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없는 커플이 위험한 이유 (2)
예전에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와 중식당에 갔다. “뭐 드실래요?”, “요새 몸이 좀 안 좋아서 식사량이 줄었거든요. 볶음밥이면 충분할 거 같아요.” 당시에 회사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몸과 마음이 몹시 지친 상태였고, 불현듯 ‘인생 뭐 별거 있나.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대로 살다 가면 되는 거지’라는 생각에 기분전환 겸 충동적으로 모처럼 응한 소개팅이었다. 정말로 극심한 스트레스로 소화력이 떨어져 집에서 끓인 흰죽, 계란찜, 순두부 같은 부드러운 음식도 겨우 먹는 수준인 시기였다.
메뉴판을 집어 든 남자는 “볶음밥 하나, 짬뽕 하나, 새우 좋아한다고 하셨죠? 깐쇼 새우 하나, 그리고 탕수육 대자 하나 주세요”라고 주문을 했다. “탕수육 대자요? 저희 둘이 먹기에는 이미 과한 주문 아닌가요? 저는 정말로 볶음밥 하나면 되거든요. 이것도 거의 남길 거 같고요.”, “주문하고, 다 못 먹으면 못 먹는 거고요. 조금이라도 이것저것 맛보셨으면 해서요.”, “평소에 소식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정말 거의 못 먹을 거 같은데…… 그럼, 탕수육이라도 작은 거로 바꾸죠.”
예상했듯이 나는 이날 볶음밥을 절반도 넘게 남겼고, 깐쇼 새우는 겨우 하나를 집어먹었으며, 탕수육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입이 짧은 그도 배부르다며 금세 음식에서 물러섰고, 비용을 지불하고 정당한 서비스를 받는 손님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정성껏 요리한 푸짐한 음식을 서빙했을 때 상태 그대로 거의 다 남겨서 얼마나 민망하고 죄스러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그가 제법 마음에 들었기에 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행동이라고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알면 알수록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는지가 너무 중요한 사람이었다. 과시를 해서라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혹여라도 무시받을까 봐 더 몸집을 부풀리고, 남들은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 자신의 체면과 남자로서의 가오(?)에 집착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가령, 호프집에서 치킨을 먹다가 남은 치킨을 포장하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습조차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꺼려했다. 개의치 않고 포장을 요청하려고 하면 수치스럽고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온몸에서 느껴져 절반도 먹지 않은 치킨을 할 수 없이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만큼 그는 타인의 말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고, 속마음을 감추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했다. 가령, 나에게 필요해 보이는 물건을 사줄지 묻고는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아직 쓸만하다. 고맙지만 사주지 않아도 된다. 필요하면 얘기하겠다’라고 명확한 의사를 밝혀도 ‘사실은 사고 싶은 거 아니야?’, ‘그래도 내가 그거 사줄까?’, ‘부담 갖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처럼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하고는 했다. 당시에는 그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헤어질 때 그동안 ‘괜찮다’라고 말했던, ‘정말로 괜찮은 거냐'라는 재물음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어갔던, 심지어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소한 서운함을 그때의 장면 하나하나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전부 토해내는 그의 모습에서, 그 자신이 속마음을 꽁꽁 숨긴 채 체면과 가오 때문에 괜찮은 척하는 사람이라서 타인의 ‘불필요하다’라는 명확한 의사전달조차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넘겨짚어 자기식 대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내면이 매우 복잡한 사람이라고 알게 되었다.
뒤늦게 우리의 연애 관계는 처음 중식당에서 ‘소화력이 떨어져 볶음밥 하나도 다 먹지 못할 거 같다’는 분명한 의사 표시에도 다 먹지도 못할 요리를 과하게 주문했던 태도와 행동, 어긋난 소통의 반복이었다고 깨달았다. 그는 과시하는 것으로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고(물론, 당시에는 이 전략이 통했다고 할 수 있고), ‘요새 식사량이 부쩍 줄었다’는 진솔한 말은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고 체면상 으레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우리 사이에 제대로 된 존중은 없었고, 내 의사는 (비록 그가 좋은 의도에서 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무시된 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던 셈이다.
만일 다시 비슷한 상황에 당면한다면 이제는 어떻게 대처할까? 회사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 소화력이 떨어져 볶음밥 하나로 충분할 것 같다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자신을 과시하고 체면을 차리려고 다 먹지도 못할 요리를 잔뜩 주문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가장 쉬운 대처법은 나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일방적인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식사는 맛있게 먹되 애매한 이유를 들어 다시는 만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그럼, 아마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데이트 분위기가 괜찮아서 자신이 최대한 정성과 친절을 베풀었는데도 불구하고 아까운 데이트 비용만 축낸 개념 없는 여자라고 빈축을 살 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상황에서 회피는 가장 간편한 대처 방안이다.
좀 더 성숙하게는 이 상황에 대한 내 불편한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도 있다. 지나치게 많은 식사를 주문하려는 상대에게 우선 ‘제가 많이 먹지 못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제 의사가 잘 전달되지 않았나요? 제가 볼 때는 둘이 먹기에는 주문이 과한 것 같은데, 이렇게 특별히 과한 주문을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라고 물어볼 것 같다. 이때 상대가 ‘제가 ○○ 씨께 잘 보이고 싶어서 마음이 앞섰네요.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너무 지나친 것도 좋지는 않죠. 그럼, 오늘은 볶음밥과 짬뽕 이렇게 두 개만 주문할까요?’라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리에 맞게 대처하는지, 아니면 자존심이 상해서 얼굴이 벌게져 ‘음식이 부족한 것보다는 차라리 남는 게 낫지 않을까요? 다 안 드셔도 괜찮고요. 다 못 드시면 남기시면 되고요.’라고 나의 완곡한 문제제기에도 분위기를 전혀 못 읽고 계속 자기 주장만 고집 하며 딴소리를 늘어놓는지 살펴볼 것 같다.
연인 사이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사소한 검정은 없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도 연인 사이에 한 사람이 불편감을 느낀다면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며 자기들만의 새로운 규칙과 세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취향도 아닌 선물을 상대방의 마음이라며 계속 받아두는 것만으로는 갈등을 회피한 결과로 피상적인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서로 정서적으로 깊은 친밀함을 공유하는 진솔한 관계를 형성할 수는 없다. 같이 있으면서도 ‘너는 너’, ‘나는 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얼핏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같지만, 서로 제대로 존중하지 않고 무관심하게 단절된 상태로 불안정하게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배우자에게 무슨 말을 해도 ‘별거 아닌 일로 예민하게 군다’라며 오랫동안 자기감정을 부정 당해 이제는 자신의 감정을 확신할 수 없는 아내(또는 남편)가 결혼생활 10년, 15년, 심지어 30년 만에 자신이 평생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받았다고 깨닫고 뒤늦게 인생 헛살았다며 후회하고 허탈해하는 무수한 사례는 갈등 없는 커플이 위험한 이유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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