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정서와 이차정서
일곱 살이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다고 생각해 보자. 학교를 마치고 친구 지민이와 집에 오다가 귀여운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지민이와 같이 고양이를 한참 쫓다 보니 어느 낯선 동네에 도착했다. 눈앞에는 넓고 푹신한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마음껏 던지거나 차고 놀 수 있는 공도 구비돼 있다. 평소 아파트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에서 볼 수 없는 각양각색의 신기한 놀이기구도 눈앞에 펼쳐져 있다. 지민이와 나는 새로 사귄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다가, 술래잡기를 하다가, 이 놀이기구에서 저 놀이기구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엄마에게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까맣게 잊고 놀이에 푹 빠졌다. 이토록 신바람 나기는 난생처음이었다.
여느 때와 달리 하교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연락이 안 되자 엄마는 불안해졌다. 내가 있을 만한 여기저기 연락을 했지만, 하나같이 내 행방을 모른다고만 한다. 나에게 다시 연락을 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걱정이 된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를 했고, 회사를 조퇴한 아빠와 같이 발이 부르트도록 동네방네 나를 찾아다닌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공포감에 휩싸인 엄마는 울어서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 되었다.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하려던 찰나, 내가 지금 지민이와 함께 있다고 지민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온다. 택시를 타고 잔디밭 놀이터에 도착한 부모님,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기운이 넘친다. 먼지투성이에 꼬질꼬질해진 나는 부모님을 발견하자 반가운 마음에 해맑은 표정으로 손을 흔든다.
“너 연락도 없이 누가 여기서 늦게까지 이러고 있으래. 엄마가, (울컥) 엄마가 종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기나 해!”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버럭 소리를 내지른다. 아차, 엄마에게 연락을 안 했구나. 엄마가 걱정을 엄청 했겠구나. 엄마가 화를 냈는데도 서운하거나 억울하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엄마의 분노는 진심이 아니라 걱정과 불안이 반영된 표현이라고 본능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이다. 유대관계가 깊으면 이처럼 상대방의 겉으로 표현된 이면의 감정을 헤아리게 된다. 비록 다른 사람은 오해할지라도 나만은 상대방의 감정과 행동의 불일치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어루만져주게 된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이차정서(가짜감정)에 감춰진 일차정서(진짜감정)를 읽어내고 행동하는 능력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눈치, 센스, 공감과 이해, 역지사지, 성숙한 태도 등은 사랑의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차정서와 이차정서는 캐나다의 심리학자 레스 그린버그(Leslie S. Greenberg)와 수잔 존슨(Susan M. Johnson)이 창안한 ‘정서중심치료(EFT, Emotional Focused Therapy)’의 주요 개념이다. 개인과 커플 치료에 주로 활용되는 정서중심치료(EFT)는 자신이 체험하는 정서가 무엇인지, 어떤 유형인지 구분하고 파악해서 잘 다루고 조절할 것을 강조한다.
우선, ‘정서(Emotion)’란 무엇일까? 감정(Affect), 느낌(Feeling), 기분(Mood) 같은 것일까?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정서란 개인의 욕구, 목표, 관심사, 기대 등과 관련된 사건을 내적으로 평가할 때 나타난다. 만약 자신이 바라는 것을 사건이 충족하는 방향에 부합한다고 평가(생각)하면 유쾌한 정서를 느끼고, 방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평가하면 불쾌한 정서를 느낀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플 때 바로 밥을 먹으면 만족감을 느끼지만, 퇴근 중인 버스 안이라 귀가할 때까지 식사가 지연된다면 불만족감을 느낀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했는데 받아들여지면 행복감을 느끼지만, 거절을 받으면 낙담하거나 수치심을 느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 A의 공연 티켓을 예매하는데, 수지는 어렸을 때부터 그 뮤지션의 콘서트를 가는 것이 꿈이었고, 유민은 크게 관심은 없는데 지루함을 달래고 싶어서 새로운 흥미를 찾고자 할 뿐이었다. 둘 다 공연 예매에 실패했을 때 욕구와 기대, 목표를 방해받은 수지는 크게 낙담(불쾌한 정서)하지만, 유민은 ‘그럴 수도 있지’라며 금세 수용하고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흥밋거리를 찾아 나선다. 이처럼 같은 상황에서도 개인의 욕구와 목표, 관심사와 기대 등에 따라 정서는 얼마든지 다르게 나타난다.
세상에 이유 없는 정서(감정)는 없다. 어떤 정서를 느끼거나 표현했다면 반드시 그 정서를 유발한 자극이나 대상, 사건 등이 존재하며, 자신의 기대나 욕구, 목표 등을 충족하는지, 방해하는지 내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정서는 온전히 느끼고 표현해야 비로소 해소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 남아서 계속 표현되고 싶어 하며, 심리적 부적응 문제를 야기해 일상생활과 대인관계 등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화가가 꿈이었는데 부모님이 무슨 그림이냐며 공부나 하라고 해 꿈을 향한 아무런 시도도 못하고 좌절한 기억,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 타인 앞에서 말을 할 때 긴장을 많이 하는데 용기 내서 발표를 했더니 같은 반 영철이가 말더듬이 아니냐며 두고두고 놀린 기억, 부모님이 공부 잘하는 언니만 예뻐하거나 남자인 남동생과 차별한 서운한 기억 등 한번 생겨난 불쾌한 정서는 해소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도 기억이라는 형태로 마음속에 계속 남아있다.
정서를 제대로 표현해 해소하지 않고 애써 ‘괜찮다’라며 오래도록 억압하면 남아있는 불쾌한 정서는 얼굴 표정을 바꿔서 나타난다. 이 부적응적인 정서가 가진 원래의 표정을 찾아서 적응적인 방식으로 수용 또는 표현해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일차정서와 이차정서의 핵심이다.
그럼, 일차정서와 이차정서는 무엇일까?
일차정서는 외부의 자극에 반응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정서이다. 누군가 자신을 때리면 화나고 분노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가슴이 아프고 슬퍼서 눈물이 나고, 어두운 공간에 혼자 남겨졌다면 무섭고 두려워 긴장하는 등 어떤 사건에 대한 꾸밈없고 솔직한, 있는 그대로의 직설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차정서는 일차정서가 다른 형태의 정서로 바뀌어서 표출되는 정서이다. 일차정서를 감추는 방어적인 정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사라진 줄 알고 종일 찾아다니던 엄마가 나를 보자마자 소리를 꽥 지르며 ‘화’를 낸 것도 사실은 혹시라도 내가 사고를 당하진 않았는지, 나쁜 사람에게 납치되진 않았는지 그래서 사랑하는 자식을 상실했을까 봐 ‘극도로 불안’한 감정이 얼굴 표정을 바꿔서 다른 정서로 표출된 것이다. 이처럼 이차정서는 일차정서로 느끼기 두렵거나 불편해서 (자신이 좀 더 수용하기 편한) 가면을 쓴 정서가 표출되는 것이다. 아마도 엄마는 원래 ‘너에게 무슨 나쁜 일이 생겼는 줄 알고 종일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해성이를 잃었을까 봐 엄마는 너무나도 두려웠거든. 네가 별일 없이 안전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사랑해, 우리 해성이’라고 안도하며 나를 꼭 안고 싶었을 것이다. 이처럼 해당 자극(사건)에 대해 예상되는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이차정서이다.
이차정서는 일차정서에 대해 ‘난 이런 감정을 가지면 안 돼’라는 무의식적 사고 과정으로 형성된다. 원래는 화를 내야 하는데 심한 두려움을 느끼거나, 사실은 분노가 쌓였는데 우울 또는 무기력하거나, 우울하고 슬픈데 지나치게 밝은 정서가 나타나거나, 사실은 수치스러운데 분노감을 느끼며 상대를 탓하는 등 원래 드러나야 할 자연스러운 정서와 실제로 드러나는 정서 사이에 차이가 있을 때 이를 이차정서라고 할 수 있다.
앞선 예에서 만일 부모님이 언니와 남동생과 자신을 차별하면 ‘화’가 나야 하는데, 권위적인 부모에게 공격성을 드러내면 보호받을 수 없다는 (무의식적인) 생각에 오히려 부모를 ‘두려워’해 반작용으로 부모에게 더욱 순응하고 예쁨 받는 자식으로 인정받고자 할 수 있다. ‘그 사람들에게 분노는 느끼면 안 돼. 그러다 들키면 큰일 날지도 몰라’라는 무의식이 작용해 정서가 얼굴 표정을 바꾼 것이다.
이차정서와 구분되는 부적응적 일차정서도 있다. 과거에 해소하지 못한 억눌린 정서가 부적응적으로 표출되는 것은 이차정서와 비슷하지만, 부적응적 일차정서는 일차정서에 해당하는 얼굴 표정을 짓고는 있다. 친구가 약속 시간에 늦자 화가 나고, 회의 시간에 틀린 정보를 말했다가 상사에게 지적받아 수치스럽고,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떠나서 슬프다. 그런데 늦은 친구에게 길거리에서 세상이 떠나가라 ‘지나치게’ 화를 내고,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서 가족들에게 ‘대신’ 화풀이하는 방식으로 해소하고, 반려동물이 떠난 지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우울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매일 반려동물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처럼 부적응적인 일차정서는 자극(상황, 사건)에 비해 지나친 반응을 나타내고, 감정의 번지수를 잘못 찾아서 엉뚱한 사람에게 반응(방어기제: 전치)하는 것이다. 자극이나 상황이 지나가도 그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거나, 유사한 정도의 자극이나 상황에서 비슷한 부적응적 정서 패턴이 반복(방어기제: 투사)되는 특징이 있다. 지나치게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등의 대부분의 정신장애 또는 트라우마가 부적응적 일차정서에 해당한다.
사랑의 필요조건이 솔직함과 있는 그대로의 수용과 존중이라면, 심리학 이론을 빌려 정의 내린 사랑이란 이차정서와 부적응적 일차정서에 감춰진 상대방의 일차정서를 눈치채고 보듬으려는 노력 아닐까. 자기 자신의 이차정서와 부적응적 일차정서를 스스로 깨닫고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일차정서로 다가서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 아닐까. 가면을 벗은 꾸밈없는 모습으로 불완전한 세상에서 솔직한 마음과 마음이 서로 연결되는 것이 바로 사랑 아닐까.
기억하기!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자이고 멋있고 예쁘고 똑똑하고 잘 나가고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한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인간은 누구나 소외감(무리에서 떨어져 외톨이가 된 느낌)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
누구에게나 열등감과 결핍은 존재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때때로 외로움을 느낀다.
인간은 누구나 매일 어느 정도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안고 살아간다.
이것만 기억해도 이해할 수 없거나 자신의 열등감과 결핍을 자극하는 상대방의 이차정서나 부적응적 일차정서에 휘말려 발끈하지 않고,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겠지’ 의연하게, 그 이면의 일차정서를 상상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상대방의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에 감춰진 본래의 감정(정서)을 이해하면, 오해와 편견이 줄어들어 고단한 인생살이와 인간관계가 약간은 수월해질 수 있다.
[참고자료]
이지영, <정서 조절 코칭북>, 박영스토리, 20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