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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Oct 24. 2021

방황하는 학생에게 필요한 건 뭐였을까?

#3-1. 학원에서 만난 아이 (치훈)

치훈이(가명)는 중3 때 학원에 들어왔다. 치훈이가 들어오기 전에 반인원이 꽉 차있어서 대기였는데 두 달 만에 대기가 풀려 들어온 케이스였다. 보통 대기가 길어지면 대부분 학부모님들은 타 학원에 그냥 등록을 하신다.

아니면 타 학원을 다니다 끊고 대형학원에 들어오기 마련인데 치훈이는 그런 거 없이 바로 다음 주부터 보내기로 하셨다.


어머니께 처음 인사 전화드렸을 때, 치훈이가 사춘기가 심하게 와서 현재는 공부를 아예 놓은 상태라고 하셨다. 그래도 하던 가닥이 있는 학생이라 정신 차리면 금방 쫓아갈 것이니 선생님이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우리 반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20%는 사춘기+방황+공부를 놓아버려 선행을 놓침을 경험한 아이들이다. 그 사춘기에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 친구도 있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쭉 올라가는 학생들도 있다.

치훈이는 안타깝게도 전자의 케이스였다.


처음 2주간 수업할 때까지 치훈이는 성실하게 숙제도 했고 열심히 수업도 들었다. 본인도 본인의 상황을 잘 알기에 '이제 열심히 해보려고요..'라는 첫인사답게 행동하고 있었다.

2주 정도 지난 후 어머니께도 아이가 학원 가기 싫다는 말도 안 하고 숙제도 해가려고 하는 것 같다며 연신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무탈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줄 알았는데, 한 달 정도 지나니 무단결석과 숙제 부족 제출 횟수가 쌓여갔다. 우리 학원은 무단결석 3회면 강사 제량으로 퇴원을 시키기도 한다. 학습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레벨을 담당하는 강사 입장에서 강제퇴원은 언제나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부모의 의지든 학생의 의지든 공부를 시켜보겠다고 학원에 왔는데 그 학원에서 조차 안된다고 한다면 아예 학습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강제퇴원은 언제나 명확한 기준을 갖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조치였다.


치훈이는 무단결석을 하긴 했지만 내 기준엔 아직 강제퇴원을 하기엔 아이의 발전 가능성이 아까웠다. 내준 숙제를 다 못해서 그렇지, 가르쳐주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활용하는 건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는 인사성도 밝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그런 치훈이를 내보낼 순 없었다.


1주일 정도 지난 후, 치훈이는 수업에 복귀하였다. 1주일 정도 빠졌기에 수업을 쫓아가기엔 분명 버거움이 보였다. 그래서 주간 테스트 시간에 치훈이는 따로 불러내어 이야기를 좀 하였다.

그땐 코로나 19가 전혀 없던 시기라 마스크를 쓰지 않고 서로 대화를 하는데 치훈이에게서 담배냄새가 났다. 내가 피지 않기에 누군가의 담배냄새는 매우 예민하게 맡을 수 있었다.

치훈이는 일주일 정도 가출을 하였고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다시 집에 들어온 듯했다. 본인도 분명 잘못된 행동인 걸 알면서도 주변 친구들에 휩쓸려 그런 일탈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거기에 아버님과의 갈등까지 있으니 집 밖으로 겉돌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방황을 겪고 있는 학생에게 난 어떤 말을 해줘야 하나...

내가 오은영 박사가 아닌데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참 난감했다.


'힘들었겠네... 지금은 좀 괜찮니?'

그렇게 첫마디를 내뱉었다. 그 뒤로 여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치훈이는 울고 있었다. 치훈이가 흘린 눈물엔 많은 의미가 있었겠지만 애써 의미부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돌아왔으니 됐고, 이제 방황은 그만 접고 고등학생이 되는데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냐며 치훈이를 다독였다.

자동차학과를 가고 싶은 꿈이 있던 학생이라 너만 바뀌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고등진급고사까지 치르고 중등에서 고등으로 넘어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중, 고등 마지막 레벨을 맡고 있기에 치훈이를 고등 마지막 레벨에서 관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다른 반에 가면 분명 한 달도 못 버티고 나갈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단, 나 역시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 '중등은 고등과 공부방식과 양이 절대적으로 다르기에 치열하게 하지 않으면 쫓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빡시게 시킨다.'

다행히 12월 고등신규반 개강을 하게 되면 학생들도 의욕에 넘친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되는구나하는 절박함을 느끼며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생기길 마련이다. 치훈이도 그러길 바랐다.


고등수업 개강을 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나니 치훈이는 또 한번씩 결석을 하기 시작했다. 이유가 다양했다.

본인이 아프기도 했고, 아빠와 싸우기도 하고, 급하게 친구와 일이 있다고까지 했다.

12월26일

치훈이에게 마지막 경고 문자를 보냈다.

숙제 미제출 2/3회

마지막 한번 더 미제출이면 강제퇴원 조치되니 알아서 잘 좀 해.


고등은 중등과 다르다. 중등 땐 조금만 해도 성적이 나올 수 있지만 고등은 꾸준히 하지 않으면 성적이 나오기 어렵다. 이미 꾸준히 하는 습관이 잡힌 윗레벨 학생들과는 다르게 우리레벨 학생들은 아직 그 습관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그 습관부터 바꿔줘야 한다.

그래서 매일 숙제하도록, 습관이 잡히도록 연습을 부단히 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 상위레벨을 조금씩 쫓아갈 수 있다. 거기서 조금 더 치열해져야만 상위레벨을 넘어설 수 있다.

그래서 고등은 중등과 다르게 조금은 빡시게 시킨다. 비록 마지막 레벨일지라도.


치훈이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더 이상 공부할 마음이 없구나'하는 생각에 신정을 쉬고 다음날 출근하여 퇴원 처리를 할 예정이었다.

1월2일.

출근을 했는데 데스크 선생님이 치훈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치훈이가 12월 30일 오토바이 사고가 크게 나서 지금 중환자실에 있다고 하셨다고 했다. 선생님이 치훈이 어머니와 통화를 해보셔야 할 것 같다며.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치훈이 어머니에게 전해 듣기로는 머리 쪽을 크게 다쳐 지금 수술 후 회복 중이라고 하셨다.

신경손상이 의심되는데 일단 그건 치훈이가 깨어나 봐야 알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어머니께선 휴강 요청을 하셨다. 아이가 다시 공부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선생님과 수업을 계속하고 싶었던 걸 보면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며 아이가 깨어나면 다시 보내고 싶다고 하셨다.

우선 치훈이 회복이 우선이니 그것에 집중하시라고 말씀드리며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돌처럼 무거웠다.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치훈이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가 경고문자여서...마지막으론 참 안타까워서.

치훈이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이게 무슨 일이냐며... 제발 깨어나서 잘 회복하고 다시 웃으며 봤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이 담긴 문자를 보냈다. 비록 지금은 확인할 수 없겠지만, 후에 확인하길 바라며...


그렇게 난 다시 본업에 집중해야 했다. 내겐 공부를 열심히 해보겠다고 모인 내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 2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치훈이가 깨어나서 지금은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머리를 다 밀긴 했지만 신경손상 없이 재활만 잘하면 예전과 비슷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치훈이는 병원을 퇴원 후, 학원에 찾아왔다.

머리를 빡빡 민체로, 다시 수업을 들을 수 있냐며 말이다. 우선 감사했다. 이렇게 웃으며 밝게 돌아와 줘서.

2달간 고등 선행을 나갔기에 쫓아가려면 쉽지 않다고 말하며 네가 원하면 들어오라고 했다.

사실 이미 고등 선행을 모두 나갔기에 치훈이가 쫓아가기 쉽지 않았다. 3월 학기가 시작되고 다시 처음부터 나가긴 했지만 치훈이에겐 버거웠을 것이다. 원하면 보충도 잡아주고 동영상 강의도 보내주었으나 신경이 돌아오기까지 글씨 쓰는 것도 더뎌져서 쉽지 않은 공부였다.

거기에 친한 친구도 한 반이었는데 그 친구는 더 잘하니 속으로 속이 많이 상했을지도 모르겠다.


3번의 무단결석 후, 어머니께 조심스레 현재반에서는 수업을 쫓아가기 어렵다고 말씀드렸다. 지금은 마음을 다독여 소형학원에서 1대 1로 배우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게 더 맞는 것 같다고 안내드렸다.

어머니께서도 수긍하셨다.




치훈이에게 필요했던 건, 수학강사가 아닌 오은영 박사였는지도 모르겠다.

방황하고 상처 받은 마음을 치료해줄 그 누군가가 먼저 필요했던 건 아닌지 생각했다. 치훈이 스스로 의지가 더 강했다면 그런 방황을 스스로 끊어냈어야 하는데 주변 친구들과 어울려 그런 일상을 끊어내지 못했다.

중3 학생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스스로 방향을 바꾸기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치훈이에게 학습습관을 상담하는 게 일이 아닌, 수학을 지도하는 게 주업무였기에 치훈이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맞춰주기엔 시간상, 에너지 상의 한계가 분명 존재했다.

과외가 아닌 학원의 강사로서 많은 학생을 맡고 있기에 한 학생만을 위해 커리큘럼을 맞춰주고 기다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매년 치훈이와 비슷한 친구들이 한 명씩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오고 같은 이유로 나간다.

그리고 난 매번 고민한다.

아이에게 정작 필요한 건, 수학 수업이었을까? 수학강사로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수학적 지식과 아주 약간의 위로밖에 없었다.

아무리 심리학 책을 읽고, 많은 상담을 해봐도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다만 사춘기를 겪는 학생들이 너무 극단으로만 가지 않기를 바라며.


치훈이도 어디선가 자신만의 삶을 건강히 잘 살아내리라 믿으며 내년의 치훈이는 어떤 모습으로 들어올지 벌써부터 걱정과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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