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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Feb 25. 2021

어르신 손 닦고 싶으세요?

동생이 집을 비우는 날. 가령, 시댁을 간다던지 여행을 간다던지 하는 날에는 나는 엄마 댁으로 가서 엄마와 시간을 보낸다. 엄마가 우리 집에서 주무시는 날도 있었지만 시력이 좋지 않으신 엄마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불편하고 엄마는 엄마의 집이 편하다고 하시기에 다른 문제가 없는 한 내가 엄마 댁에서 잠을 잔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가 외로우실까 봐'가 아니라 '엄마를 혼자 계시게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생겼다. 엄마의 건상상태. 그것도 최악의 질병이라 생각하는 '치매' 때문이다. 


당신은 치매가 아니라고 말씀하시지만 치매의 증세는 이전에 알았던 것만이 아니니 그냥 "네~ 네~"라고 답변한다. 안타깝게도, 속상하게도, 엄마의 증상은 치매의 증상 중 하나가 맞다. 


결혼 후 엄마와 함께 사는 동생은 박사학위 공부하랴, 주말부부인 남편과 시간 보내랴, 본업인 아이들 가르치랴. 열심히 쇼핑하랴. 여간 바쁜 게 아니다. 이제는 건강에 문제가 생긴 엄마가 일을 덜어주기는 커녕 일의 양을 가중시키고 계시니 스트레스 수치가 올라가는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해외여행을 떠난다. 뭐 그 전에도 일 년에 한두 번은 해외여행으로 큰 행복을 충전하긴 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할 수 없자 슬슬 국내여행에 눈을 돌렸다. 그렇게 국내도 좋은 곳이 많다고 했건만 콧방귀도 안 뀌더니...... 


"언니! 개강 전에 두 번 정도 여행 갈건데 안 되는 날 알려줘!"

엄마를 부탁해야 하니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게 통보만 했던 동생에게 "여행 날짜 잡기 전 내게 꼭 확인해야 해. 나의 시간도 있으니 반드시!"라고 말한 덕분에 발전된 과정이다. 하지만 

1월에 이미 2번이나 다녀온 동생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또? 두 번이나?"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나 시기에 참 잘도 다니는구나...' 은근 샘이 난 걸 수도 있겠다. 코로나 상황만 끝나 봐라 벼르고 있는데 슬쩍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동생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구실이 하루 이틀 정도의 여행이라는 것에 집중했다. "대신 여행 다녀오면 효과 좀 길게 보여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엄마와 2박 3일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엄마의 시간은 이렇다.

 

지난 설날. 여전히 낯선 온라인 차례.


1. 평일은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센터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시는 것.

    (처음엔 거부하셔서 무척 애를 먹었는데 이젠 대체적으로 잘 이용하셔서 동생의 낮 시간이 자유로워졌다.)

2. 엄마의 요구에 의해 금요일에는 센터 대신 한의원에 가시는 것과 가끔 절에 모시고 간다.

   (코로나로 절에 다니시는 것은 최소한으로 줄이셨지만 한의원은 필수. 보통은 내가 모셔다 드리고 모시고
   온다.)

3. 주말엔 쉼, 그리고 충전.


이번 주 금요일엔 서점 쉬는 날이라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어디라도 다녀올 예정이어서 어제 한의원에 모시고 갔다. 한의원에 가셔야 편안하시다니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실행 중이다. 방학중인 아이를 도서관에 보내 놓고 한의원에 갔는데 40~50분간이면 끝날 거라는 말에 왔다 갔다 시간을 버리느니 책을 보며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도서관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에게 양해를 구한 후.


그런데 1시간이 넘도록 엄마는 나오지 않으셨고(한의원의 말을 믿으면 안 되는데... 기본 1시간 반에서 2시간 소요) 왔다 갔다 나도 귀찮았기에 기다리는 시간에 가져간 책을 보기로 했는데,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임박해 오고 있었다. 조급해지는 마음을 붙들고 언제쯤 끝나실까 물으니 10분 정도 남았단다. 


할 수 없이 아이에게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전한 뒤 엄마를 기다렸다. (아이를 혼자 다니게 하는 것이 아직은 내키지 않았다.) 나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제 곧 나오실 거예요~"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드디어 엄마의 모습. 그런데 엄마는 나를 등지고 화장실로 직행.

나의 급한 마음을 모르시는 엄마는 느긋하시다. '엄마 빨리 좀 하자!!!' 속으로만 외쳤다. 한참 후 들리는 목소리. "어르신! 손 닦고 싶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짐작하건대 엄마가 수전 사용을 제대로 못하고 계신 듯했다. 엄마는 가끔 수도 잠그는 것을 어려워하셨다. 내가 기분 좋은 날에는 "응 엄마 이렇게 하면 돼~" 또는 직접 잠그거나 틀거나 해드리지만, 내키지 않을 땐 "엄마! 휴~(한숨을 쉬며) 왜 그래! 이렇게 하면 되잖아!"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말도 안 되지만 그렇게 하나씩 인지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한의원 복도 끝쪽에서 들려온 소리.

"어르신 손 닦고 싶으세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이 돌보듯 그렇게 해야 하는데, 나를 돌아보게 만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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