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결혼해서 자리 잡아서 그렇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지만, 자리 잡는걸 얼마나 어려워했나 돌이켜보면 참 쉽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그렇게 공기업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나쁘지는 않습니다. 보수적인 것 같으면서도 바뀌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고, 맡은 일도 적절히 처리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유 있어 보이는 얼굴과는 다르게 이 일이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인가에 대한 건 아무래도 다른 일입니다. 회사에서 연사 강의로 백종원 선생님을 초청한 적이 있습니다. A과장님은 본인이 백 선생님처럼 요리를 할 때 즐겁고 칭찬을 받는데, 지금 다니고 있는 공기업-사장님이 있던 자리였습니다-를 때려치우고 음식점을 하는 것이 어떨지에 대해 여쭤봤습니다. 장내는 순식간에 질문자의 패기에 대한 웃음과 박수로 가득 찼습니다(다시 말하지만 사장님이 첫 줄에서 백 선생님 강의를 청강 중이었습니다). 백 선생님은 웃으며 대답해주시더군요, 물론 비웃음은 아니고 상황에 대한 인정이 얼추 들어가 있는 웃음이었습니다. '회사 그만두는 거 추천드립니다, 저도 저희 회사 신입직원들 뽑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기 위해 빨리 그만두라고 말해서 인사실장에게 혼나유'. 우리가 많이 생각한 답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본인의 즐거움에 대해서 당당할 수 있는 질문자의 태도와 백 선생님 본인이 겪은 인생에 대해 답변하는 확신이 부러웠습니다. 어쩌면 나는 이렇다 할 확신도 없이 여태껏 가는 대로 살아왔구나 싶었습니다. 강의에서 들은 대로, 유튜브에서 본 대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는 아마 나대로 살 것 같다라는 똑같은 생각을 하며 앉아있었습니다.
참 궁금합니다. 저는 아직 아기사원 이지만 아마 어른부장까지 다니게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일상을 떠나서 본 여행지에서도 사람들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갔습니다. 말 그대로, 절대 내가 좋아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사람이 왜 그 일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내가 여행지에서 즐긴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을 준비하는 많은 손들은 결국 그곳에서 맡은 일을 다하던 하나의 손들이 모여서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손도 일을 했으면 손에 돈을 쥘 때의 기분을 느꼈을 것이었고-봉사는 둘째 치겠습니다. 그렇게 작은 돈이라도 벌기 위해 다들 일했습니다.
나 또한 그 돈을 위해서 준비했고,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월급에서 앞으로의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돈을 버는 일을 참 좋아해서 공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다시 백 선생님의 강의로 돌아오면, 백 선생님도 본인이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사셨다고 자랑하셨습니다. 본 뜻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돈을 잘 벌게 된다는 이야기였겠지만, 돈을 좋아하면 돈 버는 일도 좋아하게 된다라고 느껴졌습니다. 아무래도 그 깊은 뜻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고 저는 그냥 돈을 벌어야겠습니다. 지금처럼,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해서 일상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돈을 좋아하며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가기 싫다고 말하지만, 표정은 밝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달 월급도 들어왔고, 들어올 거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깐요. 그렇게 열심히 공기업에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