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결혼식 사회자로 바라본 결혼식 + 사회대본 (첨부)
나이가 들면 누구나 그렇듯 수많은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다. 중요치 않은 결혼식은 참석하지 않으려 해도 꼭 참석해야 하는 결혼식은 늘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참 많은 이들의 결혼식에서 박수로 축하해주었다.
그동안 참석한 결혼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결혼식은 어떤 결혼식일까?
기억에 남는 결혼식의 기준은 밥이 맛있거나.. 화려하거나.. 결혼식의 주인공과 친하거나와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내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결혼식은 직접 사회를 봤던 결혼식이었다.
지금까지 세 번의 결혼식 사회를 봤다. 회사 팀장님 부탁으로 한 번, 친구의 요청으로 또 한 번 사회자로 섰었다. 그리고 이번 예식이 내게 있어 세 번째 사회였다..
앞선 두 번의 사회와 달리 이번 사회는 부담이 많이 갔다. 신랑, 신부뿐만 아니라 양가 부모님, 신랑의 친척들까지 모두 오랜 기간 알고 지낸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사회는 특별한 준비 없이 미리 받은 대본과 애드립으로 예식을 진행했지만 이번만큼은 준비가 필요했다.
결혼식 일주일 전, 틈틈이 유튜브로 결혼식 사회 동영상을 찾아봤다. 영상 속 이른바 전문 사회자들이 진행하는 예식은 깔끔하고 부드러웠다. 과하지 않고, 정갈했다. 하지만 예식의 주인공들과 사회자 사이의 연결고리가 없어서 인지 아니면 사회자가 너무 전문가처럼 보여서인지.. 큰 감동은 없었다.
예비 신랑과 신부는 경건한 분위기의 예식을 원했다. 그래서 특별한 이벤트나 과도한 애드립없이 조용하고 차분한 결혼식이 되도록 신경을 썼다. 신부에게 기본 대본을 받고 예식에 맞게 모든 멘트를 수정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신부이기에 사회자가 말을 많이 해서도, 너무 튀는 행동이나 멘트는 삼가야 한다.
그렇게 멘트는 최대한 짧고, 진심이 묻어나도록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대본 수정이 완료되고, 문장이 입에 붙도록 대본을 읽고 또 읽었다.
예식은 일요일 오후 3시. 시간은 충분했다.
정갈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예비신랑과 신부에게 줄 편지를 타이핑하여 한지에 출력했다.
축의금만 전달하기엔 무엇인가 아쉬웠기에.. 축의금 안에 정성스레 쓴 편지를 함께 담았다. 편지와 축의금 그리고 발리로 신혼여행을 떠날 그들이 쉬면서 읽기 좋을 두 권의 책을 구매하여 조그마한 쇼핑백에 축하하는 마음을 오롯이 담았다.
늦지 않게 식장에 도착하니 여느 결혼식이 그렇듯 식장은 붐볐고, 신랑 신부는 들떴고, 여기저기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의 인사로 시끌벅적했다. 그에 비해 결혼식을 준비하는 내 마음은 차분했다.
사회자 단상에 서서 홀을 응시하니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화촉을 점화하러 걸어오시는 두 어머니의 만감이 교차하는 모습, 긴장은 했지만 밝고 씩씩하게 웃는 신랑의 모습, 신부보다 더 긴장한 아버님의 모습, 끝까지 결혼식을 응시한 하객과 휴대폰만 응시한 하객의 모습까지.. 객석에 앉아 박수만 칠 때와 달리 결혼식의 모든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사히 결혼식 순서를 마치고 모든 이의 축복 속에 경건한 결혼식이 끝이 났다.
신랑 신부의 오작교 역할에서부터 결혼식 사회까지.. 누군가의 결혼을 위해 이토록 준비했던 적은 없었다. 가장 친한 두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돌아오는 이번 주 주말에도 어디선가 수많은 결혼식은 열릴 테고 그때마다 우린 누군가의 지인으로 결혼식에 참석할 것이다. 그들에겐 한 번 뿐이지만 어쩌면 우리에겐 자주 반복되는 주말의 일상이기에 축하하는 마음이 덜할 때가 분명 있다.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친하지 않은 회사 동료나, 지금은 연락조차 소원해진 옛 친구의 결혼식이라면 사실 축하하는 마음이 덜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소액의 축의(내 경우엔 5만 원)를 하는 결혼식은 축의금만 부탁하거나, 아예 참석하지 않는다. 그게 서로를 위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심을 담아 축하해줘야 하는 결혼식에 의무감으로 참석하고 있는 내 모습을 내가 이해할 수 없었고, 가늘고 의미 없는 대인관계는 정리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결혼식에 축하하는 마음까지 형식적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결혼은 두 사람만의 예식이 아닌 양가 부모님의 마음도 헤아려야 하기에.. 스몰웨딩까지 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결혼 당사자의 지인들만큼은 진심을 담아 축하하는 사람들로 채워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인원이 몇 명 되지 않는다 해도.
때론 축의금만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전달이 안 될 때가 있다. 그럴 땐 결혼식 도우미 역할을 자처하거나, 자그마한 선물을 하거나 어떻게든 마음이 전달되도록 노력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진심을 담아 축하하는 방법이다.
오는 7월엔 친하게 지냈던 사촌누나의 결혼식인데.. 어떤 선물을 해야 할까.
진심을 담은 축하가 어렵다는 걸... 요새 참 많이 깨닫는다.
결혼을 앞둔 누군가에게 사회 부탁을 받으면 남의 결혼식 망치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그럴 땐 결혼식 기본 식순에 약간의 임팩트 있는 멘트를 추가하면 좋다. 나이가 드니 웃음과 유머러스한 분위기보단 조금은 경건하고 차분한 결혼식을 더 선호하게 된다. 이번 결혼식도 그랬다.
만일 누군가 조금은 차분하고 경건한 예식 사회 부탁을 받았다면... 이 사회 대본이 약간의 도움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