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만 울려도 심장이 뛰었다.

신입사원에게 전화벨 그건 언제 울릴지 모르는 시험지 같았다.

by 경리언니찐나

언제 울릴지 모르는 시험지 같았다.

셋째 날 아침, 나는 회사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제일 먼저 전화기부터 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책상 위에 그냥 놓인 물건처럼 보였는데, 오늘은 달랐다.

이제 그건 언제 울릴지 모르는 시험지 같았다.

받아야 한다는 건 알겠고, 못 받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겠는데, 막상 울리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입 안에 제대로 붙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면서 속으로 몇 번 연습했다.

“안녕하세요, 다온산업입니다.”

“네, 확인 후 전달드리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짧은 문장인데도 어색했다.

말은 쉬운데, 회사 전화로 하면 전혀 다른 말이 되는 것 같았다.


윤팀장님은 출근하자마자 메일을 확인했고, 지혜 씨는 거래처 한 곳과 통화를 시작했다.

나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엿들었다.

너무 자연스러웠다.

상대 이름을 듣고, 용건을 정리하고, 필요한 말만 짧게 하고, 끊고 나면 바로 메모했다.

내 눈엔 그것도 기술처럼 보였다.

나는 아직 키보드 단축키도 다 못 외웠는데, 저 사람들은 통화까지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그때 윤팀장님은 내 쪽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전화 오면 직접 받아보세요.”

나는 순간 웃는 표정을 하려다가 실패했다.

“네.”

짧게 대답은 했지만, 속은 전혀 짧지 않았다.


오늘은.

직접.

받아보세요.

세 단어가 머릿속을 오래 맴돌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요.”

윤팀장님은 모니터를 보면서도 내 긴장을 눈치챘는지 덧붙였다.

받고, 회사명 말하고, 누구인지 듣고, 무슨 일인지 적으면 돼요. 다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정확히 듣는 게 먼저예요.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정확히 듣는 게 먼저.

나는 얼른 수첩을 꺼내 적었다.

전화 = 바로 해결보다 정확히 듣기


사무실은 오전이 되자 어제보다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프린터가 쉬지 않고 돌아갔고, 누군가는 창고 쪽으로 서류를 들고 뛰어갔고, 누군가는 메일 제목만 읽고도 표정이 바뀌었다.

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괜히 더 몸을 작게 하고 앉아 있었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나는 본능적으로 윤팀장님 쪽을 봤다.

그런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에게 서류를 가져다주고 있었고, 지혜 씨는 이미 다른 전화로 통화 중이었다.

사무실 안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정확히는, 전화벨만 더 크게 들렸다.


나는 손끝에 힘을 주고 수화기를 들었다.

“아… 안녕하세요. 다온산업입니다.”

첫 문장은 겨우 괜찮았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쏟아졌다.

“네, 서광오피스 최대린데요. 지난주 견적 건 관련해서 확인 좀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나는 거의 첫 문장부터 머리가 하얘졌다.

서광오피스.

최대리.

지난주 견적 건.

확인할 게 있다.

분명 들었는데, 동시에 너무 빨라서 손이 먼저 굳었다.

“네,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렇게 말해놓고도 펜을 어디다 뒀는지 잠깐 못 찾았다.

수첩은 펼쳐져 있는데 펜은 안 보였고, 손은 자꾸 다른 데를 더듬었다.

겨우 펜을 잡았을 때쯤 상대가 다시 말했다.

“복사용지 단가랑 파일홀더 수량 기준이 지난번이랑 같은지 확인 좀 해주세요. 그리고 오늘 안으로 회신 가능하신지도요.”

나는 그 말을 거의 받아 적듯이 썼다.

복사용지 단가.

파일홀더 수량 기준.

지난번이랑 같은지.

오늘 안 회신 가능?

그런데 적고 나니 또 막막했다.

이걸 내가 답해야 하나?

아니면 전달만 하면 되나?

무슨 말을 지금 해야 맞는 거지?

나는 잠깐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메모 중이라서요. 다시 한 번만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말하고 나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혹시 짜증을 낼까 봐 순간 겁이 났다.

그런데 상대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네. 복사용지 단가, 파일홀더 수량 기준 지난번이랑 같은지 확인 부탁드리고요. 오늘 안으로 회신 가능한지만 알려주세요.”

이번엔 조금 더 차분하게 적을 수 있었다.

나는 메모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 확인 후 전달드리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니 손바닥이 축축했다.

정말로 전화 한 통이 끝났을 뿐인데, 숨이 찼다.

몸이 긴장한 채로 오래 서 있었던 사람처럼 어깨까지 뻣뻣했다.


윤팀장님은 자리로 돌아와 내 쪽을 봤다.

“전화 받으셨어요?”

나는 수첩을 꼭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서광오피스 최대리님인데, 지난주 견적 건 관련해서 복사용지 단가랑 파일홀더 수량 기준 지난번이랑 같은지 확인 부탁드리고, 오늘 안으로 회신 가능한지도 알려달라고 하셨어요.”

윤팀장님은 내 메모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잘 받았네요.”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이게요?”

“네. 누가 전화했는지, 무슨 일인지, 언제까지 필요한지 다 적었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까부터 움켜쥐고 있던 어깨 힘이 아주 조금 풀렸다.

잘 받았다고?

정말로?

윤팀장님은 내 수첩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짚었다.

“전화는 잘 말하는 사람보다 잘 남기는 사람이 덜 틀려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

잘 말하는 사람보다 잘 남기는 사람.

그 말은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나는 말주변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 순간 대응이 빠른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남기는 건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 문장을 수첩에 크게 적었다.

전화는 잘 말하는 것보다 잘 남기는 게 중요하다


윤팀장님은 내 모니터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제 다음은 뭐 해야 하죠?”

나는 잠깐 생각했다.

“확인해서 전달해야 해요.”

“누구한테?”

나는 또 잠깐 멈췄다.

그러고 보니 그게 더 중요했다.

내가 직접 답하는 게 아니라, 누구한테 확인해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견적 건이면… 대표님이나 윤팀장님한테요?”

윤팀장님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전화는 받는 것보다 어디로 연결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 말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전화를 받는 건 시작일 뿐이고, 진짜 일은 그다음이었다.

나는 대표님에게 갈 메모를 정리해서 보여줬다.

대표님는 종이를 한 번 보더니 말했다.

“아, 서광이요? 지난번이랑 조건 같아요. 오늘 오후에 회신 가능하다고 해줘요.”

그는 정말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또 하나 배웠다.

누군가에겐 아주 쉬운 대답도, 누군가에겐 확인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윤팀장님은 말했다.

“그럼 다시 전화 드리거나, 메일로 회신해도 되고요. 이런 건 상황에 따라 달라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화로 바로 말씀드리는 게 나을까요?”

“간단한 확인이면 전화도 괜찮죠. 대신 내가 지금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말인지 먼저 생각해야 해요.”

그 말이 참 중요하게 들렸다.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말인지.

나는 지금까지 회사에서 제일 무서운 게 ‘모르는 걸 들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더 무서운 건 제대로 모르면서 말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잠시 후 나는 다시 서광오피스 번호를 눌렀다.

전화 연결음이 길게 들렸다.

아까 받을 때보다 거는 쪽이 더 긴장됐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해야 하니까.

“네, 서광오피스입니다.”

“안녕하세요, 다온산업 김서윤입니다. 아까 문의주신 건 관련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덜 떨렸다.

상대가 “네” 하고 대답하자 나는 메모를 다시 내려다보며 말했다.

“복사용지 단가와 파일홀더 수량 기준은 지난번과 동일하고요. 오늘 오후 중으로 회신 가능하다고 전달받았습니다.”

잠깐의 침묵 뒤, 최대리가 말했다.

“네, 확인했습니다.”

그 짧은 말이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확인했습니다.

나는 겨우 “네, 감사합니다”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방금 전화를 받은 것뿐 아니라, 회신까지 했다는 걸.

별것 아닌데도 심장이 꽤 오래 뛰었다.


윤팀장님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어땠어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받을 때보다 걸 때가 더 떨렸어요.”

그녀는 드물게 입가가 조금 풀렸다.

“다 그래요. 근데 방금처럼 메모 보고 말하면 돼요. 기억으로 말하려고 하면 더 꼬여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아주 작게 웃었다.

결국 오늘도 답은 비슷했다.

외워서 버티는 게 아니라, 남겨서 버티는 것.


점심시간, 지혜 씨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오늘 전화 받으셨어요?”

나는 괜히 쑥스러워서 웃었다.

“네. 서광오피스요.”

“오, 최대리님?”

“네. 목소리가 되게 빠르시더라고요.”

지혜 씨가 바로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요. 그분은 항상 급해요. 근데 이상하게 틀린 말은 안 하세요.”

나는 숟가락을 들고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전화 받기 전에 전 그냥 안 틀리고 말하는 게 제일 중요한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죠?”

“네. 오히려 잘 적는 게 더 중요하더라고요.”

지혜 씨가 웃었다.

“이제 감 오시네요.”

그 말 한마디가 꽤 기분 좋았다.

이제 감 오시네요.

아주 잘한다는 말도 아니고, 다 배웠다는 말도 아니었지만, 지금 내게는 그 정도가 딱 좋았다.


오후엔 전화가 두 번 더 왔다.

한 번은 택배 기사님이었고, 한 번은 거래처가 담당자 연결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처음 전화보다는 덜 떨렸지만, 그렇다고 편하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아침보다 조금 나아져 있었다.

수화기를 들기 전에 수첩을 폈고, 이름과 용건부터 적었고, 섣불리 답하지 않았다.

그 작은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퇴근 직전, 나는 오늘 적은 메모들을 다시 봤다.

서광오피스 최대리

복사용지 단가 확인

파일홀더 수량 기준 동일 여부

오늘 오후 회신 요청

오전에는 그 메모가 겨우 숨 돌릴 틈처럼 느껴졌는데, 지금 보니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해준 줄 같았다.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오늘도 피곤했다.

하지만 어제와 또 달랐다.

어제는 서류 이름이 낯설었고, 오늘은 사람의 목소리가 무서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무서움도 조금은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가 전화했는지.

무슨 일인지.

언제까지 필요한지.

어디로 전달해야 하는지.

회사는 늘 생각보다 많은 걸 한꺼번에 요구했지만, 그걸 전부 머리로 버티는 게 아니라 하나씩 적어두면 덜 무서울 수도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짧게 적었다.

전화는 말로 지나가지만, 업무는 메모로 남는다.

그 문장을 쓰고 나니, 아침보다 조금 덜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일도 전화는 울릴 것이고, 나는 또 긴장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적어도 안다.

전화벨이 울릴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겁먹는 게 아니라 적을 준비를 하는 것이라는 걸.

그 정도면,

셋째 날치고는 꽤 잘 버틴 거였다.

이 화 실무 포인트

전화 응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해결하는 것보다 정확히 듣고 남기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누가 / 무슨 일로 / 언제까지 필요한지를 먼저 적어야 합니다.

잘 모르겠으면 "다시 한 번 말씀 부탁드립니다"라고 확인하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전화는 받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라, 누구에게 전달하고 어떻게 회신할지 판단하는 과정까지 포함됩니다.

기억으로 버티기보다 메모를 기준으로 말하는 습관이 실수를 줄여줍니다.

다음 화 예고

대표님이 내 자리 앞에 파일 하나를 내려놓았다.

“이거 오늘 안으로 견적서 하나 써보세요.”

나는 그 종이를 받고도 한참 넘기지 못했다.

품목, 수량, 단가, 공급가액…

글자는 읽히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다.

다음 화〈견적서를 쓰라는데 손이 멈췄다〉

그날 처음 알았다.

전화보다 더 무서운 건, 내 이름으로 보내야 하는 첫 문서라는 걸.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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