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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ug 20. 2020

'00 씨는 출판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출판사 해고의 추억 - 출판의 추억 (3)

이 글은 앞서 작성한 <출판인, 직업으로서의 매력과 힘겨움> 전문의 일부분입니다. ‘출판사에서 해고 당한 경험’에 관한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앞선 글의 여러 내용을 주제별로 4개의 글로 나누었습니다. 긴 내용을 다 읽지 않고 관심 있는 주제를 읽으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앞선 글을 이미 읽으신 분께서는 동일한 내용이니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각 내용은 출판사를 사례로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직원이자 직장인으로서의 비애에 관한 글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첫 번째 출판사 이야기다. 우리나라 단행본 출판사는 대략 인원 80~100명 내외의 대형·종합 출판사, 3~50명 내외의 설립 2~30년 남짓의 중형·중견 출판사, 10명 내외의 소형 출판사, 1인 출판사 정도로 구분이 된다. 교재, 유아동 전문 출판사를 제외한 종합, 중견 출판사는 50~70개 남짓으로 손에 꼽고, 아마도 소형 출판사와 1인 출판사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것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2020년 5월 발간한 <2019년 출판시장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신고 출판사 수는 59,306개이며, 2018년에 발행실적이 있는 출판사 수는 8,058개로 13.6%이다. 2018년 연간 1종을 발행한 출판사는 2,951개로 전체의 36.6%를 차지하여 발행실적별 출판사 비율 중 가장 높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연간 1-5종을 발행하는 출판사는 5,628개로 전체의 69.8%를 차지한다. 연간 101종 이상을 발행하는 출판사는 121개로 전체의 1.5%이다.


첫 번째 출판사였던 직원이 10명이 채 되지 않았던 소규모 출판사에서 만 1년 근무 후 비자발적인 퇴사를 강요받았다. 사장은 나를 불러서 ‘000 씨는 가만 지켜보니 출판 영업, 마케팅에는 영 적성이 맞지 않는 것 같아.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좋겠어. 닷새 후면 만 1년 근무이니 퇴직금은 지급이 될 거야.’라고 말을 했다. 한마디로 그 주 금요일까지만 출근을 하라는 통보였다. 감사하게도 나에게 얼마나 관심이 많았는지 적성까지 고려해 진로 고민까지 해주며 갈 길 가라는 말이었다. 말이 좋아 적성이고 퇴사였지. 눈 뜨고 코 베인다더니 합의를 가장한 불법 해고였다.


출판계에서 일을 하는 것을 갈망했기에 박봉에도 정말로 책에 대한 순수한 애정 하나로 열정적으로 열심히 일을 했었다. 연봉은 다른 회사에서 2년 8개월의 홍보 업무 경력을 감안해서 2천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2014년 최저임금: 5,210원). 그 가운데 일부(아마도 절반가량)는 중소기업 청년추가고용지원금의 혜택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사가 안내해준 대로 지원금 지급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관련 온라인 교육을 받았다. 아마도 지원 혜택이 종료되기 1~2개월 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조사관이 찾아와 몇 가지 물어보는 확인 절차가 있었다. 부디 지원금의 혜택을 더 받을 수가 없어서 직원을 내보낸 것이 아니길 바란다. 차라리 그냥 내가 하는 짓이 무언가 못마땅해서 고용주의 부당 권력을 행사한 것이길 바란다.


직접 당하고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지 믿기지 않는 상황에 기가 찼다. 인수인계해주는 사람도 없었는데도 알아서 방법을 찾아보고, 지인들에게 묻고 물어서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전임자는 어찌 된 일인지 간략한 업무 기술서 1장 만을 깨끗이 정리된 책상 위에 올려둔 채 이미 사라진 뒤였다.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사장 한 마디에 하루아침에 쫓겨나다시피 정을 붙였던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던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울었다. 억울하고 서러워서 울고 또 울었다. 이해가 가지 않아서, 부당해서, 불합리한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세상이 떠나가라 목 놓아서 꺼억 꺼억 울었다. 이러다가 죽겠다 싶어서 캐리어에 짐을 꾸려서 부모님 댁으로 갔다.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한 채 쥐 죽은 듯이 몇 날 며칠 잠을 잤다. 하루 한 끼 엄마가 끓여준 죽을 먹었다. 그러다 좀 정신이 들면 동생 방 책장에 꽂혀 있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말하고 있었다.


전쟁통에도 사랑은 꽃핀다고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교제를 시작한 지금의 남편은 훗날 이 상황을 듣고는 중소기업 도처에서, 특히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디자인 업계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비일비재하더라도 분명 잘못되었고, 너무나도 불합리한 상황인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부터 잘못된 거라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렇다. 비단 출판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근무 처우였다.


퇴직금이 급여에 포함이 되어 있으며, 연봉을 1/13로 나눠서 지급을 하는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출판계에 들어오면서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출판사에 첫 출근을 한 날, 같이 식사를 하는데 동료들이 ‘우리 회사에는 휴가가 없다.’라고 알려줬다. 그게 무슨 말이지?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제공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사항인데 휴가가 없다니?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회사 내 휴가라는 개념이 없고, 쉬고 싶으면 이사에게 얘기를 한 뒤 쉬는 방식이라고 했다. 유급휴가 이야기를 꺼내면 이사는 ‘그냥 말하고 쉬면 되지, 휴가를 정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응수한다고 했다. 그나마 여름휴가 5일은 보장이 된다고 했다. 내가 이곳에 영업/마케팅 담당 직원으로 채용이 된 건지, 가족 경영 출판 구조에서 상전을 모시는 노비로 선택이 된 건지 께름칙했다.



총 4개의 글로 구성.


출판인, 직업으로서의 매력과 보람

 : 날 것의 원고와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 - 출판의 추억 (1)

https://brunch.co.kr/@smilepearlll/79


왜 그토록 매력적인 출판인을 그만두었는가.

 : 출판사를 퇴사한 이유 - 출판의 추억 (2)

https://brunch.co.kr/@smilepearlll/80


[현재 글]

'00 씨는 출판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 출판사 해고의 추억 - 출판의 추억 (3)

https://brunch.co.kr/@smilepearlll/81


왜 출판계는 열악하다고 하는 걸까.

 : 출판사 취업을 꿈꾸고 있다면 꼭 읽어야 할 글 - 출판의 추억 (4)

https://brunch.co.kr/@smilepearlll/82



자료 출처


“‘월급x13개월=연봉’? 이건 아닙니다” | 컴퍼니 타임즈(잡플래닛) | 2020.05.22


내일부터 해고…대표님 정말 힘든거 맞아요? | 컴퍼니 타임즈(잡플래닛) |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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