 생활용품 29%, 화장품 및 향수 24%, 문학작품 17%, 식품 및 주류 15%, IT 기기 15%, 음악 12%, 기타 4%로 나타났다(자료: 파인더닷컴).


나도 예외는 아니라 몇 년 전 생일선물로 받은 취향이 아닌 여러 잡화들, 옷, 책 등을 사용하지도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데, 부피가 큰 선물은 공간을 꽤 차지하고 있어 여간 난감하지 않다.


그럼에도, 일 년에 한 번 생일이나 연말, 연초 등 특별한 날에 받는 선물은 취향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이 나를 생각한 마음을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알기에 얼마든지 기쁘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다. 이때는 비록 선물은 마음에 좀 들지 않더라도 기꺼운 감정마저 진심이 아니지는 않다.




그런데 만일 어느 특정 한 사람에게 취향이 아닌 선물을 매일 받는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때도 나를 생각하는 상대의 마음에 감동해 기꺼이 선물을 받아서 집안 가득 쌓아놓아야 할까? 그러다가 선물이 넘쳐서 더는 집에 쌓아 둘 공간이 없다면 그때도 계속 선물을 받기만 해야 할까? 본말이 전도돼 이제는 발 디딜 틈도 없는 집을 매일 받는 선물들에게 내주고 정작 자신은 집을 떠나야 하는 걸까?


선물을 보내는 상대방의 정성 때문에 취향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고 쌓아놓기만 하면서도 매번 고맙다고 말하는 나, 내가 흡족해한다고 믿고 정작 선물에 대한 나의 직접적인 반응(선물을 받은 소감은 어떤 지, 실제로 잘 사용하고 있는지)은 확인하지 않은 채 매일 신경 써서 선물을 보내는 그, 솔직한 소통 없이 서로 좋은 모습만 보이며 갈등 없이 오랜 얕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장기 커플의 실체일 수 있다.




‘저희는 3년 연애하면서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어요’, ‘저희는 7년 연애했는데 한두 번 싸웠나? 그조차도 금세 화해했고요. 저희처럼 잘 맞는 커플이 있을까 싶어요’ – 과연 두 사람은 정말로 잘 맞아서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주고받으면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너무 배려해서’ 상대가 실망할까 봐, 상대에게 잘 보이고 깊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진심을 감추고 갈등을 회피하는 실제로는 피상적인 관계이지는 않을까? 두 사람 다 평생을 타인의 말에 수긍하고 양보하는 착하고 순한 아이로 살아서, 갈등을 별로 겪은 적이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갈등을 극도로 기피하고 갈등을 조율하는 데 미숙한 어른으로 성장한 건 아닐까?


주변에서 성품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 얼핏 잘 맞아 보이는 천생연분 같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고 믿고 결혼하자마자 사사건건 부딪히고 극과 극을 달리며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건 예정된 수순이지 않을까. 서로 ‘너무 잘 맞아서’ 지금껏 갈등 한번 겪은 적 없는 사람들이 사소한 하나까지도 조율해야 하고, 각자의 본성을 더는 감추기 어려운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었으니, 그동안 서로 간에 외면했던 갈등들이 일시에 불거지면서 당황하고 괴로운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갈등 없는 커플이 위험한 이유 (2)>로 이어집니다. ^^

2편에서는 연애할 때 갈등 없는 커플의 실제 사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참고자료] 

유승호 기자, <받는 사람 '취향저격' 어려운 선물…차라리 현금이 낫다?>, 한국경제, 2022.12.19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2121963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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