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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Oct 18. 2018

좋은 필기구가 필요한 순간.

feat. 2018년 10월의 책과 그동안 읽은 책 몇 권.. 

# 만년필과 고급샤프

직업적으로 컴퓨터 키보드보다 펜이나 샤프를 들고 무언가를 써야 할 일이 많은 까닭에 항상 좋은 필기구에 눈이 간다. 고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지만, 난 고수가 아니기에 자꾸만 좋은 연장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그렇게 하나둘씩 사모은 1~2만 원짜리 샤프가 넘쳐났지만, 이번에 유독 눈이 가는 고급 샤프 하나가 있었다. 

'그래! 이거다.' 이 샤프를 끝으로 집에 있는 샤프가 모두 망가질 때까지 다시는 샤프를 사지 않을 것을 혼자 다짐하며 결제를 했다. 

그렇게 샤프를 결제하다 그 옆에 가성비가 좋아 보이는 만년필이 눈에 띄어 그것마저 담아가기를 해버렸다. 

좋은 펜이 더 좋은 글을 찾아 자꾸만 쓰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매우 어리석고 단편적인) 생각이 어쩌면 이런 충동구매를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물건을 소유한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겠지만, 이 두 필기구로 써 내려갈 수많은 글들이 더 행복한 경험으로 내게 남기를.. 기대해본다. 

더불어 이렇게 글로 남기는 건, 다시는 이렇게 충동구매하지 않을 거란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ㅠ


# 스쳐 지나간 책과 문장. 

독서 리뷰를 꾸준히 올리진 못했지만, 7월부터 3개월 간 그래도 꾸준히 20권의 책을 읽었다. 리뷰로 남기기엔 내가 가진 내공이 부족했고, 독서노트에 기록된 몇 가지 문장을 끄집어 내본다. 


1. 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_황경신

<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흐려지는 것도 추억입니까
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날아가는 것도 꿈입니까
잡을 수 없는 것도 삶의 흔적입니까 

온종일 그대에게서 달아날 궁리만 하던 그때는 
가도가도 깊은 사막인 줄 알았습니다. 
알알이 흩어진 지금 
나는 더 깊은 사막 속에 묻혀 있습니다. 

2.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_리처드 탈러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
남들 눈에 비치는 내 모습에 집착하는 문화, 집단 내에서의 평가에 개인의 자존감이 좌우되는 문화 아래서 성형 중독, 사교육 중독, 학력 위조, 분수에 안 맞는 호화 결혼식 등의 강박적 인정투쟁이 벌어진다. 사실 이건 모두 같은 현상이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 되나.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되는 건가. 배가 몇 겹씩 접혀도 남들 신경 안 쓴 채 비키니 입고 제멋으로 즐기는 문화와 충분히 날씬한데도 아주 조금의 군살이라도 남들에게 지적당할까봐 밥을 굶고 지방흡입을 하는 문화 사이에 어느 쪽이 더 개인의 행복에 유리할까.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는 결국 우리 스스로 자승자박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page 32,33)

3. 잘돼가? 무엇이든_이경미 

인생에 큰 굴곡은 없었지만 늘 미래가 안보이니까 답이 없고 무서웠다. 다들 열심히 답을 적고 있는데 나만 빈 시험지를 붙잡고 시간은 계속 흐르는 시험장에 앉은 기분이었다. 

힘든 일이라고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붙어라. 나는 늘 편한 길로만 도망 다녔던 거 같아. 비겁하게..
그래서 많이 후회가 된다. 

삶의 흔적, 치열하게 살아온 증거, 내겐 그게 없었다. 

사랑을 잃었다고 무너지면 나는 끝난다. 나한테는 나 밖에 없다. 매일, 매시간, 매초, 나를 때리며 악으로 버텨왔는데, 창피한 줄 모르고 아무 때나 울음을 터뜨렸다. 

4. 기억하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될까 봐_이지상 

<크레타섬, 그리스>
과거에는 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만 힘들고 나만 고통스러운 줄 알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세상의 모든 만물이 다 처절하게 살고 있었다. 그 장엄하고 슬픈 광경 앞에서 경건하게 옷깃을 여밀 때쯤 비로소 나는 나를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의 고통과 번뇌쯤이야 별 것 아니었다. 나의 소멸도 기꺼이 받아들일 만했다. 다만, 붉은 핏방울을 매일매일, 뚝뚝 흘리며 살고 싶었다. 한 끼의 식사와 한 모금의 물과 바람과 햇살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5.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_박준

<불친절한 노동>
고등학교 3학년, 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는 평소 잘 들어오지 않는 내 방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시험을 치르지 말라고 했다. 내일 시험을 보면 대학에 갈 것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을 공산이 큰데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너무 불행하고 고된 일이라고 했다. 더욱이 가족이 생기면 그 불행이 개인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번져나가므로 여기에서 그 불행의 끈을 자르자고 했다. 
절을 알아봐 줄 테니 출가를 하는 것도 생각해보라고 덧붙였다. 당시 나는 그 길로 신경질을 내며 아버지에게 나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과 삶에 지친 날이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에서 설핏 가난을 느낄 때면 나는 그때 아버지의 말을 생각한다. 

그 밖에 7만명의 아이들을 70년간 추적하여 부모의 기질, 삶의 환경 및 다양한 요인에 의해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기록한 <라이프 프로젝트>와 결혼을 약속한 커플이라면 꼭 한 번쯤 읽도록 추천하고 싶은 <스님의 주례사>는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서 글로 정리되면 리뷰로 남기려 한다. 


# 10월의 독서 

충동구매의 여파로 연말까지 도서구입은 최대한 자제하며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고 소장하고 싶은 책은 일독 후 구매하고자 도서관에서 책을 다량으로 빌려왔다. 

평균이라는 수치 속에 가려진 교육 현실과 나아가야 할 교육방향을 언급한 <평균의 종말>, 

독서교육이 얼마나 청소년 학습에 도움이 되는지 실제 경험과 사례를 바탕으로 쓴 <공부머리 독서법>, 

인간의 뇌를 통해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뇌과학적 측면의 자기개발서인 <뇌를 읽다>, 

2014년 멘부커상 수상작으로 하도 호평이 자자하여 읽고 싶어진 <먼 북으로 가는 좁은길>, 

한국인 최초 옥스퍼드대 수학과 정교수로 임명된 저자가 말하는 수학 <수학이 필요한 순간>

대여기간이 있으니 이 5권의 책을 3주 동안 모두 읽고자 한다. 


선택한 5권의 책이 모두 구미를 당길만한 즐거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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