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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Oct 24. 2021

말을 잘하던 학생

#3-3. 학원에서 만난 아이(강호)

강호(가명)는 학원에서 본 여느 학생과는 조금 다른 학생이었다. 숙제를 못하고, 수학을 힘들어하는 것은 다른 학생들과 비슷했지만 강호에겐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습관성 거짓말'이었다.

중학생 수업을 하다 보면, 어떤 학생은 조금 성숙하기도 하고 또 어떤 학생은 아직 너무 어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당시 강호는 후자였다.


어릴 적, 나도 거짓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학원엔 아프다 말하고 집에서 친구와 놀다 어머니께 걸려 엄청 혼났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이후론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공부는 못해도 좋으나 바르게 자라라며 나를 혼내며 우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뭔가를 느꼈기에 나 역시 그 후론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강호는 숙제를 못해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변명이 붙었다.

그 변명 뒤엔 항상 나를 안심시키는 말을 덧 붙였다.

'제가 다음 시간에는 무조건 해오겠습니다.'

'이번엔 정말 해오려 했는데, 아...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일이 생겨서 그랬습니다. 주말엔 아무것도 없으니 꼭 해오겠습니다.'

'아... 선생님 오늘은 숙제를 다 못했지만, 정상제출로 문자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정말 마지막으로 절 믿어주시면 다음시간엔 그 기대에 꼭 부응하겠습니다.'


똑같은 패턴의 변명이 반복되자, 강호는 그다음부터 멘트를 변경했다.

'선생님이 변명하는 걸 싫어하시니, 변명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친구와 다퉈서 숙제를 못했습니다. 이것도 변명이겠죠. 죄송합니다.'

'아... 부모님이 저 때문에 많이 싸우세요. 저도 숙제를 다 해가야 하는 걸 아는데 정말 그것을 못하는 제가 너무 한심하고 그렇네요.'

'정말 마지막으로 오늘만 정상제출로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부모님이 저 때문에 이혼위기입니다.'



숙제는 못할 수 있다.

매일같이 영어학원, 수학학원 그리고 주말에도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매일 공부하는 습관이 잡힌 학생에게는 숙제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지만, 강호처럼 그 습관 잡기가 어려운 학생에게는 숙제는 매일 본인이 피해야 할 문제인 듯 보였다. 그래서 잠깐 면피용 거짓말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강호를 만들었겠구나라는 생각에 강호를 이해하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보기도 하고, 혼내기도 했었다.


못하는 숙제보다 더 위험한 건 습관성 거짓말이었다.

그래서 강호가 하는 말이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에 어머니와 조심스레 통화를 하며 말씀드렸다.

'어머니, 혹시 강호 학습문제로 아버님과 많이 다투시나요?'

'아니요. 선생님. 강호아빠는 강호학습에 크게 관여를 안 해요. 저도 강호에게 이야기하다가 너무 안 하니 지금은 별말 안 하고 있어요. 왜요? 선생님'

'아... 강호가 한 번은 숙제를 못해서 부모님이 이혼위기라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쭤봤습니다.'

'어머? 강호가 그랬나요? 전혀 아니에요. 선생님'

'아~그럼 다행이네요. 어머니.'

(중략)


어쩌면 수학숙제보다 중요한 것들이 학생들 앞에 놓여있는지도 모르겠다.

수학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다시 안봐도 되지만, 습관성 거짓말은 평생의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에 자라나는 시기에 고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호야.

너는 쌤이 보기에 말을 되게 잘해. 그런데 지금은 말을 잘하는 거를 잘못된 곳에 쓰는 것 같아.

숙제 안 했으면 쓴소리 한번 듣고 넘어가면 되고, 다음번에 조금이라도 하려고 노력하면 되는 거야.

그걸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 계속 거짓말을 하게 돼.

말을 잘하니깐 유재석과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잘못하면 사기꾼이 될 수도 있어. 그건 오롯이 네 선택이니 지금부터라도 사소한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할 거야. 명심해.


강호는 고등진급을 하며 다른 반으로 배정되었고, 숙제문제로 다른 선생님 속을 썩이다 결국 그만두었다.

강호는 나의 중학생 시절과 비슷했다.

조용조용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하는 척은 했고, 자신이 공부를 하지 못함에 대해 미안해했다.


강호는 말을 잘했다.

말을 잘한다기 보단, 그 말이 설령 거짓이라도 진심을 다하듯 이야기하는 재주가 있었다.

매번 강호에게 넌 말하는데 소질가 있으니 나중에 진로 선택할 때, 말하는 직업을 택하면 잘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항상 건넸다.


수학은 비록 힘들어했지만, 어딘가에서 본인의 장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멋있는 청춘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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