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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ug 20. 2020

출판인, 직업으로서의 매력과 보람

날 것의 원고와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 - 출판의 추억 (1)

이 글은 앞서 작성한 <출판인, 직업으로서의 매력과 힘겨움> 전문의 일부분입니다. ‘출판인의 직업적 매력과 장점’에 관한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앞선 글의 여러 내용을 주제별로 4개의 글로 나누었습니다. 긴 내용을 다 읽지 않고 관심 있는 주제를 읽으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앞선 글을 이미 읽으신 분께서는 동일한 내용이니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2006년 1월, 추운 겨울날이었다. 며칠 전 눈이 내려 응달에 쌓인 눈은 빙판이 되었다. 한국관광공사를 나와 꽁꽁 언 청계천 위 광교 사거리를 건너 여느 때처럼 영풍문고로 향했다. 궁궐 해설사 자원봉사자가 되기 위해 약 두 달간 일주일에 두 번이었는지, 세 번이었는지 한국관광공사 강당에서 교육을 받던 중이었다. 오전에 교육을 마친 후 영풍문고 종로본점에 들러서 책을 구경을 하는 게 어느새 고정 일과가 되었다. 대형서점이지만 한겨울 평일 낮 시간의 책방은 그리 북적이지 않았다. 광교 출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을 보면 각 분야 베스트셀러, 추천도서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 앞에 서서 요새 인기 있고 주목받는 도서가 무엇인지 한참을 쳐다보다가, 마음에 가는 책을 집어 들어 훑어보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는 시간이 참 좋았다. 어쩌면 그때부터 취업 진로 중 하나로 출판업을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한국관광공사는 2015년에 강원 원주 혁신도시로 이전했다. 중구에 있던 본사는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로 바뀌었다.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이왕주, 효형출판, 2005.08)>. 책 제목이 인상적인 캘리그래피로 그려진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 문화비평, 철학, 사회학 등에 관심이 많던 시기였다. 영화를 사례로 철학적 지식과 사고방식을 소개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직관적인 책의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트루먼 쇼>, <디 아더스>, <뷰티풀 마인드> 등 감명 깊게 본 영화를 다루고 있어서 금세 몰입이 되었다. 한참을 서서 읽다가 구매를 했고, 이 책 한 권은 훗날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약 8년 뒤 이 책을 기획하고 만든 출판사에서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면접 때 이 책이 나의 인생에 미친 영향을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했다. 마침내 취업 관문을 뚫고 일자리를 얻었다.




처음부터 출판인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진로를 이미 언론, 방송 쪽으로 염두하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자질과 능력이 필요한지는 잘 알지도 못한 채 그저 멋있어 보였고, 뭔가 좀 있어 보였고, 막연하게 스스로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원하는 대학의 관련 과에 입학을 했다. 대학교 4년 동안 ‘커뮤니케이션’, ‘문화이론’, ‘사회학’, ‘문화인류학’, ‘영화예술’ 등 재미있는 수업들을 듣고 배우고 때로는 토론도 하면서 전반적으로 즐거운 학업 시간(?)을 보냈다. 언론사 입사는 경쟁이 무척 치열하고 준비할 것도 많아서 언론고시라고도 불린다. 나는 깨작깨작 준비하는 맛만 보다가 일찌감치 포기한 경우이다. 운이 좋아서 기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나의 체력이나 스트레스 취약도를 고려를 하면 그 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준비를 하면 할수록 엄습해왔다. 아나운서는 쇼맨십은 둘째 치고, 바꿀 수 없는 타고난 여러 외모적 조건 때문에 활동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늦지 않게 미련 없이 포기했다. 핑계일 수도 있으나 어떻게 보면 나름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 그냥 그렇게 믿고 사는 게 나의 삶의 태도이다.




어찌어찌하다 이 또한 운이 좋게도 원하던 출판사에서 근무를 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출판인의 직업으로서의 가장 큰 매력은 아직 책으로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가공되고 꾸며지지 않은 원고를 원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 세상에 몇몇밖에 알지 못하는 작가의 완전히 다듬어지지는 않은 생각을 읽는다는 것, 비밀 회동에 초대받은 선택된 소수가 된 것 같은 쾌감이 있다. 더군다나 평소 좋아하거나 관심 있던 작가의 원고인데, 심지어 글까지 좋다면 그렇게 마음이 두근두근 설레고 흥분되지 않을 수 없다. 직접 쓴 글도 아닌데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냐고 반문을 한다면, 나조차 잘 이해가 되지 않은 감정을 설명을 할 길은 없다. 엄밀히 따지면 내가 잘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엔도르핀이 솟구치는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선배들의 말을 빌리자면, 한번 글밥 먹기 시작한 사람들은 희한하게도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굳이 설명을 해보자면 알 수 없는 운명에서 느껴지는 희열과 애증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힘이 들 때는 내가 담당했던 책들의 독자 리뷰나 SNS 태그를 찾아보곤 했다.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가 내게 그랬듯이 때로는 책 한 권이 개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때도 있다. 드물더라도 어쩌면 우연히 만난 만 원 얼마 하는 책 한 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절망과 고통에 빠져 인생에 회의를 느끼던 찰나, 자신의 유년기와 닮은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에서 위로를 받고, 하루나마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십분 공감을 할 것이다. 책을 읽고 각자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쓴 독자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진부한 말이지만 출판인으로의 보람과 사명감을 느낀다. 다시 기운을 내서 엉킨 매듭을 풀고 차근차근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갈 원동력이 생긴다. 스스로가 한 업무에 대한 구매자 피드백을 바로바로 확인해서 때때로 반영하거나,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매력적이다.



총 4개의 글로 구성.


[현재 글]

출판인, 직업으로서의 매력과 보람

 : 날 것의 원고와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 - 출판의 추억 (1)


왜 그토록 매력적인 출판인을 그만두었는가.

 : 출판사를 퇴사한 이유 - 출판의 추억 (2)

https://brunch.co.kr/@smilepearlll/80


'00 씨는 출판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 출판사 해고의 추억 - 출판의 추억 (3)

https://brunch.co.kr/@smilepearlll/81


왜 출판계는 열악하다고 하는 걸까.

 : 출판사 취업을 꿈꾸고 있다면 꼭 읽어야 할 글 - 출판의 추억 (4)

https://brunch.co.kr/@smilepearlll/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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