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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결혼과 연애는 사랑이 아니다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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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y 06. 2024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5)

부모로부터 받은 결핍을 해소했을 때 가능한 것

성인이 되고 난 뒤 나는 줄곧 내가 새로운 사랑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건 착각이었다.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고, 난생처음 사랑의 기쁨을 느꼈던 그 따뜻한 공간으로 되돌아가려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과거에 묶인 나머지 지금 여기에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여전히 어린 시절에 받은 마음의 상처를 부여잡고, 이미 깨져버린 관계에 집착하면서 속으로 울음을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깊은 슬픔에서 빠져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_벨 훅스, <All about Love(이영기 옮김, 책읽는수요일, 2012.10)> 6쪽 ‘저자의 말’ 중에서

진정한 사랑이란 부모로부터 받은 결핍을 인지하고 해소했을 때 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부모로부터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랑을 채우기 위한 대체제를 찾아서 불안정하게 헤맬 뿐이다. 하지만 부모는 내가 바라는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 또한 그들 부모의 영향으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대체제를 찾아서 헤매는 동안에는 자신의 사랑은 언제나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따뜻함과 애정을 나누고, 쾌락적 욕망을 충족할 수는 있지만 솔직하고 친밀한 관계를 안정적으로 형성하고 유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만일, 몇 년 동안 연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둘 사이를 면밀히 관찰해 보면 실은 관계가 피상적이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과하게 맞추는 관계의 불균형에 익숙해져 있을 수 있다. 이를 서로 잘 맞고 사랑한다고 믿고서 결혼을 한 뒤에 관계의 골이 깊어졌을 때 뒤늦게 서로의 배우자가 자신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혼란감을 각인한 자신의 부모님과 닮은 사람임을 깨닫고 다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빠져들고 만다.

불행하고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 가운데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나는 아빠 같은 사람은 절대로 안 만날 거야’, ‘나는 엄마처럼 미련하게 참고만 살지는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부모의 인생, 그들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반복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 아버지 때문에 힘든 성장기를 보낸 사람은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 우선, 술을 좋아하거나 지나친 음주를 하는 사람을 연인 후보에서 제외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심리적 상처, 두려움, 공포감, 불안감에서 비롯한 트라우마를 회피하고자 반대급부로 술을 마시지 않거나 주량이 약한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부여한다. 상대방의 금주하는 특성에 너무 높은 가중치를 부여한 나머지 사람이 무난하고 착하면(연애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수긍하는 듯 보이면) 직업이 불안정하고 경제력이 약한 면모는 괜찮다며, 자신이 감수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같이 미래를 꿈꾸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인 상대방의 경제적 불안정성을 사소한 부족한 면모로 치부해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합리화로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착하고 자상한 남자와 과감하게 동거를 하거나 성급한 결혼을 결정한다.

장밋빛 미래를 꿈꿨지만 같이 살을 부대끼고 살다 보니 비로소 눈감았던 상대방의 진면모가 보인다. 자상한 상대방이 직업이 불안정한 이유는 한 가지 일을 끈기 있게 하는 인내심이 보통 사람보다 지나치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정신이 산만하고 집중력이 약해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야단을 많이 맞았고, 성취나 성공 경험이 부족한 오랜 무기력감과 상실감, 소외감을 안고 살아왔다. 대신 남 눈치를 많이 보고 기질적으로 예민해서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사회생활을 오래 지속하기 어려웠다.

남편은 사회적 시선에 지나치게 민감해 일을 하고 돌아오면 에너지가 전부 소진돼 기진맥진했고, 사회에서 받지 못한 인정을 가정에서 아내에게 받고자 애정을 과하게 갈구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사회생활을 하는 아내도 늘 남편을 무한정 따뜻하게 보살피고 기운을 북돋을 수는 없고, 때로는 잔소리를 하거나 불평을 털어놓는다. 남편은 아내에게서 자신을 야단치던 어린 시절의 부모님과 선생님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고, 다시 강한 무기력감과 상실감, 소외감, 불안감에 사로잡혀 오직 자기 혼자만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어두컴컴한 굴속으로 후퇴한다. 이제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무기력감과 불안감 등을 회피할 수 있는 게임에만 오로지 몰두하고, 아내와의 관계는 더욱 악화한다.

아내 입장에서는 말이 안 통하고 가부장적인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를 피해 술 안 마시고, 착하고 따뜻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했는데, 이번에는 게임 중독자 남편을 만나 불통을 일삼으며 자신을 등한시하는 그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엄마의 불행하고 한 많은 결혼생활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절망을 경험한다. 아버지의 알코올중독은 사회적 시선에 민감해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자신의 직업에 불만족하지만, 깊은 열등감과 자격지심에서 비롯한 무기력감에 사로잡혀 변화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수치심과 자괴감을 감추고 악순환되는 현실을 회피해 불안을 덜기 위한 방편으로 남편이 게임에 중독된 심리 작용과 일치한다.

불안정한 성장과정에서 부모와 피상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익숙해 자신과 타인의 감정과 내면을 읽는데 미숙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을 해도 결국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시간이 지나면 또 자신도 모르게 아빠와 비슷한 면모의 사람에게 끌려서 유사한 관계에 빠지게 되었다고 알게 된다. 심지어 머리로 인지하고 있더라도 반복강박에서 헤어 나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앞에서 영화 <이터널 선샤인>과 구구절절한 개인담으로 상세하게 다뤘으니 이해할 것이다. 이는 이혼 뒤의 재혼 특히, ‘아이에게 아빠(또는 엄마)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전 배우자와 달리 가정적이고 말이 통하는 것 같은 사람과 (두려운 마음을 안고 신중하게 판단했다며) 새롭게 꾸린 가정이 다시 불행의 올가미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정의한 진정한 사랑 – 마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기, 함께 내외적으로 성장하며 서로의 세계를 확장하는 관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하기(상대방의 욕구를 정확히 읽어내기), 거짓 자아를 벗고 서로의 감정에 솔직하기 – 은 부모로부터 받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그들에게서 경제적, 물리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서적으로도 독립했을 때, 그제야 진정한 사랑을 할 능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부모에게 과하게 의존하지도, 지나치게 벗어나고 싶지도 않을 때, 비로소 자아의 통합을 이뤄 나만의 개성을 발현할 준비를 마쳤다고 할 수 있다. ‘아빠 같은 또는 엄마 같은 혹은 전남편/전아내 같은 사람은 절대로 만나지 않을 거야’가 아니라 ‘나는 이러저러한 사람이므로 나와 성격적, 생활적으로 잘 맞을 법한 사람은 이런 성향과 특성을 갖춘 사람이야’라는 좀 더 명확한 자신만의 사람을 판단하는 선구안을 갖추게 된다. 더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결핍된 사랑을 채우기 위한 대체제에 집착하고, 무한한 사랑이라는 이상과 환상에 사로잡힌 관계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장단점을 골고루 살피고 수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사랑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누군가에게 그토록 받고 싶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자기 자신에게 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받기를 꿈꾸던 사랑을 자신에게 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너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You never love anybody if you are unable to love yourself”는 격언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이제 나는 그 격언을 이렇게 고치겠다. “너 자신에게도 주지 않는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마라 Do not expect to receive the love from someone else you do not give your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