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끝나고 아내와 함께 힘들었던 하루를 이야기합니다. 굳이 몰라도 되는 짜증 나는 이야기들을 공감해주는 아내를 바라보면 내가 괜스레 감정의 혼돈을 떠넘기는 거 아닌가 싶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저는 그냥 "보통 남자"였습니다. 서울의 학교를 나오면서 딱히 부모님의 속을 썩인 것은 없는 것 같고-물론 부모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만-공부를 적당히 해서 웬만큼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다만, 게임은 참 좋아해서 대학교 몇 년간은 게임 기억만이 또렷합니다. 그 후 공기업에 입사하기 전까지 그다지 크게 혼난 일도 없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인생에서 가능한 한 고생 없이 대략적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아내는 다릅니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입학 후 오랜 기간 처음 보는 여러 사람들과 밖에서 살았습니다. 학생시위 같은 태풍 때문에 학교에 안 나갈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아주 엉터리 같은 사람들, 예를 들면 저를 만났기 때문에 마냥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네요.
어쨌든 아내와 저는 결혼을 했고 회사를 다닙니다. 회사의 큰 틀은 거의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둘의 표현 방법은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툴툴대며 한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아내는 "흠 그건 아니지, 진짜 그거 이상하다"라고 공감해줍니다.
흠 그건 아니지.
저는 비슷한 힘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흠 그럴 수도 있지, 어쩔 수 없지"라고 좀 더 넘겨버립니다. 생각해보니, 맨날 남의 편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남편"이냐고 하는 아내의 말이 맞는 것 같네요.
그렇게 결코 만족스럽지 않은 날들을 뒤로하고는 또 출근 준비를 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미숙한 하루들이 많습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의 십 분의 일도 제대로 못해낸 것 같은 매주, 그리고 매달이지만 일단 아내의 납득을 들으면서 끝까지 버텨가는 것 같네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준 상처가 이렇게 하나의 중요한 공감을 통해서 나름대로 아물게 되는구나,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건 그렇고, 내일도 출근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머리로는 가기 싫다고 생각해도 감각으로 버티게 해주는 무엇이 있나요? 사회초년생인 저는 이제야 조금씩 생기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