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사랑한 작가 그리고 문장_3. 이석원
살다 보면 만남이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의 친밀함이나 얼마나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는지는 상관없이 그냥 그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가 기다려지는 그런 사람.
기다려진다는 건 설레여서 일수도 있고, 대화 속 배움이 있어서 일수도 있고, 새로워서 일수도 있고 그냥 그 사람과의 만남이 재미있어서 일수도 있다.
이와 비슷하게 읽고 싶어 지는 글이 있다. 여러 권, 작가의 글을 읽었지만, 또다시 기다려지는 그런 글.
일상의 찰나와 가슴에 담아둔 생각을 이리 감성적으로 담아내는 작가는 내가 아는 한 이병률과 이석원뿐이다.
이병률 작가가 편집장으로 있는 달 출판사에서 이석원 작가의 신간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이 세상에 나왔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그의 글이기에... 출간되기도 전에 예약도서로 구매하였다.
어떤 연유로 난 그의 글을 그토록 기다렸던 걸까?
먼저 보내지 말아야 할 사람을 먼저 보낸 이들은 그 슬픔이 얼마나 큰지... 말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을 보내야만 했던 그 순간엔 정신이 없다가도..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된 후 그때의 감정과 슬픔을 글로 정리하려 하면 그때 느낀 감정이 글에 잘 담기지 않는다.
그렇게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매년 돌아오는 기일. 나도 수없이 먼저 간 이를 생각하며 글을 써보려 했지만 잘 써지지 않았다.
책을 받은 지난 토요일.
2호선 지하철 한켠에 앉아 '글.. 참 잘 쓴다..' 감탄하며 책을 읽다 47페이지에서 그만 울컥했다. 대낮에.. 다 큰 어른이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 눈물을 흘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잠시 책을 덮고, 왜 내가 울컥하는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나도 작가처럼 먼저 떠난 누군가가 생각나서였을까... 아니면 그의 글이 내 마음을 후벼파셔 였을까.
어쨌든 대낮에 주책이었다.
작가의 사랑 이야기는 어딘가 모르게 쓰다. 그 역시 한 여자를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있고 그 사람과의 즐거운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을 텐데... 책 속에 담아낸 글엔 달콤한 이야기보단 쓰린 이야기들이 더 많다.
사랑을 하면서도 외롭고...
지나고 보니 내가 그때, 널 딱 이만큼만 사랑했던 것 같고...
끝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만났고...
그렇게 서로가 느꼈던 사랑의 온도가 달랐기에... 작가의 글은 무척이나 쓰게 느껴졌다.
작가가 몽글몽글한 사랑 이야기보단 이렇게 쓰디쓴 이야기를 더 잘 쓰기에 그런 글 위주로 담았을 거라 추측해봤다. 어쩌면 작가는 누구보다 연애의 고수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처럼 우린 모두 저마다의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니.
작가의 글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타인의 마음에 혹여나 생채기를 남기지 않을까 걱정하며 상대의 입장에서 글을 쓰기 때문이라 난 생각한다.
이런 류의 글에 대표적 키워드는 엄마였다.
그는 이번 책에서 엄마와의 에피소드를 많이 담았다. 가장 소중하지만 때론 모진 소리와 심술과 투정을 부리게 되는 엄마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은 아련했다.
'모진 소리, 잔소리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떤 순간이 되면 잔소리를 하고 있는 자식들의 모습을 작가는 자신을 투영하며 오롯이 글에 담아내고 있다.
타인에게는 그토록 배려심 많은 우리인데... 왜 가장 가까운 엄마라는 대상엔 그게 참 어려운지 글을 읽으며 반성하게 된다.
장례식장의 풍경은 어떤이에겐 슬픔을 주지만, 또 다른 어떤이에겐 배움과 경험을 안겨준다. 일상의 모든 사건들은 이렇듯 당사자가 누구냐에 따라 사건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수많은 장례식장을 다니며 그 자리가 망자를 보내는 이를 위로하는 자리로만 생각했었는데 내가 그 순간 삶의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자리였단 걸... 그땐 왜 알지 못했을까. 나도 장례식장을 다니며 아주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을텐데.
작가란, 이렇게 일상의 찰나를 다른 시각으로 써야 한다는 걸 그의 글을 통해 또 배운다.
작가는 그의 블로그에 다양한 글을 올리는데 그 공간의 이름이 <글을 위한 글>이다. 그곳엔 날 것 그대의 글이 올라오기도 하고, 저자의 색채가 뚜렷한 글이 실리기도 한다. 전체적인 글의 톤을 살펴야 하는 책과 달리 독자와 소통의 공간인 그곳이 어쩌면 작가 본연의 모습을 더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133편의 단편 중 책 제목으로 선정한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 길었던 밤은 작가에게 행복함을 남긴 시간이었을까?
아니면 행복함 너머에 담긴 그리움을 품은 그런 밤이었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밤'이란 이중적 의미가 좋아 '그냥' 선택한 제목일까?
작가의 손을 떠난 책은 이제 독자가 생각한 대로 그 의미가 마음대로 정해지겠지.
# 마지막으로.
내가 가진 필력의 한계로 인해 어떤 식으로 리뷰를 쓰든, 그의 책 소개를 만족스럽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 속에 담긴 133편의 에세이 제목 중 인상 깊은 키워드로 짤막하게 그의 책을 소개해보았다.
책을 소개하며 마음이 동했던 구절이나 문장을 리뷰에 담지 않았다. 그저 작가의 글을 읽고 내 생각만 리뷰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에세이 책 3권은 누가 읽던, 분명 어느 한 구절에서 마음이 동하게 된다. 그래서 굳이 내가 읽고 마음이 동한 구절을 리뷰에서 담을 이유가 없었다.
리뷰 속 어떤 키워드에 마음이 동했다면, 올 겨울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읽으면 좋을... 그런 책이다.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