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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29. 2020

결혼이란 무엇일까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일까요?

결혼은 여행과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누구나 여행을 갈 수 있지만 모두가 좋아하지는 않는다. 꼭 가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짬이 생기면 기를 쓰고 국내외 어디든지 떠나려고 한다. 누군가는 시간적, 경제적 여건이 갖춰져도 여행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안락하고 안전한 집에 머물길 원한다.


막상 갈망하던 여행지가 별 것 아닌 경우도 있다. 먼저 다녀온 이들의 사진과 후기를 보면서 낭만적인 환상에 가득 찼었다. 죽기 전에 남들이 가본 곳에 꼭 가보겠다며 몇 년 동안 여행 자금을 마련했다. 그런데 손꼽아 기다린 여행지는 상상과 달리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갑자기 떠난 여행이 의외로 괜찮기도 하다. ‘오, 이런 곳이 있었어? 여기에 몇 년 살면서도 몰랐네.’라면서 말이다.


같은 시기, 같은 지역을 다녀온 여행자의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평생에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간직한다. 다른 누군가는 진부하고 지루했던 여행으로 기억한다. 같은 곳을 방문하더라도 개인의 성향과 가치관, 배경지식 등에 따라서 각자 다른 경험을 느끼기 때문이다. 똑같이 기대 이하 여행을 했더라도 어떤 사람은 최악이라고 여기는 데 그친다. 다른 사람은 액땜했다면서 앞으로 인생은 잘 풀리리라고 믿는다.


‘여행’을 ‘결혼’으로 바꿔보겠다. 결혼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모두가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원한다고 언제든 할 수 있지도 않다. 어떤 사람은 중요한 인생 목표가 결혼이라 반드시 성취하고자 한다. 누군가는 경제적, 사회적 여건이 갖춰져도 결혼 제도를 거부한다.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결혼 제도에 편입되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비혼 또는 미혼의 삶에 만족한다.


그토록 갈망했던 결혼이 생각과 달리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내 인생에 결혼은 없다’라고 생각했던 비혼주의자가 결혼 후 괜찮게 살아가기도 한다. 경제 여건, 배우자의 성향, 가족관계 등 비슷한 환경에 처한 기혼자여도 각기 반응과 만족도는 다르다. 개개인의 가치관과 성향, 성장배경, 욕구 등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 정도면 살만하다고 느끼는 환경을 누군가는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여행과 결혼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발을 디딘 순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특히 심리적, 정신적으로 여행이나 결혼을 경험하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둘 다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상상 그 이상의 상황을 맞닥뜨린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온갖 이야기를 접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실제 경험을 하기 전에는 분명한 실체를 알 수가 없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꾸고 문제 상황과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내면적으로 단단하고 성숙해진다.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더라도 원래 여행은, 결혼은, 인생은 그런 거라고 덤덤하게 수용하게 된다. 체념이라기보다는 경험과 성찰 끝에 본질에 접근한 관용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것 같다.


가장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달콤한 신혼 생활을 꿈꾸는 연인들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결혼해서 같이 살아보니까 별 것 없더라”는 경험적 진리를 체득한, 실제 결혼 생활을 수년 이상 해본 부부들이다.
_한중섭, <결혼의 종말(도서출판 파람, 2020.06)> 209쪽 중에서


여행에서 버스를 잘못 타서 유럽 한 도시의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말이 통하지 않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휴대폰도 없이 비행기 착륙 시간을 잘못 공유해 공항에서 친구와 길이 엇갈렸을 때, 소매치기를 당할 뻔하고 사기를 당했을 때 등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당면하곤 했다. 궁지에 몰리니 저절로 임기응변이 발휘되었다. 신기할 정도로 사력을 다해 문제 상황을 헤쳐나갔다. 나도 몰랐던 스스로의 능력을 깨달았다. 외양은 변함없었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결코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것이 예상되는 불편함과 위험함을 감수하면서 굳이 돈을 들여 여행을 떠나 사서 고생을 하는 이유다.


‘결혼은 혼자 있었으면 있지도 않았을 문제들을 둘이서 함께 해결하려는 시도다.’ 미국 배우 에디 캔터Eddie Cantor의 말이다. 결혼을 결정할 때 간과하는 결혼의 본질을 잘 표현했다. 일단 결혼 후 연애 때 말이 잘 통한다고 믿었던 배우자와 대화를 할 때면 종종 벽에 대고 외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사소하게는 김치찌개에 다시다를 몇 스푼 넣을지, 어떤 종류의 다시다를 넣을지 때문에도 갈등을 겪는다. 시가 식구들 앞에서 나 스스로는 작아지고 친정 엄마는 원래 결혼은 그런 거니까 받아들이라는 답답한 소리를 한다. 내면의 적과 싸우고 외부의 적에 맞서 투쟁하면서 점차 갈등 상황을 줄여가고 하나씩 합의점에 도달을 한다. 여러 사람들의 감정과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서 문제를 하나 해결하려면 머리가 꽤 아프다. 답답해도 서두르지 말고 서서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혼 생활을 꾸려가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 아내, 며느리라는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은 후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미혼일 때와는 다른 의미로 성숙한 어른이 되어간다고 느낀다.


결혼 후에도 코로나 시국인 올해를 제외하고 매년 최소 한 차례는 외국 여행을 떠났다. 2박 3일이라도 일 년에 최소 1회 해외여행하기는 스무 살 이후로 줄곧 지켜온 스스로와 약속한 다짐이었다. 그런데 결혼 후 여행 욕구가 약간 줄어든 것 같다. 현재 살고 있는 쾌적한 거주지에 머물고자 하는 관성과 여행에 취미가 없는 배우자에게 영향을 받은 듯하다. 무엇보다 배우자라는 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은 온 우주를 이해하는 기분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새로운 자극을 받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이다. 결혼 후 완전히 다른 인격체와 때로는 이해불가인 소통을 하면서 여행과는 또 다른 세상을 알아가는 기분이랄까.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배우자의 존재가 어느 정도 내 여행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홀로 떠나는 여행을 추천하고 싶지만 결혼을 딱히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여행과 결혼 모두 인간이 성숙해지는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행은 정 내키지 않으면 중간에 그만둘 수 있다. 반면 결혼은 쉽게 그만두기는 어렵다.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혀 있고 부부 인생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여행의 목적이 견문 확대, 휴식과 놀이라고 한다면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지 않을까. 그런데 결혼을 한다고 더 행복해진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결혼 후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결혼 결정을 내린 이들을 반대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삶의 대부분을 나눠가진 부부 사이에 
한 사람을 도려내는 일이란
내 한 몸을 내줘야 한다는 것
그 고통은 서로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것
부부간의 일이란 결국,
일방적인 가해자도 완전 무결한 피해자도
성립할 수 없는 게 아닐까.

_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16회 지선우 내레이션 중


‘그래서 왕자님과 공주님은 결혼 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는 동화 속 이야기다. 완벽한 인간은 없듯이 낭만 인플레이션에 빠져 자신도 모르는 새 꿈꾸는 완벽한 결혼은 없다. 차라리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라는 말이 정도에 차이는 있더라도 결혼의 본질에 가까운 듯하다. 인생이 그렇듯이 그럭저럭 괜찮다 싶으면 좋은 결혼 생활인 것이고. 인생을 기쁨에 가득 찬 여정이라면 의견이 분분할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이 고행苦行이라는 말에는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사실 매일 고행까지는 아닌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욕심부리지 말고 그럭저럭 한 인생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겠다. 소중한 가치를 잊지도, 잃지도 않으면서. 그러다 보면 가끔은 선물처럼 행복에 가득 찬 동화 속 환상이 현실에서도 펼쳐지지 않을까.




이 글을 포함한 2020년 브런치에 연재한 결혼 관련 글 중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던 글을 모아서 <드디어 며느라기 해방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크몽 전자책으로 출간했습니다. 크몽 전자책에는 지난 2년 동안 달라지고 깊어진 생각을 덧붙여 결혼에 대한 좀 더 예리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글을 기반으로 발전시키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결혼/부부/가족 나아가 이혼과 비혼에 관한 생각을 크몽 전자책으로 만나보세요! 관심 있으신 분은 아래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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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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