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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Oct 24. 2021

대형학원 마지막 레벨이야기

#4. 그 마지막 이야기

학원은 학생들이 공부를 조금 더 잘하기 위해 오는 곳이다.

그런 곳이니 만큼, 학생들의 성적 향상이 1순위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도 분명히 맞는 일이다. 그 목표에 맞게 수업을 진행하고, 학생들을 잘 이끌어주는 강사가 되어야만 학원에서도 인정받고 학생들도 끊임없이 찾아오게 된다.


그런데 글에서도 언급했듯,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알려줘야 하는 학생들도 학원을 찾는다.

대형학원 마지막 레벨은 그런 학생들이 조금 더 많이 모이기도 했다.  

부모 입장에선 왜 우리 아이만 이렇게 공부를 잘 안 하고, 못하고, 내 속을 썩이는 걸까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꽤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힘들어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


우리 반 기준으로 보자면,

60%의 학생들이 학원 수업이 있기 전날 혹은 당일에 숙제를 하는 학생들

20%의 학생들이 매일매일 숙제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오답정리는 못하는 학생들

10%의 학생들이 숙제를 다 해오지 못하는 (혹은 안 하는) 학생들

7%의 학생들은 매일매일 정해진 분량의 숙제를 완료하고 오답까지 정확히 하는 학생들

3%의 학생들이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한 학생들이 들어온다.


글에서 언급한 학생들은 10%, 3%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꾸역꾸역이긴 하지만 숙제를 열심히 하고 수업에서도 집중을 잘하는 편이다.

마지막 레벨이라고 해서 성적이 현격히 낮거나 수업이 설렁설렁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중등의 경우,

마지막 레벨이어도 엄청나게 시키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2~3개 정도를 틀리는 게 보통이다. 학교 시험이 고등처럼 그렇게 어렵지 않고 기본적인 숙제만 성실히 이행하고 실수만 하지 않으면 다 맞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중등에서의 레벨 차이는 결국 선행의 차이이기에 선행 진도를 많이 나가지 않는 우리반의 경우 현행 과정을 엄청나게 반복시킨다.

문제는 고등 수업이다.

고등은 기본적으로 중등 시험과 난이도 차이가 확 나기 때문에 평소 공부습관이 제대로 잡히지 않거나 벼락치기로 수학 공부를 한 학생들에게는 무척이나 점수를 받기 힘든 시험이다.

게다가 수업하는 지역이 학구열이 높은 지역이기에 학교 시험 난이도도 평이한 학교들이 많지 않다.


그런 이유로 중등수업은 학생들이 즐겁게 수업받고, 조금이라도 학원에 오는 게 즐겁게 만들며, 숙제하는 습관에 포커스가 맞춰진다면,

고등 수업은 실전이기에 숙제를 열심히 안 하거나, 노력하지 않는 모습이 보이면 가차 없이 쓴소리가 나간다.

그래서 평온한 분위기의 중등수업을 기대하고 온 중3 학생들은 고등 수업 시작과 동시에 학원을 그만두는 경우도 흔히 발생된다.


중등 때처럼 언제까지 학생들의 사정을 봐줄 수 없는 노릇이기에,

더구나 공부를 안 하는 학생에게 집중하면 그만큼 열심히 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쏟는 에너지가 덜 갈 수밖에 없기에, 고등 수업은 시작부터 치열하게 전개된다.


물론 강사만 치열하다고 해서 학생들이 갑자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적이 급격히 상승하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결과는 일어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7%, 3%의 학생들은 레벨업 시험을 통해 금방금방 레벨업을 해서 올라가고 남아있는 80%의 학생들의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난 매일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렇게 90%의 학생들에게 신경을 쏟게 되면, 자연스레 숙제를 못해오는 10%의 학생들은 수업을 쫓아가기 힘들고, 그런 순간들이 지속되면 결국 퇴원하게 되는 시스템으로 우리 반은 돌아간다.


학원 경력이 쌓이고, 지역 기출문제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고, 학생을 다루는 게 해가 갈수록 익숙해지다 보니 공부를 안 하는 학생을 어떻게 하면 공부를 하게 만들까에 대한 고민의 시간도 점점 늘어간다.

물론 일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 방문하는 학원을 통해 드라마틱한 반전을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기에 나 역시 모든 학생들을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고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다만 학생들이 여기서 수업을 받는 순간,

무언가 하나라도 얻어가면 좋겠다는 마음에, 자꾸 이런저런 시도를 하게 된다.

공부를 왜 안 하는지에 대한 공감과 상담도 그렇고,

수업 외 보충시간을 잡아주는 것도 그렇고,

시험기간엔 일요일에도 나와 학생들을 봐주려고 하는 시도도  그렇고,

(부모님과 합의하에) 학생들이 할 때까지 믿고 기다려주는 것도 내 일이 되었다.


우린 매일 숙제 문자를 발송하기에

숙제를 못했거나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면 난 가감 없이 어머님들께 문자를 드린다.

제대로 되고 있는 부분과 잘 안되고 있는 부분을 계속 알려드려야 부모님도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학원이 있고, 공부하는 학생수는 점점 줄어들기에 학원들의 고민도 깊어져 간다.

대형학원에 속해있지만, 아이들과 수업하는 것은 나라는 한 명의 강사이기에 지속적인 수업의 질 향상과 학생관리, 상담 등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잘 수행해야 한다. 거기에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 수업도 병행하기도 하기에 수업 전부터 정신없이 준비를 해야 한다.


어쩌면 매 순간 반복되는 일상 속에 이렇게 지난날의 수업과 만나온 학생들을 글로 정리하는 건, 다가올 학생들과 지난날의 내 실수를 떠올리며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한 노력의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가감 없이 말하는 습관 때문에 어떤 학생은 상처 받지 않았을지,

학생들의 고민에 난 그저 매번 반복되는 고민이라 대충 상담하지는 않았는지,

수업의 질 향상을 위해 그만큼 노력을 했는지,

계속 되짚게 된다.


2022년에도 수업은 계속될 것이며,

새로운 학생들도 새로운 고민들을 갖고 학원에 문을 두드릴 것이다.

모든 학생에게 유익한 강사가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어떤 학생에게는 오래도록 기억되는 강사가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이전 10화 예상치 못한 마지막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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