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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May 04. 2020

집을 읽는다. 사람을 읽는다.

9살 아이의 독립선언

한동안 생각지도 못한 일로 힘에 부쳤었다. 할 일이 많았지만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기에 하기 싫었다. 그런 내게 선물이 필요했다. 남편과 아이가 빠져나간 후 어수선한 식탁을 앞에 두고 에스프로소 잔에 밀크커피를 진하게 마시며 멍~~~하니 앉아 나에게 기쁨이 될 만한 일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그렇다! 나에겐 내 맘대로 해도 좋을 ‘집’이 있었다. 움직이는 동선에 맞게 가구를 재배치하거나 가구의 재배치로 인한 조명의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얻어온 물건의 색을 바꿔 집에 어울리도록 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난 페인트 붓을 잡거나 가구를 옮기며 변화된 공간을 즐긴다. “힘든데 쉬지~~” 남편은 걱정을 하지만 나에겐 즐거움을 주는 일이기에 이젠 아무도 못 말리는 취미생활이 되었다. 비록 30년이 넘은 오래된 빌라지만 조금씩 가꿔가며 나에겐 특별한 공간을 나눠주는 곳이다. 우리 집 좋다는 말에 “너 참 긍정적이구나!”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지만 난 자신 있게 묻는다. “우리 집 좋지?”






우리 집을 소개합니다

우리 집은 고가의 집도, 화려한 집도 아니다. 다만 오래된 빌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조금은 일반적이지 않은 구조를 지녔다. 일층엔 거실과 주방이 있고 이층엔 방 세 개와 화장실이 하나인, 작지도 크지도 않은 공간이다. 남서향으로 난 큰 창은 밝은 햇빛을 오래도록 끌어오기에 충분하고, 적벽돌로 만들어진 벽난로는 비록 비싼 나무 값을 충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진 못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이곳에는 남편과 나, 그리고 예쁜 딸아이가 살고 있다. 어찌 모든 것이 만족스러우랴. 갖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내가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내 호흡에 맞춰 천천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읽어본다. 


    

30년이 넘은 오래된 우리집



먼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요즘의 공동주택과 달리 좁은 현관이 보인다. 자칫하면 어수선해지기 쉬울 이곳은 키 큰 신발장이 있어 답답하기까지 했었는데, 남편이 만들어준 키 낮은 신발장 덕에 답답함도 덜고 신발 정리가 훨씬 수월해졌다. 더군다나 신발장 위를 코지 코너로 활용하니 현관에 들어설 때마다 기분이 좋다. 이제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중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선다. 


10년 전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한눈에 반했던 뷰(VIEW)로, 정면으로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있고, 오른쪽에는 주방이 있으며, 45도 왼쪽에는 벽난로가 보인다. 난 이 모습에 반해 남편의 옆구리를 찌르며 “무조건 Go!”를 외쳤었다. 랄라라~ 콧노래를 부르며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쥐꼬리만큼이지만 저만치 인천 앞바다가 보이는 큰 방 1개와 작은방 2개가 있고, 청소하기 귀찮은 조금 큰 욕실이 하나 있다. 


아홉 살의 독립선언 

처음 정한 방 3개의 용도는 이러하다. 작은방 하나는 옷 방, 또 하나는 아이 방, 제일 큰방은 안방. 하지만 현실은 두 돌이 되지 않은 아이와 함께 안방을 가족 방으로 사용해야만 했다. 잠자리에 예민한 나는 아이와 함께 자는 동안 깊은 잠을 못 잤기에, 도대체 언제 혼자 자는 거냐며 친구에게 물었었다. 그때 돌아온 답은 " 아이가 혼자 자길 원할 때가 있어. 바로 그때야. 만약 그때를 놓치면 기회는 또 언제 올지 몰라~" 난 그 시기가 빨리 오길 바라며 얕은 잠을 자야만 했고 늘 피곤한 상태로 시간은 지나갔다.


신혼집에서 3년을 보낸 후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오며 딸아이의 방을 제일 예쁘게 꾸며 주고 싶었던 나는, 그 어떤 방보다 공을 들였었다. 수많은 색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칠하고 지우기를 반복한 끝에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포기할 수 없었던 분홍색을 벽 한 면에 내주고, 또 다른 벽면엔 많은 곳을 여행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계지도를 손으로 그려 넣었다. 북쪽으로 난 창엔 나무로 덧문을 만들어 공간을 더 따뜻하게 했고 내가 만든 원목 가구로 알차게 꾸몄다. 


하지만 아이는 혼자 잘 생각이 전혀 없었고 난방비를 아끼는 차원에서도 한방에서 몰아 자는 것이 옳은 일이었기에 아이의 침대를 안방으로 끌어다 놓고 우린 늘 같이 했다. 그 덕에 아이 방은 점점 더 용도를 잃어가더니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창고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리해야지...’ 생각은 가득했지만 항상 일의 순서에서 밀려나기만 하고 아이의 방은 더 이상 손대기 싫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네 집에서 놀다 온 아이가 “엄마! 나도 내 방에서 자고 싶어~”라고 말해,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순간, 이때를 놓치면 또 몇 년이 걸릴 수 도 있다는 생각에 생일 선물로 방 정리를 해주겠다고 덜컥 약속을 하고 말았다. 생일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기에 뒤늦은 후회가 따르긴 했지만 마냥 미뤄지기만 했을 방 정리를 하게 됐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의 독립선언으로 창고와 다름없이 사용하던 아이 방을 대대적으로 정리해야만 했다.


창고와 다름없이 사용하던 방은 생각보다 정리하기 어려웠다. 다른 일도 많은데... 다시 한번 후회를 했지만 엄마 체면에 약속을 어길 수 없는 일이었다. 급한 대로 쌓여있는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 옷방으로 옮기고 청소를 한 뒤 아이에게 침대 위치를 정하라고 했다. 방에서 제일 큰 가구가 될 침대 위치를 정하는 것이 가구 배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의견을 반영해 남편과 함께 침대를 옮기고 옷장을 옮기고 책상을 가져다 놨더니, 아이는 작은 책상 위에 노트를 가져다 놓고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놀잇감을 가져다 ‘재잘 재잘’ 역할놀이를 했다. “안방에서 놀지 추운데...” 난 아이의 즐거운 얼굴을 보며 말꼬리를 흐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규칙도 세워 벽에 붙여 놓고, 맘에 드는 인형과 쿠션으로 자기만의 공간을 가꾸었다. 





“해솔아 좋아?” 아이는 좋다는 말 대신에 “응! 엄마! 고마워~” 예쁜 목소리로 나를 꼭 안아준다. 혼자 잘 수 있겠냐는 물음에 엄마가 재워주고 나가면 된다 했다. 그날 저녁, 잠으로 가는 의식을 치르면서 “자다가~ 엄마 아빠랑 함께 자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도 돼. 울지 말고 불을 켠 뒤 침대에서 내려와 엄마한테 오면 되는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랑 자고 싶단다. 자다가 옮기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안방으로 이동~! 우린 함께 잠을 잤다.  

   

전날, 혼자 자겠다고 선언한 일이 실패했기에 물 건너갔다고 생각 한 나는 어쩌면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의 의견을 묻지 않을 수 없어 “오늘 엄마 아빠랑 같이 잘래?” 했더니 “한 번 더 도전해 볼게~”라는 기대 이상의 대답을 해왔다. 비록 새벽 6시쯤 엉엉 울면서 내 옆자리를 파고들었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그저 사랑스럽기만 했다. 어느새 아이의 홀로 자기가 한 달이 넘었다. 이만하면 성공한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의 침실을 아이 방 옆방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난 오늘도 방 정리 중이다.





(아이는 13살이 되었습니다. 위 글은 9살 10월의 기록으로 '혼자 자기 도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도전하는 것이 모두 성공하면 좋겠지만 이렇게 실패로 돌아올 때도 있지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서서히 바꾸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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