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000역 앞에 있는 작업실로 나와서 커피 한잔을 내렸다. 햇살이 가득한 오피스텔 통창 앞 리클라이너에 앉아서 지난 5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왜 서울이나 더 전망 좋은 오피스텔을 두고 굳이 000역 근처냐고 했었지만, 난 이곳이 좋다.
직장과 집, 아이 학원 라이딩만 다니던 시절에 가끔 오피스텔 공사 중인 이 앞을 지날 때,
‘아, 나도 저런 곳에 혼자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라고 생각만 했었다. 그 오피스텔 중 한 곳이었던 곳의 최고층이 바로 나의 작업실이다.
5년 전 브런치 작가로 두 번째 글을 발행한 후 매주 금요일에 글 발행을 했다.
처음엔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도 힘들었지만, 내 글을 기다려주고 응원해 주는 동기님들과 구독자들 덕분에 1년 동안 꾸준히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45년 동안 살면서 겪었던 일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했던 그 사건을 소설로 쓰는 용기를 냈고, 썼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나의 첫 소설은 증쇄를 거듭했고, 그해 최고의 화제작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드라마, 영화 제작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었다고 출판사에서는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남편과 상의 끝에 내 소설을 제일 잘 이해하고 원작을 최대한 살려 각색하겠다는 제작사와 계약을 했다.
그 이듬해 드라마로 방영이 되었고, ‘아내의 유혹’ 이후 최고의 막장드라마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최고 시청률은 22.2%였다. 2026년에 방영된 드라마 중 최고의 시청률이었다. 그 덕분에 드라마는 125개국에 판권이 판매되었고, 미국에서는 리메이크도 준비 중이다.
그렇다. 난 소설 한 권으로 부와 명예를 같이 얻어낸 인기 작가가 되었다. 나의 후속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곧 계속 쓰고 있었던 2번째 소설도 발간했다.
2번째 소설은 출간과 동시에 영화화가 결정되었고 주인공은 이준호와 이성경이 캐스팅되었다. 내가 쓴 소설의 주인공이 이준호라니..... 난 진정 성공한 덕후가 되었다.
어제는 그 영화의 첫 시사회 날이었다. 극장 안을 가득 메운 관객들과 기자들은 모두 찬사를 보냈고, 시사회 후엔 호평 일색인 기사들이 쏟아졌다.
첫 소설의 인세로 구매한 하와이 주택에서 겨울 동안 머무르고 있는 친정엄마와 이모도 기사를 봤다며 축하한다고 자랑스럽다고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울증 약으로 하루하루 힘들게 보내셨던 엄마는 이제 우울증 약을 더 이상 드시지 않는다. 그동안 못 다니셨던 한을 푸시는 듯, 하와이 집과 파리의 아파트, 발리의 리조트 등 나보다 더 많이 외국을 드나드신다.
남편은 5년 전 건축한 첫 건물의 성공으로 또 다른 곳을 알아보던 중에 나의 소설 성공으로 자금이 탄탄해져 계속 짓고 있다. 벌써 20번째 건물을 짓고 있다. 이제 나보다 더 바빠서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돈 걱정 없이 하고 있으니....
오늘은 내가 제일 기다리던 금요일이다.
올해 영재학교에 입학한 나의 하나뿐인 아들, 으뜸이가 기숙사에서 집으로 오는 날이다.
으뜸이는 학교 급식도 맛있지만, 엄마가 해준 닭튀김이 오랜만에 먹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엄마가 글 쓰고 책 읽느라 신경 못 써준 게 너무 많은데 으뜸이가 oo영재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한 것은 다 슬초 브런치 프로젝트 덕분이다.
슬초 브런치 프로젝트는 내 인생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인생도 바꿔주었다.
참, 나는 아직 학교에는 계속 나가고 있다. 교양학부로 소속을 옮기고, 신입들에게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도 내가 그 소설의 작가인 줄은 모른다. 나의 이중생활은 49세 현재도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