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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ug 18. 2020

25살에 책.알.못 에서 다독가로 변신한 이유

디자인, 오리지널을 강조한 홍대 큐레이션 서점 ‘땡스북스’

이십 대 후반까지는 패션이나 유행에 꽤나 민감했던 것 같다. 나의 그 시절을 아는 누군가가 신경 쓴 패션이 그거였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인기 있다는 맛집, 특이한 카페, 뜨고 있는 거리에 가 보고 싶어 했고, 친구들을 불러 꽤 자주 찾아다녔다. 주 무대는 합정∙홍대∙신촌, 강남, 광화문, 아주 가끔 이태원과 청담∙신사까지. 최근 연남동 여행책방 '사이에'에 갔다가 최근 그곳에 2호점을 연 맞은편 유명 크로플 카페를 알게 되었다. 얼마나 맛이 좋은지 카페 앞은 대기 중인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다. 몇 년 전이었다면 나도 그 앞에서 한, 두 시간은 무난하게 대기하던 이들 중 한 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서 고가의 백화점 화장품은 오히려 돈 없는 대학생 때 가장 많이 사용을 해봤다. 배우 김희애 씨의 ‘놓치지 않을 거예요.’ CF 유행어를 낳은 SK-II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를 비롯해 랑콤 파운데이션과 선크림, 코스메틱계의 스테디셀러인 맥 아이섀도, 국내에 출시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창 주목받던 브랜드였던 프레쉬의 로즈 페이스 마스크팩 등 좀 유명하다 싶은 화장품을 열심히 샀다. 나는 화장에 소질도 없고 별로 관심도 없는 사람이며, 화장품의 브랜드나 가격과 피부 타입에 맞는가의 여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을 깨닫고는 백화점 브랜드를 사는 것을 그만두었다. 자주 이용하는 상점도 올리브영,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등으로 바뀌었다. 이제 파우더 팩트는 마몽드, 아이크림은 에뛰드하우스, 토너∙클렌저는 라운드랩 독도 1025 등을 사용한다. 아무리 좋은 화장품도 충분한 수면, 적당한 영양소 섭취, 적은 스트레스, 올바른 세안법, 유전적으로 타고난 피부를 이기지는 못한다.


2011년 문을 연 홍대 큐레이션 서점 <땡스북스(대표: 이기섭)>도 처음에는 회사 입사 1~2년 차였던 사회초년생 시절에 ‘유행에 뒤쳐지고 싶지 않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다면 응당 가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허세와 있어빌리티(있어 보임+Ability 능력)를 발현하고 싶은 마음에 방문을 했다. 그때까지 즐겨보던 <보그 VOGUE>, <엘르 ELLE>,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등의 패션 잡지와 한창 급성장 중이던 블로그에서 ‘특색 있는 서점’, ‘트렌드세터라면 꼭 가봐야 하는 동네 서점’ 등을 주제로 소개하는 글을 보고 알게 되었다.


우선 ‘땡스북스’라는 서점 이름부터 신박했다. 사진 속 서점의 인테리어는 마치 카페처럼 근사하면서도 아기자기했고, 길가로 창이 크게 나 있어 전체적으로 환한 분위기였다. 독특한 점은 그래픽 디자이너가 만든 서점이라는 것이었다. 채도가 높은 노랑 네모를 바탕으로 그 위에 검은색 굵은 글씨로 ‘THANKS BOOKS’라고 쓰인 깔끔하면서도 정감 있는 로고에서부터 서점의 정체성과 명확한 디자인 콘셉트가 느껴졌다. 서점의 세련되면서도 친숙한 분위기가 로고에 그대로 반영이 돼 있었다. 소개 글에서는 심지어 커피와 차(tea)도 판매하고, 책방 내 비치된 테이블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요새는 ‘밤의 서점’, ‘아침달’, ‘부쿠’ 등 독특한 이름과 콘셉트를 내세운 다양한 동네 책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서점에서 주문한 음료를 마시면서 서점 안의 아늑한 의자에 앉아 구매한 책을 예쁜 탁자에 놓고 읽는 것은 보편적이다.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책맥, 작가를 초대해 10~20명이 모여 소규모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별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땡스북스가 문을 연 2011년 때만 하더라도 특별한 큐레이션을 내세운 독특한 동네 서점은 드물었다. 서점 이름은 보통 00 서점, 00 문고, 00 서적 정도였다. 물론, 반디앤루니스, 이음책방, 풀무질 등을 이름으로 한 서점들도 있었다. 당시에 홍대 책방 중에는 독립서점 <유어마인드>, 땡스북스 정도가 대중에게 꽤 알려졌던 것 같다. 새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지난 10년 동안 출판과 서점 문화가 참 많이 다채롭고 세련되게 발전해 온 듯하다. 땡스북스는 거의 동네책방과 독립서점계의 시조새 격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기분 탓인가.




출판사에서 만 6년을 근무를 했지만 나는 사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다독가(多讀家) 즉,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었다. 당연히 학창 시절에 문학청년은 아니었고, 책이 재미있어서 자발적으로 읽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고작해야 국어 교과서, 문제집에 실린 지문, 수능 언어영역 모의고사에 출제된 지문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독서량이 미흡하지 않으니 독해력과 문해력이 높지 않았다. 수능 여러 과목 중 언어 영역을 일정 수준 이상 끌어올리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를 느꼈다.


독서 습관이 형성이 되어 있지 않고, 즐거움을 깨닫지 못한 상태로 대학생이 되었으니 마찬가지였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며, 스스로는 무슨 책에 관심이 있는지를 잘 몰랐다. 그나마 과제와 시험 때문에 주로 사회과학이나 교양서를 읽은 뒤 느낀 점과 비판할 점 등을 작성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각종 교재를 읽고 학문적인 이론을 이해한 후 시험을 위해 외우는 수준이었다. 영어 원서 교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잦아서 독서라기보다는 전문 용어로 가득한 영어책 독해 공부를 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다. 부족한 독해력이나마 성실하게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서 작성한 보고서는 최소 B+ 이상의 점수가 매겨졌다. 하지만 어떤 글을 읽든지 영어가 아닌 국어인데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고 늘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간단하게만 이야기를 하자면 당시 어울리던 좋은 친구들과의 대화에 나도 끼고 싶었다. 나도 친구들처럼 스스로의 생각과 주관을 갖고 싶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불완전했고 세상과 사회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사회와 나 사이의 벽을 허물고 겉도는 기분을 지우기 위해서는 우선 이 사회가 '왜' 이렇게 굴러가는지,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주장을 하는지 이해를 할 필요가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나만의 기준과 잣대를 세우는 것이 당시 나에게는 절실했다. 이 자양분들이 없고서는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박했다. 알고 싶었다.


워낙 독서 체력이 없었기 때문에 중고등학생을 위한 필독서부터 읽어나갔다. 동네 도서관에 가서 <중고등학생을 위한 한국 대표 문학선 1, 2, 3>과 같은 교과서에는 내용의 일부만 실린 문학성을 인정받은 소설이나 수필 가운데 중단편을 모은 책을 빌렸다. 그때가 아마도 25세였을 거다. 김승옥의 <무진기행(1986)>을 처음 읽고 이토록 가슴이 저리면서 아름다운 소설을 왜 여태 읽지 않았는지 자책을 했다. 장편소설 최인훈의 <광장(1960)>을 끝까지 읽으며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이데올로기의 비극을 느꼈다. 수능 모의고사 언어영역의 단골 문제이자 답이었던 ‘밀실’과 ‘광장’의 의미를 그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외국 문학도 마찬가지로 고전이자 필독서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1919)>, 조지 오웰의 <1984(1949)>,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1960)> 등을 읽었다. 교양의 기초를 다지고자 인문∙사회∙철학∙역사 분야의 지식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기본서 성격의 책들도 많이 읽었다. 유시민 작가가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푸른나무, 2004.01)>,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돌베개, 2002.01)>, <후불제 민주주의(돌베개, 2009.03)> 등을 읽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약칭 지대넓얕)>의 철학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세 권으로 구성된 <소피의 세계 1, 2, 3(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현암사, 1994.12)>을 일단 완독을 했다. 참고로 이 책은 3권을 한 권으로 묶은 양장 합본도 출간이 되었다. 한국 현대사를 더 이해하고 싶어서 임헌영 선생과의 대담 형식으로 쓰인 리영희 선생의 회고록 <대화(한길사, 2005.03)>를 읽었다. 급기야 제목 자체가 <교양(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인성기 옮김, 들녘, 2001.11)>이고, 부제는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유럽의 역사, 문화, 사상을 다루고 있는 75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도 끝까지 읽어냈다.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다 들어오지 않아도, 흰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씨요 라도 상관이 없었다. 일단은 끝까지 읽어서 개략적인 정보를 파악을 하고 용어라도 한 번 들어보는 것이 목표인 시간이었다.




스스로에게 강제성과 의무감을 부여해 ‘읽어야 하는 책들'을 보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잡지에 소개된 땡스북스를 찾아갔다. 그곳은 별천지였다. 주로 에세이, 예술서, 여행서가 진열이 돼 있었다. 일반 동네서점에서 잘 들여놓지 않는 디자인∙브랜딩∙라이프스타일을 다룬 잡지도 많았다. 소설과 시집, 인문 교양서, 식물 키우기∙요가∙인테리어∙요리∙뜨개질 등 취미∙실용 도서도 눈에 띄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뭔가…… 홍대스러운 책들은 다 모여있었다. 당시 내가 주로 읽던 필독서는 대부분 고전이라 작가는 이미 작고한 경우가 많았다. 세대에 세대를 거쳐 살아남은 작품들이라 완성도가 높고 일종의 그 분야를 대표하는 전범(典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반면, 땡스북스에서는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와 작품들이 뿜어내는 활기와 독창성이 느껴졌다. 유명 작가들의 책도 있었으나 아직 사람들이 주목하기 전이지만 알려졌으면 하는 책, 각박한 세상에 치여 잊고 살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는 책들에 자연스레 손이 갔다. 기발한 창의력과 신선한 아이디어가 각축을 벌이는 장이었으며, 공간 하나하나가 오감에 새로운 자극제가 되었다.


땡스북스에서는 매주 '금주의 땡스, 북스!'라는 코너를 운영 중이다. 한 주간 땡스북스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책 7권을 소개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20년 8월 10일에서 2020년 8월 16일을 살펴보면, <아무튼, 여름(김신회, 제철소, 2020.05)>,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황효진, 유유, 2020.08)>, <이 약 먹어도 될까요(권예리, 다른, 2020.06)>,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김행숙, 문학과지성사, 2020.07)>,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박선아, 책읽는수요일, 2020.06)>, <사물에게 배웁니다(임진아, 자기만의방, 2020.07)>, <죽은 자의 집 청소(김완, 김영사, 2020.05)>가 꼽혔다. 에세이에 관심이 없거나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위주로 독서를 하거나 열독자가 아니라면 처음 듣는 책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땡스북스의 스타일이고 많은 이들이 때로 시간을 내서 이 공간을 찾는 이유이다.


금주의 땡스, 북스!(2020년 8월 10일~2020년 8월 16일)


내가 땡스북스를 찾는 또 하나의 특별한 이유는 콘셉트가 뚜렷한 기획 전시 때문이다. 땡스북스는 2018년 서교동 사거리에서 보보호텔을 끼고 꺽어서 걸어올라 가면 보이던 잔다리로 28 더갤러리 1층에서 현재의 합정역과 상수역 사이 양화로 6길 골목길 어귀로 이사를 했다. 서점 규모는 더 작아졌지만 한 달에 한 번 출판사와 함께 머리를 맞대 다양한 주제와 방식으로 책을 선보이는 기획전은 더 알차 졌다. 쇼윈도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해 지나가던 사람들도 누구나 땡스북스에서 진행 중인 책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서점 안에서는 전시와 관련된 작가들의 소품, 미처 책에는 다 담지 못한 이야기 등을 보고, 관련 이벤트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그저 보고 읽는 책에서 오감으로 느끼는 책으로 감각이 확장된다. 땡스북스 전시회를 찬찬히 보고 있으면 과잉 소비, 걷는다는 것, 식물과 생명, 도시화,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 위한 작가의 노고와 창작의 고통 등 중요하지만 잊고 살던 생각할 거리들이 머릿속에 찾아온다. 한 달간 진행되는 전시 덕분에 한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건실한 작은 출판사와 정성을 쏟아 출간한 책들을 새롭게 알게 된다.


땡스북스에서는 평대보다도 벽면의 서가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다. 책장 한 칸의 폭이 좁아서 1.5~2cm 남짓한 책등에 적힌 책의 제목에 집중이 잘 된다. 한 칸에 12권 내외의 책이 꽂혀있는데 한 권, 한 권 고르게 특색이 눈에 들어온다. 일반 책장보다 3~5권가량의 책이 적게 꽂혀있을 뿐인데 주목도는 매우 높아졌다. 실로 디자인을 핵심 운영 철학에 둔 서점에서 만든 책과 독자 모두를 배려한 어마어마한 효과였다. 이미 땡스북스는 '책과 디자인을 중심으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다 같이 성장하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신들이 세운 목표를 이룬 듯하다. 서점까지 갈 여건이 되지 않거나 여력이 없는데 좀 새로운 책을 읽어보고 싶다면 땡스북스 홈페이지를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스태프들이 추천하는 책과 그 이유를 적은 '땡스, 페이퍼!'와 한 가지 테마로 열 권 정도의 책을 큐레이션 한 '땡스, 초이스!', '땡스북스 금주의 책' 등 흥미로운 코너들이 기다리고 있다.



땡스북스 THANKS BOOKS


공식 홈페이지: http://www.thanksbooks.com/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thanksbooks/

트위터: https://twitter.com/thanksbooks/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thanksbooks/

주소: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6길 57-6 1층 (서교동 399-7)



책 정보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 푸른나무, 2004.01 - 개정판(2008.06) 절판


유시민,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돌베개, 2002.01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돌베개, 2009.03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소피의 세계 1, 2, 3>, 현암사, 1994.12 - 합본∙개정판(2015.12)


리영희, 임헌영 대담, <대화>, 한길사, 2005.03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인성기 옮김, <교양>, 들녘, 2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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