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여운이 남는 독서리뷰_7.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두 남녀는 두 사람의 첫 시작에서 행복만을 그리지만,
힘든 가정에서 자란 두 남녀는 혹시나 하는 불행함을 먼저 떠올리며 걱정한다.
누군가의 말이었는지 아니면 책을 통해 지나간 문장인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이 글귀가 뇌리에 박힐 만큼 너무 강렬했다. 화목하다는 것과 힘들다는 것 모두 주관적인 관점임에 틀림없지만 우린 대부분 알 수 있다.
화목한 가정의 모습은 비슷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하던, 풍족하지 않던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가정의 큰 위기 없이 자란 자녀의 모습은 밝다. 일찍 철이 들 이유도 없고, 적당한 부모의 관심과 보호 속에 사랑받으며 또 사랑을 주며 자고 나란다.
이처럼 화목한 데에 특별한 이유가 없지만, 화목하지 않은 데엔 제각각 이유가 있다.
아버지가 매일 술에 찌든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
엄마와 아빠가 매일 같이 싸우며 서로를 험담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자녀
그 싸움이 심해져 엄마 아빠가 서로 갈라서서 엄마 또는 아빠 혼자 자녀를 돌봐야만 했던 환경에서 자란 자녀
부모님 중 한 분이 병상에 오랫동안 계셨기에 항상 무거운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란 자녀
사별로 인해 한 부모 또는 친부모가 아닌 엄마 또는 아빠와 함께 자란 자녀
과도한 부모의 기대와 욕심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일찍 독립할 수밖에 없던 자녀
경제적으로든, 심적으로든 힘든 가정에서 자란 자녀의 모습 한 켠엔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 일상생활에선 잘 드러나지 않지만 중요한 순간, 자기도 몰랐던 그 내면이 무심코 튀어나와 스스로 당황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자녀에게 가장 힘든 건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남겨진 부모님이 한 분뿐이라는 사실이다. 자녀는 성인이 돼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꿈꾸지만 남겨진 부모님의 잔상은 의외로 강하다.
그 관계가 만일 딸과 홀로 남겨진 엄마라면, 두 사람의 애착관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어머니가 홀로 딸을 키운 가정에서, 딸은 자식 그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여느 가정보다 서로 더 의지하게 되고, 딸은 사랑을 받고 커야 할 시기에 삶의 어려움을 먼저 맞닥들이게 된다.
그런 딸이 자라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며 어느 순간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새 가정을 꾸리려 할 때, 또는 그 딸이 자신의 아이를 낳아 기를 때, 엄마와 딸 사이 숨겨졌던 복잡한 감정선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는 심리상담가인 저자가 엄마와의 관계 문제로 고민하는 딸을 상담하며 기록한 상담 일지와 같은 책이다.
책에 언급된 사례들은 앞서 언급한 힘든 가정 속 딸과 엄마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힘든 가정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엄마와 그런 가정에서 애어른으로 자랄 수밖에 없었던 딸의 심리적 갈등이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폭탄과 같아 보였다.
엄마와 딸은 서로의 감정엔 신경 써줄 겨를이 없이 주어진 삶을 (남편과 아빠없이) 지탱해야 했기에 때론 멀어져야 했고 또 때론 너무 의지했기에 서로의 속을 모두 아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엄마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딸을 키워냈지만,
딸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엄마의 모습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감정적으론 쌓였던 화가 삶의 어느 시점에서 툭 터져나온 것이다.
Chapter 1. 멀어지는 법을 알면 가까워지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 거리감을 가질 수 없다면 친밀감도 만들 수 없다.
Chapter 6. 타인의 마음보다는 진짜 내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 내 마음이 온전하지 못하면 사랑도 건강할 수 없다.
많은 딸들이 엄마의 불행을 해결해야 한다는 불가능한 책임감과 그에 수반된 죄책감을 떠않는 경향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과하게 동일시하고 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고스란히 실감하기에 엄마는 자신이 아픈 것보다 딸의 아픔을 못 견뎌하고, 딸은 딸대로 엄마의 고통을 담담히 들을 수 없다.
그리고 책임감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진 나머지 서로의 고통과 감정을 그 무게만큼 덜어주지 못한다. 극단적인 경우 상처받아 울고 있는 마음에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내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으로, 또 타인의 감정을 타인의 감정으로 분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Chapter 9. 누구에게나 한 번은 홀로서기가 필요한 시점이 찾아옵니다.
Chapter 10. 지금의 내 삶은 누구 탓도, 누구 덕분도 아닙니다.
- 행복을 좇느라 행복할 수 없던 삶
배우자 선택에서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그 방향은 크게 2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부모와 닮았기에 선택하는 것, 다른 하나는 부모와 다르기에 선택하는 것이다.
Chapter 11. 치유받지 못한 마음으로는 누구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 아물지 않은 상처는 반드시 또 다른 상처로 돌아온다.
상처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거대한 착각과 환상 속에 사는 경우가 많다. 자신에게 일어난 그 '일'이 나쁘고 아프고 힘든 것이었을 뿐인데, '자기 자신'을 나쁘고 아프고 힘든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 시작하는 것이다.
충분히 사랑받은 사람만이, 기꺼이 누군가를 사랑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상처받은 내 마음을 충분히 안아줄 수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은 타인의 마음을 진심으로 기꺼이 안아줄 수 있다.
- 굳이 이해하려 하지 말고, 애써 외면하려 하지 말고...
상처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것도 아니고,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도 아니다.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중에서
우리 삶에 상처가 있다고 해서 그 상처가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사람은 그 상처에 타인보다 조금 더 민감하기에... 평소에 좀 더 조심해야 하기도 하고, 자신이 상처가 있음을 직시하고 그 상처가 그 사람의 삶을 잠식하지 않도록 항상 마음을 돌봐야 하는 것이다.
아들과 엄마 또는 아들과 아빠보다 딸과 엄마의 관계는 조금 더 감정적이다. 더욱이 의지해야 할 대상이 엄마와 딸 밖에 없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보다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감정들을 가만히 들여다봐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 그 감정이 너무 격해 책의 사례처럼 심리상담사를 통해 감정을 풀어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틈틈이 자신의 마음을 돌보며 감정이 격해지지 않게 다스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나는 아닐 거라며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기에... 내가 감내해야 하는 것이기에'라고 생각하여 무조건 덮어두는 건 저자가 조언한 것처럼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남성인 내게도 딸과 엄마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