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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May 02. 2020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

우리 엄마

오래전 어느 다큐 프로그램에서 중학생들에게 던진 질문 ‘엄마는 [      ]다.’ 아이들이 남긴 글에는 그 어느 하나 내가 생각한 대답이 없었다. 마치 도구로 전락된 듯한 느낌의 대답에 기가 막혔다. 훗날 내 아이에게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한 나의 대답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매개로 한 가족 간의 관계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루기도 한 내용 ‘엄마는 [      ]다.’를 통해 다시 한번 엄마를, 그리고 언젠가는 다가올 그날의 나를 들여다본다.      





너무나 편한 대상

난 ‘늙는다’는 표현이 너무 싫다. 요즘 부쩍 “엄마가 이젠 늙어서.......” 이렇게 시작하는 엄마의 말이 너무 싫어 “엄마! 늙는다 말고 나이 들어서라고 하면 안 돼?”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자식들 고생시키면 안 된다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취미생활도 열심히 하시고, 병원도 열심히 다니시며, 자나 깨나 자식 사랑에 기도 또한 열심히 하셨다. 엄마는 맑은 얼굴에 예쁜 말씨를 지닌 참 고운 사람이다. 아깝다고 버리지 못하는 다 늘어진 니트를 입어도,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하얀 소복을 입으셨을 때도, 하얗게 센 머리 검은 물로 가리지 않아도 곱고 예쁘신 분이다. 





하지만 세월엔 장사가 없다 했던가! 깊어진 주름이 문제가 아니다. 눈에 띄게 나빠진 시력은 흐릿해 보이는 시야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이렇게 될 줄 몰랐던 당신의 모습에 내쉬는 한숨으로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시력만큼이나 정신도 흐릿해지기 시작하여 “엄마가 이젠 늙어서 열쇠를, 휴대폰을,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 “엄마! 나도 그러는 걸? 다 그래~” 엄마를 안심시킨답시고 그렇게 말하지만 엄마가 나이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찾는 휴대폰은 기본이고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만큼 예쁘게 말씀하시던 엄마였는데 ’왜 저렇게 말씀하시지? 우리 엄마 맞아?’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결혼해서 엄마와 함께 사는 동생은 하루 걸러 한 번씩 엄마와 다퉈, 같이 사는 사람들이 따로따로 내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동생을 나무라지만 나라고 어찌 다를까. 그저 엄마를 너무나 편한 대상으로 삼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내가 엄마를 시어머니 대하듯 해야겠어~” 선언을 했더랬다. 하지만 어디 말처럼 되나? 내가 무엇을 해도 다 받아주는 엄마. 나 힘들다고 누워있으면서 70이 넘은 엄마께 밥 차려 달라하기도 하고, 내 맘에 안 든다고 엄마한테 큰소리도 내고, 시어머니껜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에 말투부터가 다르다. 그냥 넘어가면 될 일도 “엄마! 왜 그렇게 말해!” 감히 엄마를 다그친다. 감히 말이다.     


엄마는 서른여덟

엄마는 슬하에 딸 둘을 두셨다. 당신의 힘이 미치는 곳 끝까지 정성을 다해 키우셨다. 남들과 비교함이 없었고, 맑은 언어로 물들이시며, 사춘기에 접어든 딸들이 반항을 할 땐 장문의 편지로 달래셨다.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엄마는 늦은 나이,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씀을 드리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니 고맙다. 다만 네가 못 보는 10%가 있을 테니 그 권한을 엄마에게 주렴. 그리고 결혼해서 꼭! 너 같은 자식을 낳아 행복을 느끼렴" 하시며 축하해주셨다. 


그런 엄마가 올해로 76세가 되셨다. 당신의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신 엄마는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이젠 당신의 소임을 마쳤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인지 엄마의 피아노를, 엄마의 재봉틀을, 엄마의 마음을 하나둘씩 정리하고 계신다. “엄마! 돌아가시면 안 돼! 그냥 오래오래 같이 사는 거야!” 엄마 없는 세상이 무서워 소리쳐보지만 알고 있다. 엄마 없는 세상이 올 거라는 것을....... 


난, 엄만 항상 서른여덟 아빤 마흔여섯인 줄 알았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엄마 아빠는 나이 들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엄마 아빠는 엄마 아빠일 뿐 나와는 다른 경계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도 아니면 관심이 없었던 건지....... 12년 전 손녀가 태어나자 자동으로 이젠 할머니가 되었다며, 늦게 결혼한 자식들 덕에 할머니라는 소리가 영 어색하셨던 엄마는, 당신의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셨다. 


엄마 말씀대로 자동으로 할머니가 되셨지만 우리 엄마가 할머니가 되실 줄 정말 몰랐다. 여자라면 누구나 다 되는 할머니인데 나는 안 될 것 마냥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점점 늘어간다. “엄마 정신 똑! 바로 차려야 해. 엄만 너무 열심히 운동을 해서 그래. 엄마 음식이 짜. 엄마 머리카락이 들어갔어.” 손녀 앞에서, 남편 앞에서 내 엄마를 가르치려고 드니 이런 나쁜*. 


나이 들어 미각이 약해져 짜게 될 때도 있고, 달게 될 때도 있고, 시력이 떨어져 머리카락이 들어가거나 설거지 마친 그릇에 고춧가루가 묻은 것인데, 그게 속상한 일이지 엄마한테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 딱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로 한다. '나는 그저 건강하게 살 것이고, 엄마처럼 안 될 것이고, 멋진 노년을 살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 앞날은 알 수 없는 법. 나라고 안 그러라는 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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