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소향 Aug 29. 2021

#9 관계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관계의 단단함은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조금 더 솔직하자면, 가족 이외의 관계는 단단할 필요는 없다고 확신한다.


우린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당연히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관계가 만들어지고, 어떤 관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없이 단단해지기도 하고 또 어떤관곈 소원해지기도 한다.

10대에겐 친구가 전부이기에 친구관계가 더없이 중요하다.

친구들이 하는 건 나도 따라 해야 하고, 내가 소중히 생각한 친구관계가 틀어지면 일상도 무너진다.

공부도 집중이 되지 않고, 엄마와는 싸움이 늘어간다.

20대는 아무래도 연인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상대도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고, 연인의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간다. 상대와 함께하는 시간이 1년에서 2년... 계속 늘어갈수록 우린 연인관계가 보다 단단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30대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는 무엇일까?

많은 관계를 거쳐온 나이이기에 사람마다 어떤 관계에 무게를 두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얼마 전,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함께 나온 친구 한 명과 연을 끊었다.

30대가 돼서도 간혹 만나 밥을 함께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돈독한 사이였는데 한 순간 멀어졌다.

한동안 서로 일이 바빠 연락을 못하다 오랜만에 전화를 했는데 친구의 반응은 특별한 일이 없는데 왜 전화했냐는 반응이었다. 그 이후론 그 친구에게 다시는 전화를 하지 않았으며, 그 친구 역시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반대로 결혼한 친구들과는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결혼하여 아이가 있는 친구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친구관계가 아닌 가족관계이며 새로 태어난 그들의 아기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먼저 연락을 주는 친구들이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잊을만하면 전화해서 잘살고 있냐고 안부를 묻는 친구.

결혼하고 뉴질랜드로 건너가 다시는 한국에 못 올지도 모르는 친구지만 주기적으로 내게 카톡을 하며 서로를 놀리는 친구 (시차 때문에 서로 연락하는 시간이 달랐는데 우연히 이 친구 와이프가 톡하다 잠든 친구를 대신해 남편이 친구분을 많이 그리워한다며 처음으로 친구와이프와 톡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함께 마시다 추천한 책을 잊지 않고 다 읽고 책 내용이 너무 좋았다며 톡을 하는 친구.

지방에 있어 서울에 올라올 일이 있어야만 볼 수 있는 친구. (네가 결혼해야 서울 놀러 갈 수 있다며 전화하면 결혼노래를 부르는 친구)

마지막으론 내 소개로 결혼에 골인한 절친들까지.

연락이 뜸하고 만나진 못해도 서로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이인 것만으로도 좋은 그런 친구들이다.

물론 20대에 우리처럼 함께 술마시며 취업걱정, 연애고민, 기타 사소한 이야깃거리를 더 이상 함께 나눌 수 없다.

친구들은 이제 육아, 승진, 교육, 부부사이가 주된 고민일 것이며 난 그런 고민을 들어주며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없고, 친구들 또한 내가 가진 고민을 들어줄 마음과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이에 반해 새로 생긴 관계도 있다.

3년전쯤, 글쓰기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내게 저녁 약속 없으시면 같이 식사하자고 했던 분이 있었다. 나이도 비슷했고,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 보니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삶을 공유했었다. 물론 글쓰기 모임이 끝난 뒤, 자연스레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모임을 기획할 일이 있어 그분이 떠올랐고 잘 지내냐고 혹시 날 기억하냐는 톡을 보냈다.

그러자 그분은 바로 반갑게 답장을 주시며 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언제 만나서 식사하자는 말은 너무 상투적이라, 서로 일정이 맞는 날을 그 자리에서 정해 우린 3년 만에 또 한 번 식사자리를 만들었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분과 난 변함이 별로 없었다.

둘 다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고, 여전히 같은 직장에 다니며, 투자에 관심 많고,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30대의 평범한 두 남자였다.

3년 전처럼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참 신기하게 서로의 속 깊은 고민과 이야기까지 공유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날의 만남 끝에 내가 제안했다.

우리 6개월에 한 번씩 만나 서로의 일상을 이렇게 이야기하자고.

지금은 여름이니 겨울 아주 추울 때 또 만나 이렇게 편하게 밥 먹으며 서로 고민과 흥미로운 일상을 만들어 공유하기로.

그분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러자고 했다.

관계에 대해 생각하며 떠올려보았다.

이렇게 오래된 친구나 연인, 직장동료의 관계가 아닌, 옅은관계가 때론 우리 삶에 필요한 순간도 있다는 것을.

비슷한 나이, 공통의 관심사, 현재 살고 있는 상황이 맞는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서로 읽었던 책과 삶을 공유하며, 때론 글도 쓰며, 시간이 맞으면 함께 1박 2일 여행도 갈 수 있는 그런 사이를 만들어보는 것.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겨울 그분을 다시 만나면 이런 모임은 어떻냐고 한번 물어봐야겠다.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나'자신이다.

내가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는 관계여야만, 의미 있고 소중해지고 더 단단해질 수 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를 버리고 희생하고 내 모습이 소멸되는 관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간혹 친구관계든 연인관계든, 상대가 원하니 어쩔 수 없었단 말을 듣기도 한다.

관계에 있어 상대에 대한 배려는 당연히 필수적이다. 다만, 내 배려가 상대에게 당연하게 취급되거나, 나만 배려하는 관계가 되어버린다면 그건 더 이상 건전한 관계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단단해져야 하는 관계는 가족관계 이외엔 없다.

부부사이에도 서로 배려가 없으면 갈라지는 것을.

하물며 그 외의 관계들은 더더욱 그런 사소한 배려들이 중요해진다.

결혼을 한다는 건, 두 남녀가 평생을 함께 할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 시켜서 만든 관계가 아닌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만든 그런 관계. 그리고 그 선택을 넘어 자녀를 갖는다는 건 더 큰 배려가 필요한 관계가 형성됨을 의미한다.


그러니 결혼을 하면,

다른 관계는 조금 소원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단, 서로 연락 못해도. 자주 보지 못해도

가끔 연락해도 서로  즐거우면 되는 그런 관계만 되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실의 나와 글쓰는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