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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Oct 24. 2021

예상치 못한 마지막 인사.

#3-6. 학원에서 만난 아이 (예진)

처음 학생이 입학 테스트를 보고 레벨이 결정되면, 강사인 난 어머니께 안내전화를 드린다. 우리반에서의 수업방식, 교재, 준비물, 기본적인 커리큘럼 등 데스크에서 안내받지 못한 세세한 부분을 안내해 드려야 한다.


처음 예진이가 우리 반에 배정되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보통 안내전화는 5분에서 10분 정도면 모든 설명이 끝나지만, 예진이 어머니와는 1시간 가까이 전화통화가 이어졌다. 아직 예진이를 만나보지 못한 상태에서 예진이가 그동안 어떻게 공부해왔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앞으로 어떻게 공부를 하면 좋을지, 학습방향 등 이것저것 여쭤보셨다.

일단 학생을 만나보고 수업을 해봐야 견적이 나오는데, 예진이 어머니는 급하게 답을 구하시는 듯했다.

그래도 일단 침착하게 안내 후, 예진이와 수업을 진행했다.


만나본 예진이는 숙제도 잘해오고, 성실하게 수업도 들었으나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일반적으로 틀린 문제는 2~3번 정도 복습하며 스스로 다시 점검해야 하는데, 그 점검 작업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었고, 꼭 내가 시켜야만 그 작업을 수행하였다.

수학적 머리가 있는 학생들은 오답정리를 한 번만 해도 다음번에 비슷한 유형을 틀리지 않지만, 예진이는 두,세번 하고도 비슷한 유형은 또다시 틀리는 문제가 반복되었다.

더불어 본인이 어떤 문제를 알고, 어떤 문제를 모르는지 정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예진이는 그냥 열심히만 풀었다. 그래도 하고자 하는 모습이 예뻤기에 보충도 부르고, 알 때까지 물어보고, 반복학습을 시켰다.


6개월 간 수업을 하며 성적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지만, 요령이 없는 예진이기에 양을 늘려 학습시킬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없던 예진이는 학원 숙제도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집에 가면 스스로 공부하기보단, 휴대폰 하기 바빴고, 그 모습을 어머니는 지켜보시며 한탄하셨다.

6개월 간, 예진이와 수업을 하며 어머니와는 6번 넘게 통화를 하였다.

그전엔 6개월 간 수업하며 6번 넘게 통화한 가정은 없었다. 어머니의 주기적인 상담 요청도 있었지만, 나 또한 예진이가 본인이 한만큼 어머니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그래도 시키는 것을 최대한 하려고 하는 예진이도 이해가 되고, 조금 더 욕심내길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도 십분 이해가 되었다. 좁힐 수 없는 그 간극 사이에서 난 최대한 객관적으로 예진이 상태를 어머니께 지속적으로 말씀드려야 했다.


6개월.

두 번의 시험을 치르는 동안, 예진이는 어머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받았고 점점 지쳐갔다.

처음 학원에 들어왔을 때 하려던 의지가 많이 꺾인 상태였고, 무엇보다 지쳐 보였다.

내색하는 타입의 학생이 아니었기에 아마 가정에서도 어머니와 많은 트러블이 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어머니께선 예진이가 학원에만 의지하고 본인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아직 갖지 못한 것 같아,

잠시 쉬며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를 가질 수 있도록 시간을 줘보려고 한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기에 그렇게 하시라고 말씀드리며, 그동안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삼일 뒤,

예진이를 퇴원 처리하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교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데스크 선생님이 날 찾으셨다.

'선생님, 누가 찾아오셨는데요?'

수업 전에 날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의아하게 생각하며 밖에 나가니 어머니 한분이 서계셨다.

'누구신지....'라고 인사를 여쭙기 전에 뒤에 뻘쭘하게 서있는 예진이를 본 순간 예진이 어머님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예진이 엄마입니다.'

'아.. 네 어머니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그래도 그동안 예진이 봐주셨는데 인사를 드리려구요. 예진이도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 같고.'

'아.. 어머니 일단 교무실로 들어오세요.'


예진이를 뻘쭘하게 밖에 세워둔 체, 어머니를 교무실로 모셔 차를 한잔 대접했다.

10분간 남짓한 대화에서 어머니는 예진이가 조금 더 공부에 대한 학습동기가 생기면 꼭 다시 보내겠다는 말을 하시며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다시 한번 전하셨다.

어색하게 예진이와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두 모녀를 배웅하고 교무실로 돌아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학원을 그만두며 이렇게 직접 어머니께서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매우 꼼꼼하게 학습상담을 요청하셔서 힘들긴 했지만, 예진이도 열심히 했고 매우 착한 학생이라 조금 더 신경을 썼을 뿐인데 어머니께선 그 마음과 노력에 대해 마지막 인사를 건네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에서는 항상 학생과 만나는 순간도 있지만, 마지막 순간도 존재한다.

기분 좋게 레벨업을 시키는 경우도 있고,

성적이 나오지 않아 아무 말 없이 그만두는 경우도 있고,

그동안 감사했다는 문자를 보내시는 경우도 있었다.


매번 마주치는 마지막 이기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예진이 어머니의 마지막 인사는 2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계속 생각이 난다.

이제는 연락하지 못할 누군가와의 내 마지막 인사는 어땠는지.

우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첫인상보다 내가 신경 쓴 만큼 각인이 되는 마지막 인사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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