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느려져 성능 좋은 새 하드디스크로 교체했다. 기존의 하드디스크는 저장용으로만 사용하기로 하고, 그 하드디스크에서 일부 데이터를 새 하드디스크로 옮긴 후 재부팅을 했다. 그런데 하드디스크의 데이터가 모두 사라졌다. '무슨 일이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머리를 부여잡아도 소용없었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난 미련하게 다시 부팅을 해본다. 결국 복구 서비스를 받아야 했지만 시간도 재부팅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저 돌이키고 싶을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나는 많이 아팠다. 감기도 잘 걸리지 않던 터라 건강에는 자신 있었는데, 임신 28주 차에 찾아온 대상포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안면마비 증세로 이어졌다. 다시 돌아올 확률 0%. 그러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매일매일이 눈물바다였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나를 위해 약을 써보자고 하셨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난 이미 '엄마'였기 때문이다. 태중의 아이가 그저 건강하고 바르게 태어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 난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처방을 받기 위해 날마다 병원에 다녔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니 어느 날 갑자기 나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드라마틱한 결말을 꿈꾸며 의사 선생님께 여쭈었지만 대답은 단호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어요.” 야박하기가 그지없었다.
시간은 참으로 속절없이 지나갔다. 그래도 기도는 놓지 않으며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낫기를, 늦어도 아이가 엄마의 모습에 신경 쓰기 전까지라도 낫기를 바랐다. 사람을 만날 수도,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우울증은 덤으로 따라왔고, 순간순간이 힘들 땐 법정스님의 법문집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나의 소임을 해야 할 아이가 있었기에 버텨냈다. 여전히 불편한 감은 있지만 다행히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나는 바깥출입을 할 정도는 되었다.
가족조차도 만나기 싫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난 내가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누구나 다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을까?
“엄마 아까 말했잖아~, 엄마 너무 달아!, 엄마 너무 짜!, 엄마 왜 그랬어~? “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같은 말 되풀이하고, 얕은 턱에도 넘어져 다치고, 약속을 잊기도 하고, 음식의 간이 강해지고, 책 좋아하신다 하면서 책장은 잘 넘어가지 않고, 이제는 당신의 두 딸을 두고 누가 언니인지 동생인지 헷갈려하시기도 한다. 몰랐었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이런 거라는 걸...
10년간 병석에 계시다 돌아가신 아빠 때문에 엄마는 당신 몸을 잘 챙기셨다.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으시겠다며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곳이 생기면 병원도 열심히 다니셨다. 하지만 나이엔 장사가 없다 했던가? 70이 넘자 눈에 띄게 약해지시는 게 보였다. 근육이 빠져 점점 야위어 가셨고, 이젠 힘들어서 못하시는 것이 늘어만 갔다. 더군다나 코로나 19로 엄마의 마당만 뱅뱅뱅~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는데 난 굳이 병원에 가서 온갖 검사를 받으시게 하고, 기어이 병명을 캐서는 약 처방을 받았다. 세월의 병, 완치를 목적으로 하지 못하고 병의 진행속도만 줄일 수 있는 그 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기에 처방한 의사가 미덥지 못했고, 가장 힘드실 엄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으신 심정으로 병원 순례를 하셨다.
‘괜히 병원에 모시고 갔나? 모르는 게 약이었을까?’ 뒤늦은 후회를 했다. 어떤 회로를 ‘탁!’ 건드려 갑자기 생긴 부작용은 약을 바꿔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약을 거르시는 날엔 몸의 컨디션이 훨씬 좋다 하시며 “시연아~ 엄마 약 먹지 않으면 어떨까?” 자꾸만 물으신다. 위로도 해보고, 화도 내보지만 글쎄.. 모르겠다. 잠시 눈을 감고 70대의 엄마가 되어본다. 그래도 여전히 모르겠다. 하루라도 좋은 컨디션으로 사는 게 나은 건지 몸이 더 무겁게 느껴지지만 사랑하는 가족들 보며 길게 사는 것이 나은 건지.......
“엄마! 약 드시지 마~” 이렇게는 도저히 못하겠다. 엄마 없는 세상이 무서워 내 욕심에 “의사 선생님도 약은 반드시 드셔야 한다고 했잖아~ 엄마! 약 드세요... ”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약이 되는 건지 독이 되는 건지 가늠할 수 없지만 안테나를 세우고 여기저기 물어봐도 현재로선 최선이다.
엄마를 보며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2025년이면 노인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다고 한다. 고령사회에서 초 고령 사회로 접어드는 것이다. 열심히 살아오신 시간들 덕분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 많은데 노인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오래전부터 예측 가능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돌아보면 노인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너무나 안 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당장 도서관만 보아도 그렇다. 어린이 도서관은 있어도 노인을 위한 도서관은 없으니 하는 이야기다. 큰 글씨 책을 종류별로만 놓아도 좋을 일이다.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하면 더없이 좋겠다.
서점에서 진행하는 소장용 도서 읽기 모임에서 책을 고르는데 처음 골랐던 책의 글씨가 너무 작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안경을 고쳐 쓰기 싫어 아동전집을 읽고 있다.
내 나이도 적지 않아 노안이 온 것이다. 안과에 가서 문의했더니 “안경 벗으면 잘 보일 텐데요?”하신다. 그냥 그렇게 적응해야 한단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시던 책을 왜 못 보시는지 이제야 알게 된 나는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 노인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누구나 다 노인이 될 터이니....... 다시 돌이키고 싶어도 돌이킬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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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생애 체험센터)
http://www.aging-simulation.or.kr/sub_05/05_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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