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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ug 20. 2020

왜 그토록 매력적인 출판인을 그만두었는가.

출판사를 퇴사한 이유 - 출판의 추억 (2)

이 글은 앞서 작성한 <출판인, 직업으로서의 매력과 힘겨움> 전문의 일부분입니다. ‘출판사를 퇴사한 이유’에 관한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앞선 글의 여러 내용을 주제별로 4개의 글로 나누었습니다. 긴 내용을 다 읽지 않고 관심 있는 주제를 읽으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앞선 글을 이미 읽으신 분께서는 동일한 내용이니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각 내용은 출판사를 사례로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직원이자 직장인으로서의 비애에 관한 글이기도 합니다.



회사에서 피해야 할 몇 가지 유형의 일꾼이 있다. 일 미루기 신공을 보이는 일꾼, 항상 날이 서 있는 고슴도치형 일꾼,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나을 듯한 무기력한 일꾼, 상황에 따라 말이 바뀌는 갈대형 일꾼, 직장을 전쟁터로 만드는 편 가르기 일꾼 등등. 10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일꾼을 만났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주의해야 할 일꾼은 바로 이들이다. 빅마우스!

_ 강지연·이지현, <일꾼의 말>, 시공사, 2020.07.25, 157쪽 중에서


이제부터는 그토록 매력적인 ‘출판인’을 왜 그만두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직전에 다녔던 회사는 10년 정도는 근무를 할 생각이었다. 출판사 가운데서 내가 가장 근무를 희망했던 회사였다. 운이 좋게도 출판계에 발을 디딘 지 1년 만에 ‘타이밍’이 맞아 원하던 종합출판사에 입사를 했다. 바라던 대로 좋아하던 작가들의 원고를 검토할 기회가 주어졌다. 나의 기획이 진행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재권자를 설득하면 비용을 아낌없이 투자해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모르는 것을 알려줄 선배들이 도처에 있었고, 업무 체계와 보고 절차라는 것이 존재했다. (한편, 선배 개개인이 신입사원을 잘 이끌어줄 역량을 갖추었는지, 업무 체계가 올바르며 제대로 작동을 하고 있는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매년마다 전년보다 잘 성장을 하고 있다고 성과를 인정받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최상의 평가를 받은 적은 없지만 매번 좋은 평가였기에 급여는 매년 120만 원가량씩 상승했고, 성과급으로 1개월 월급의 절반치인 120~150만 원을 받았다. 성과급을 포함해 매년 적어도 240~250만 원 이상, 전년도 월급의 4/5 정도의 금액을 매해 차곡차곡 쌓아온 셈이다. 성취감 측면에서 만족스러웠다.


출판사도 회사이고 조직이라 <일꾼의 말>에 나온 것 같은 피해야 할 일꾼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같이 자주 부딪히며 일을 하는 이들 중 이런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회사 생활은 참 고달파지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회사의 조직력이 무너지고 곪아가던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졌다. 안타깝게도 주위에는 점점 피해야 할 일꾼들이 늘어갔다. 나쁜 기운은 빠르게 전파되어 내 안의 무기력증은 만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이유로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하나, 둘씩 떠났다. 퇴사는 유행처럼 번져갔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어디를 가더라도 분명히 잘 해낼 거'라고 하루라도 퇴사자에게 격려와 응원의 인사를 건네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나보다 먼저 입사를 한 동료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빈자리는 새로운 사람들로 빠르게 메꿔져 갔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또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더이상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마지막으로 웃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잘 웃는 사람인데, 웃음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이곳을 떠난다고 해도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환하게 웃는 날이 올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벌이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기에 감정적으로 결정하지 않도록 고민의 나날을 이어갔다. 나는 괜찮다고, 다들 이러고 살아간다고, 실력을 발휘하면서 인정을 받아 자리를 잡고 있다고, 상사나 동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듣지 않고, 아쉬울 것이 없는 직장인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이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꾸역꾸역 하루하루 버텼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저하돼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었다. 잠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업무 시간 중간에 휴게실에서 1~2시간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처방받은 약을 복용을 하고 매일 푹 쉰다면 몇 주 뒤면 완치가 될 것이었다. 업무량은 상사에게 당분간 조정을 요청하고, 몸이 완전히 회복된 이후 팀원들에게 부과되던 업무를 다시 가져와 그동안 못했던 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여 메꾸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회사 생활을 계속 이어가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몸의 이상 징후를 계기로 더이상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돈보다도, 일보다도 몸이 보낸 경고 신호가 나에게는 더 중요했다.


조직을 구성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이다. 10년 가까이 조직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진리는 사람들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나보다 권력관계의 위에 있는 상사, 임원, 사장과 같은 이들의 성향이나 태도가 바뀌는 것보다는 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걸 기대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이들의 지위는 서로 정치 싸움을 벌여서 한쪽이 패하거나, 실적에 치명적일 정도로 문제가 있거나, 횡령이나 성추행과 같은 도덕적 결함이 알려지지 않는 한 굳건하다. 이들은 서로 갈등 관계처럼 보이지만 직원들이 같은 이해관계와 동료애로 얽혀있듯이 마찬가지로 동질감과 연대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다. 지위에 위협이 되는 일이 발생하면 언제 상대에게 날을 세웠나 싶을 정도로 돌변한 태도로 서로가 서로를 지켜준다. 내가 가치관과 정체성을 바꿔서 그들 편에 서지 않는 한 내적 갈등과 괴로움을 계속될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차피 1년 또는 2년 후 그곳을 떠날 것은 불 보듯 자명했다. 인생은 예상대로 되지 않으니까 어쩌면 하루하루 살아내다가 계획한 대로 5년을 더 채워 10년까지 버텼을지도 모르겠다. 뭐, 결론적으로는 어차피 벌어질 일, 하루라도 빨리 일을 벌이자는 생각으로 사직 의사를 밝혔다. 시간이 지나 내가 욕을 하던 이들의 모습으로 둔갑하기 전에 손쉽게 이탈하는 길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총 4개의 글로 구성.


출판인, 직업으로서의 매력과 보람

 : 날 것의 원고와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 - 출판의 추억 (1)

https://brunch.co.kr/@smilepearlll/79


[현재 글]

왜 그토록 매력적인 출판인을 그만두었는가.

 : 출판사를 퇴사한 이유 - 출판의 추억 (2)

https://brunch.co.kr/@smilepearlll/80


'00 씨는 출판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 출판사 해고의 추억 - 출판의 추억 (3)

https://brunch.co.kr/@smilepearlll/81


왜 출판계는 열악하다고 하는 걸까.

 : 출판사 취업을 꿈꾸고 있다면 꼭 읽어야 할 글 - 출판의 추억 (4)

https://brunch.co.kr/@smilepearlll/82



책 정보


강지연·이지현, <일꾼의 말>, 시공사, 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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