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연 Feb 01. 2021

갖지 못한 것.

그래서 너무나 갖고싶었지만 

어릴 적의 난,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대체로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갖고 싶다는 생각 = 소유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나 갖고 싶은데 갖지 못해 아쉬원던 적은 없었다. 이상하게도 언젠가는 갖게 되는 행운이 따랐던 건지, 아니면 큰 욕심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부유하지도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았던 내 삶은 대체로 행운이 따라줬던 것 같다. 


초등학교 근처에는 수많은 문구점과 인형 등 예쁜 팬시 제품들이 가득한 선물의 집이 있었는데 사장님과 친할 정도로 들락날락했으니 어릴 적의 난 그곳의 단골손님이었던 듯하다. 어느 날 또 다른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를 걷다가 파스텔톤의 제품이 진열되어 있는 쇼윈도우 안의 분홍색 리본의 헤어핀이 눈에 들어왔다. 똑딱이 핀도 아닌 그것은 일명 자동핀. 아마 국산 자동 헤어핀이 나오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은 금세 내 마음을 빼앗았고 집에 가서도 갖고 싶은 마음이 커져 엄마께 말씀드렸다. 


일주일 용돈으로 500원을 받았던 나는 엄마의 허락으로 그것을 구매했다. 엄마가 사주셨는지 모아두었던 용돈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으나 Made In France 제품의 자동 헤어핀은 2,000원의 거금을 쓸 만큼 충분했다. 이후에는 자동핀이 흔해진 만큼 가격도 저렴해져서 색상별 종류별로 갖게 되었지만 흔하기 전이었던 분홍색 리본 헤어핀, 그것도 자동핀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물건이었으리라. 때문에 지금도 보관하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지금은 벗겨지고 갈라지고 잘라지기까지 한 나의 어린 시절 헤어핀 - 40년 된 나의 소품



30대까지만 하더라도 가방과 신발, 옷을 많이 좋아했다. 부모님 슬하에서 살다 보니 그것들만 충족되면 더 이상은 생각도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구입하느라 돈 쓰고 그것을 수납할 수납장에 또 꽉 차면 버려야 하는 이 수레바퀴가 슬슬 거슬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물욕이 없어지면서 너무 많이 갖는 것도 죄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갖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형편이 여유롭지 않아 지면서 생긴 습관일 수 있겠지만 여러모로 볼 때 맞다 싶다.


그런데 갖고 싶은 것이 생겼다. 한... 15년쯤 되었을까? 나의 첫 차였던 세피아 레오를 타고 다닐 때다. 길에서 마주한 멋진 자동차 한 대. 지금보다 더 국내 자동차의 디자인이 거기서 거기였던 시기라 더 눈에 띄었던 그것은 크라이슬러의 피티 크루저. 하지만 수입자동차는 감히 살 생각도 못했기에 금액 조차 알아볼 생각도 못했고 그냥 지나가다 눈에 띄면 한참을 바라보는 정도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대학동창이 나의 결혼식에 그 차를 타고 왔다. 그것도 매우 강렬한 빨간색 피티 크루저. "나 이 차 정말 좋아하는데~ 언제 한 번만 꼭 태워주라~~~"  하지만 동창생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멀리 이사를 갔다. 하... 타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좀 간절하게 이야기했었어야 했나?  


아쉬움만 남긴 채 사라진 동창생의 약속과 함께 한동안 잊고 살았다. 더군다나 2010년에 단종이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으니 그저 우연히 보기라도 하면 "바로 저 차야! 너무 예쁘지~"라는 말과 함께 침만 질질 흘릴 뿐.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한 번은 타 볼 기회가 있었다는 아쉬움만 감탄사와 함께 날려 보냈다. 그런데 작년 가을 오랜만에 보게 된 피티 크루저의 뒤태에 놀라 - 단종된 지 10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다니네? - 검색을 했다.  어라? '이 금액이 실화야?' 단종된 지 오래된 차는 넘볼 수 있는 차값이 되었다. 



차박도 가능하다는 이토록 아름다운 자동차가 나는 참 타보고싶었다.



자동차의 상태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200만 원이라는 가격만 눈에 들어와 매일 검색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200만 원인데,  그것으로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데, 설사 1년만 탈 수 있다고 해도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선물로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커지자 본격적으로 매물을 알아보기 위해 관련 카페에 가입했다. 중고차 사이트에도 있었지만 믿음직스럽지 않아 카페를 들락거렸다. 클래식 자동차라 직접 정비하면서 착한 정비업체는 서로 공유하는 착한 카페라는 생각에 믿음이 갔고 그러다가 자신의 차 일부 -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의 회원들은 차가 한두 대가 아니었다. - 를 매물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올라온 매물은  200만 원대는 없었고 적어도 400~500만 원대로 오래되어 부품도 구하기 어려운 - 미국에서, 혹은 폐차장에서 부품을 조달하고 있는 회원들 -  모델이지만 관리된 차의 가격은 그 정도는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관리된 차잖아~ 구매 후 여기저기 고치는 것보다는 낫지. 더군다나 나는 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렇게 한동안 화면 속의 PT크루저를 찾으며 행복했다. 걸어서 20~30분 거리의 서점에 남편이 차를 갖고 나가면 난 아이 등하교를 위해 또 한대의 차를 소유하는 거야. 10년 된 해치의 주행거리가 35000KM밖에 안되지만 아이 등하교가 있잖아. 가끔 엄마 모시고 병원도 가고, 절에도 가고, 그래! 아무래도 한대가 더 있어야겠지? 합리화할 수 있는 온갖 것들을 다 떠올리며 카페를 들락거리다가 500만 원 미만으로 차를 소유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클래식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카페의 회원들의 글을 보고 있노라니 그들은 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입차를 두대 이상은 갖고 있었고 경제적으로 매우 여유로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조금씩 발을 뺐다. 그래야만 했다. 우리 형편에 자동차 2대가 왜 필요한지, 내가 살고 있는 공동주택은 30년이 넘어 주차 공간도 협소한데 보탤 필요가 있을까? 해치는 절대로 팔면 안 된다는 아이에게 한대밖에 탈 수 없다면 엄마가 너무나 타고 싶었던 차로 바꿔야 한다고 해야 할까? 결국 난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내겐 그림의 떡이다. 


그래도 딱 한 번만이라도 타보고 싶다. 그러면 해소가 될 것 같다. ^^






작가의 이전글 맛있는 밀크커피 한 잔 하실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