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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Oct 24. 2021

상위 3%

#3-2. 학원에서 만난 아이(예서)

예서는 중3 때 우리반에 들어왔는데 어머니와의 첫 통화가 매우 인상 깊었다.

예서가 그동안 학원을 한 번도 다니질 않아, 선행과정이 많이 부족해요. 선생님
그동안 서술형 문제와 같이 배점이 큰 문제에서 자꾸 실수가 나와 더 이상 혼자 학습하는 게 힘들어해서 학원을 보내요. 그래도 '자기주도학습'이 되는 학생이니 선생님이 잘 이끌어주세요.

사실 대형학원 마지막레벨을 담당하면서 완벽한 자기주도학습이 되는 학생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내 기준으로 자기주도학습은 크게 3단계로 나누는데,

0단계 : (수학의 경우) 학원 수업이 있기 전날 혹은 당일, 몰아서 숙제를 완성하는 경우

1단계 : 매일매일 정해진 분량의 수학 문제를 풀어내는 것 (단 오답정리는 안 함)

2단계 : 매일매일 정해진 분량의 수학 문제를 풀어내고 틀린 문제까지 완벽하게 고쳐보는 것.

3단계 : 학습량을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닌 본인이 스스로 학습량을 정하고, 푼 문제는 확실히 본인 것으로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 채워 학습하는 것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모를 땐, 학원의 힘을 빌려 채우는 것)


우리레벨에 들어오는 학생의

60%의 학생들은 0단계의 수준이며,

20%의 학생이 1단계,

10%의 학생이 0단계 미만(숙제를 다해오지 못하는),  

7%의 학생이 2단계

그리고 마지막 3%의 학생이 3단계 수준의 자기주도학습력을 갖고 들어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서는 3단계에 준하는 학생이었다. 우리레벨에서 보기 드문 3단계 자기주도학습의 학생.

어머니께서 보통 자신의 자녀가 자기주도학습이 된다고 표현하는 것은 극히 드문일인데, 첫 통화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내심 기대가 되기도 했다.

2주간 수업해본 결과, 예서는 스스로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다.


그럼 왜 마지막 레벨에 배치된 거지?

예서는 중3이 될 때까지 학원을 한 번도 다니지 않으며,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혼자 하기 조금씩 벅차지자 예서가 학원에 가길 원했고 선행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당연히 선행 문제를 맞히지 못하고 마지막 레벨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예서도 또래 여학생들처럼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고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여학생이었는데,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면 예서는 절대로 숙제를 다 해오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었다.

예서는 NCT라는 가수를 좋아해서 삼성동에서 굿즈를 나눠주는 행사에 줄을 서야 한다며 수업에 10분 정도 늦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숙제를 다 해왔다. 전날 대부분의 숙제를 완료하고 남은 숙제는 굿즈를 받는 대기줄에서 다 풀었다고 했다.

또 한 번은 예서에게 어린 동생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느라, 예서가 예상치 못하게 동생과 영화를 봐야 하는 날이 있었는데 그날도 숙제를 다해왔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광고가 나오는 그 시간 동안 열심히 해야 할 문제들을 풀고, 남은 숙제는 동생을 집에 보내고 학원에 일찍 와서 모두 다 끝냈다.


변수가 있는 날에도 예서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숙제를 해왔고, 내게 그다음 단계에 프린트를 더 요구하였다.

2주 정도 수업을 하며, "넌 금방 올라가겠구나"라는 확신, 더 나아가 원장님 반까지 올라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드는 첫 학생이었다.

하나를 알려주면 둘, 셋을 응용할 줄 알았으며 성실하기까지 했다.


예서는 예상대로 다음 시험에서 바로 윗 레벨로 올라섰고, 학원을 3년 넘게 다니며 현재 원장님반에서 고2 수업을 듣고 있다.

당연히 원장님반 학생들은 2,3단계 자기주도학습이 되는 학생들만 존재한다. 간혹 수학적으로 뛰어나 몰아서 숙제를 다 해결하는 학생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2,3단계 자기주도학습이 되는 학생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제 예서는 그런 곳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 노력을 더 하고 있다.



예서는 이미 학원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런 습관이 몸에 밴 학생이었다.

그래서 내가 한 일은 없다. 예서는 마지막레벨에 들어온지 두달만에 레벨업을 했고, 그 뒤로도 쭉쭉 레벨업을 해서 현재의 반까지 올라갔다.

가장 윗반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는 예서를 바라보며, 욕심이 생겼다.

예서와 같이 마지막 레벨에서부터 원장님반까지 올라가 수업을 듣는 학생을 1년에 1명씩이라도 배출하고 싶은 그런 욕심.

예서는 스스로 동기부여가 확실한 학생이었고, 그렇지 않은 학생을 열심히 가르쳐 올려 보내고 싶은 그런 마음이 계속 솟구쳤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학생의 수학적 역량과는 별개로 공부를 하는 습관과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학원에선 사실 학생들을 지도하기에도 바쁘다.

간혹 동기부여가 되는 말이나 습관을 잡도록 도와주기는 하지만 그걸 해내는 것은 오롯이 학생의 몫이기에 강사의 말로 학생을 변화시키기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


학생의 자발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대부분의 학원은 보다 정밀하게 시험에 나올 것 같은 문제를 선별하여 연습시키고, 시간 내에 푸는 연습과 많은 숙제양을 내주어 풀리는 등 타의적인 연습을 시키게 된다.

이를 잘 따라오는 학생들은 물론 대부분 좋은 성적을 받는다.

저 정도 연습을 소화할 수 있다는 건, 이미 공부하는 습관이 어느 정도 잡혀있으며 명확하진 않겠지만 본인이 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는 학생일테니 말이다.


마지막레벨 학생들은 아직 그 정도 수준이 되어 있지 못한다.

내가 담당하는 모든 학생들을 그 정도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이지만, 24시간 붙어있을 수 없으니 최대한 해올 수 있도록 학생들을 밀고 끌어야 한다.


밀당.

마지막 레벨수업은 학생과 적절한 밀당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재미도 있어야 하고, 해올만한 숙제 분량을 내줘야 하며, 어느 정도 성적도 나와줘야 한다.

실없는 소리도 했다가, 정색하기도 해야 하며, 친절하게 가르쳐주다가도, 잘못된 부분은 화를 내기도 하며,

테스트 결과도 항상 예의 주시해야 한다.

이런 밀당을 하며, 상위 3%의 학생을 배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런 목표를 두는 건, 그 한 명의 학생으로 인해 다시금 열심히 가르치게 될 에너지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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