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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Oct 24. 2021

난 너에게 뭘 알려줬어야 했을까?

#3-5. 학원에서 만난 아이(형우)

형우를 처음 봤을 때, 느낀 첫인상은 '너 쫌 잘 놀게 생겼구나..'였다.

큰 키에 꽤 잘생긴 얼굴을 소유한 형우는 맨 뒷자리에 앉아서 펜을 굴리며 나름 공부하는 척을 했다.

보통 첫 수업 후, 일주일이면 학생의 학습상태 및 그동안 공부한 가닥이 모두 파악되고,

일주일 정도 더 확인하는 시간을 거친 후 어머니께 학습상담 전화를 드리곤 한다.

형우 역시 일주일 만에 그동안의 학습상태가 모두 파악이 되었다.  


중3이던 형우는 일대에선 유명한 학생이었다. 우리 반 중2 학생도 '그 오빠'를 알고 있던 걸 보면 형우는 내가 모르는 학원 밖에서 꽤나 유명한 학생이었던 건 틀림없었다.

그렇게 형우에 대한 데이터가 쌓여갈수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넌 대체 우리학원엔 왜 온거니?'

학원에 같은 학교 친구들이 있던 것도 아니고, 동네에 학원이 전혀 없던 것도 아니고, 학원에 다른 목적(연애)이 있어서도 온 것도 아닌데 왜 대형학원에 들어와서 나에게 매번 잔소리를 듣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형우가 만일 수업에 방해가 되고, 공부를 전혀 안 했다면 내 손으로 먼저 내보냈을 텐데 수업은 열심히 듣고자 하고 또 형우같은 학생은 붙임성이 갑인 친구들이 많아 선을 넘지 않게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형우는 담배를 피웠다.

마스크를 쓰지 않던 시절, 옆에서 수학문제를 가르쳐주다보면 냄새가 내게도 확 퍼졌다. 내가 비흡연자였기에 형우가 아무리 조심해도 그 냄새는 피할 수 없었다.

나 : 야!! 학원오기전엔 피지 말고 와. 냄새가 너무 난다.

형우 : 아..쌤 저 안펴요.

나 : 이게 누굴 바보로 아나. 딱 보면 다 알아. 말보로야. 던힐이야?

형우 : 아..진짜 안 핀다니까요.

나 : 알겠어. 웬만하면 국산꺼 피고. 학원 근처에서 피다 걸리면 넌 그날로 나랑 끝이야.


하루는 형우가 수학여행 가기 전날 수업이 있었는데 무심코 숙제 검사를 한다고 형우 가방을 열었는데 형우 가방에서 카스맥주 한 캔이 보였다. 다행히 보충이었기에 다른 학생들은 없었고, 형우와 나 둘 뿐이었다.

나 : 제정신이야?

형우 : 아...쌤 그게 오해인 게... 친구가 부탁을 해서 제가 대신 사다주기로 한거예요. 정말 제거 아니에요.

나 : 무슨 학원에 오는데 가방에 숙제 대신 맥주가 들어있냐. 넌

형우 : 아 진짜 제거 아닌데..죄송해요.

나 : 야!! 술은 나중에 어른한테 배워. 너희끼리 마시다간 큰 사고 난다. 조절도 못하고.

형우 : 아버지한테 배웠어요.

나 : 넌 참 모든 게 앞서가는구나. 공부도 좀 그렇게 앞서가지...

형우 : 네... 뭐 풀면 돼요?


형우는 공부는 안 해도 미운 짓은 안 하는 학생이었다. 능글맞았지만,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와 친해지려고 공부를 하는 척은 했다. 학교를 무단결석한 날도 학원은 빠지지 않고 등원했다.

도무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학생이었다.

무단결석을 하면 이를 핑계로 강제퇴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형우도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형우는 학원은 꼬박꼬박 출석했다.


그런 형우가 여름방학 한 달 동안 휴강이 가능하냐고 물어보았다.

이 놈이 방학 동안 또 놀려고 그러는구나라는 생각에 넌 휴강은 없고 휴강하는 순간 퇴원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다. 가뜩이나 수업 쫓아가기도 버거운 학생인데, 방학기간 동안 쉬면 더 못 쫓아갈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형우 : 아...쌤 정말 안돼요? 저 중요한 교육이 있어서 방학기간 동안 거기 가야해서요.

나 : 야!! 니가 뭔 말도 안되는 교육을 들어. 학원 수업이나 제대로 들어.

형우 : 아..진짜 방학때 그 교육 들어야 한대요.

나 : 뭔 교육인데?

형우 : 아... 그냥 교육이요.

나 :  말 안 하면 뭐 휴강이고 뭐고 없다.

형우 : 그....... 금연교육이요.


형우와 난 한참을 웃었다. 정말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교육이었기 때문이다. 형우도 멋쩍었는지 본인도 웃고 있었다. 학교에서 흡연으로 걸려 방학 동안 그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재밌기도 하고, 이 놈을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고... 참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형우 휴강과 관련하여 어머니와 통화를 해야 했다.

보통 부모님과의 상담은 학습상담이 주를 이루는데 형우 어머니께는 딱히 드릴 말씀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첫마디가 이거였다.


나 : 어머니 안녕하세요. 수학학원입니다.

형우 어머니 : 아~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나 : 어머니 요새 형우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형우 어머니 : (호호호) 아니에요. 선생님. 선생님이 형우 관리하시느라 더 힘드시죠.

나 : 제가 나름 공부를 시켜보려는데 형우가 해오라는 걸 안해오니 참 쉽지 않네요.

형우 어머니 : 집에서도 형우 숙제 좀 하라고 하는데 제 말을 잘 듣지를 않아요.

근데요. 선생님 저는 형우가 학원을 가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학원을 안가면 어디에 있는지, 탈선을 하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도 되고, 사고는 치지 않을까 불안하고 그런데 수학학원은 꼬박꼬박 가는 것 같아요.

그것만이라도 참 감사해요.

나 : 형우가 그래도 학원에서 시키면 하기는 해서, 저도 숙제만 좀 제대로 해오라고 하고 있네요.

그런데 형우가 방학 때, 교육이 있다고 휴강요청을 해서요. 혹시 알고 계신가해서 전화드렸어요.

형우 어머니 : 네. 선생님 형우가 방학 때 외부에서 교육들어야 할 게 있어서 한달만 휴강신청을 하려구요. 해도 될까요?

나 : 네..어머니 안 그래도 형우가 금연교육이라고 제게 이야기 했어요.

형우 어머니 : (하하하) 그 녀석이 그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네요. 선생님께. 죄송해요. 선생님 한 달만 휴강하고 학기 시작하면 복귀시킬께요.

나 : 네 어머니.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우 어머니를 직접 뵌 적은 없지만, 통화한 어머님들 중 목소리가 가장 여리셨다. 아마 사춘기의 형우를 휘어잡기엔 쉽지 않으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먼저 위로의 말을 먼저 건넸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매년 한 명씩 형우와 같은 학생이 학원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때마다 고민을 하곤 한다.


내가 이 학생에게 무엇을 전해줘야 하는지,

왜 이 학생이 학원에 온건지,

어머니께선 왜 이 학생을 학원에 보내신건지,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을 하게 된다. (고민의 결과는 이 브런치 북 마지막 글에 실어보려 한다.)


형우는 중3 시절 내내 나와 수업을 하고, 고1 때 타이트한 내 수업에 지쳐 결국은 퇴원을 했다.

어머니는 아쉬워했지만, 학생이 안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또 한 학생과의 수업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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