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 '공부의 배신'
얼마 전 '민중은 개.돼지다.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는 발언으로 온 국민의 분노를 샀던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 발언은 매우 충격적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는 자본에 따라, 권력에 따라 어쩌면 계급이 나눠 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쟁은 언제나 불가피하고 그에 따른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경쟁을 배웠고, 경쟁에서 이기는 삶만이 보다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기에 누구나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 합니다.
경쟁의 시작은 중학교 반 등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했으면 좋겠고, 모의고사 등급이 1등급이었으면 좋겠고 보다 좋은 대학,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취업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분명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뿌리 깊은 경쟁이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부익부 빈익빈과 차별이 점점 더 심화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공부의 배신' 두 번째 이야기는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대에 들어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입니다. 보는 내내 불편했고, 과장된 면이 조금 많다고 느꼈지만 어느 정도 우리 시대에 드리워진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경쟁이 끝나고 자유만 있을 것 같은 그들에게 대학은 또 다른 경쟁의 장이고 동기보다 내가 성적이 좋아야 하고, 성적이 좋아야 취업이 용이하기에 대학 내에는 알게 모르게 차별이 심화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서로 보이지 않는 서열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1 고등학교 서열화
우리가 만우절이라 부르는 4월 1일
대학 캠퍼스에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대학생들로 넘쳐납니다. 옛 추억을 살리며, 자유를 만끽하며, 동창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외고, 과학고, 자사고 그리고 일반고로 출신고를 나누고 그들끼리 무리 지어 자신의 학교를 과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같은 대학교여도 외고 학생과 일반고 학생으로 나뉘는 것은 출신고에 따라 인적 네트워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2 입학전형 서열화
제가 대학을 들어가던 시대와 다르게 요즘은 많은 전형들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수능성적으로 입학하는 정시전형, 고교 내신으로 지원하는 수시전형, 외국에서 거주한 학생을 선발하는 재외국민전형, 지역별로 입학정원을 나누어 뽑는 지역균등전형, 가정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뽑는 기회균등전형 등 다양한 전형으로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입학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시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과 다른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합니다.
'난 이렇게 수능 준비를 피 터지게 해서 대학에 들어왔는데, 누구는 집안이 어렵다는 이유로, 누구는 배경이 좋아 외국에서 몇 년 살다가 소위 꿀 빨고 대학에 들어온 것이 아니냐..'
#3 태생의 차이에 따른 차별
같은 과여도 1학년 때부터 원래 그 학과 학생이 아니었다면 학과 커뮤니티에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른 대학에서 편입한 학생들과 복수전공을 하는 학생들이 그런 케이스입니다. 같은 과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다 보니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한 정보교류도 쉽지 않고 선배들에게 받을 수 있는 족보도 그들은 얻지 못합니다. 같은 학과생이지만 같은 학과생이 아닌 취급을 받는 그들입니다.
#4 학과에 따른 차별
최근 다수의 인문학과가 폐지되거나 다른 과로 편입되는 사태가 왕왕 발생하고 있습니다. 취업에 불리한 학과는 더 이상 대학에서 과를 존치시키기 힘들고 취업이 잘되는 경영대나 몇몇 공대는 따로 장학금을 만들고 건물도 최신식으로 짓는 등 학교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합니다. 기업들은 기업 브랜드를 딴 H경영관, OO경영관 등 특정 학과생들만 이용 가능한 건물을 지어 편의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같은 대학의 학생이라도 학과에 따른 차별도 존재합니다.
다큐멘터리가 일부 과장된 면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의 서열화와 차별은 이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고 잠을 줄여가며 노력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은 심리는 공감이 갔습니다. 오직 성적으로 평가받는 경쟁사회에서 우린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대기업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남들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특목고를 가기 위한 경쟁, SKY를 들어가기 위한 경쟁, 대기업을 향한 또 다른 경쟁..
어쩌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우리는 경쟁을 당연시하며 경쟁에서 승리하면 '내가 남들보단 우월하구나'하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른 교육 정책을 펴내야 할 교육부 정책보좌관 자리에 앉은 사람이 경쟁에서의 승리에 도취된 체 그런 말을 퍼붓고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 교육도 참 바뀌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경쟁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린 지속적으로 경쟁해야만 서로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고 함께 커나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경쟁의 출발선이 모두 같지 않고, 경쟁에서 조금 뒤쳐진 사람들에게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경쟁, 착한 경쟁은 없습니다. 무조건 좋은 대학, 대기업이라는 목표를 두고 달려야 하며, 그 이외의 삶은 특히 경제적으로 너무나도 팍팍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수능성적만으로 대입을 결정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느껴 다양한 대입전형들이 나왔지만 이는 또 다른 차별과 형평성의 문제를 야기시켰고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혼란만 가중시켰습니다. 교육의 문제를 교육으로만 풀려면 해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 기술만 배워도 먹고살 수 있는 사회, 직업의 소득격차가 너무 심화되지 않는 사회,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 한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사회가 돼야 교육문제는 조금씩 풀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