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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Mar 15. 2021

엄마! 나 문제집 풀고 싶어~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아이에게 처음으로 문제집을 사줬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도록 사교육이라고는 수영 하나가 전부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배우고 싶다는 것이 딱히 없어 그저 놀면서 보냈다. 에너지가 많지 않은 엄마 아빠를 두어 어정쩡하게 노는.. 그러다가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신나서 등록하고는 1년 반을 다녔다. 친구들은 영어에, 수학에, 미술에, 다양한 사교육을 받고 있었지만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 대신 책은 좀 많이 읽기를 바랐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혁신학교로 처음부터 시험이 없어 성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덕분에 친구들과 비교되지 않으니 그저 신나고 즐거운 학교생활이었다. 그렇게 성적과는 무관한 생활을 3학년까지 하다가 새로 부임하신 4학년 담임선생님은 이전의 선생님들과 달리 성적관리는 좀 해야 한다고 하시며 단원평가를 꼬박 챙기셨다. 

"엄마! 나 80점 맞았어." 

"그래? 잘했네~"

"합쳐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한쪽면의 단원평가 후 채첨 하고 다시 다른 면에 단원평가가 치러졌던 거다. 

그 둘을 합해 80점 맞았다는 것. 결국 200점 만점에 80점.

"하하하하하! 너 참 긍정적이구나~ " 

"네 인생은 네가 사는 거야. 달리 학원을 다니지 않으니 학교 수업은 집중하고 잘 듣기!" 


지난해 12월. 겨울방학 중 학교에서 멘토링 수업이 있으니 원하는 사람은 신청하라는 안내 문자가 왔다. 선착순 15명. 아이의 수준을 알고 싶어 아이에게는 묻지도 않고 신청했다. 친한 친구랑 같이 하는 수업도 아니라며 가기 싫다고 눈물까지 보였던 아이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네 마음대로 해." 그렇게 말할 때는 내 말투가 이상해지는 건지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 아이는 꼬리를 내린다. 대부분의 일에는 항상 아이의 의견을 물어왔는데 마치 선택권을 주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처럼 구니 참 이상하다. 어쨌든 아이는 나의 설득에 넘어갔고 툴툴거리며 학교에 갔다. 사실 매일 가는 건 줄 모르고 신청 해 후회막급이었는데(학교가 멀어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해야 한다.) 신청해 놓고 안 간다고 할 수도 없어 기꺼이 시간을 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엄마! 나 수학한다고 했어"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니 표정이 확 달라졌다. 멘토링 수업은 대학생 선생님과 1:1로 한 시간 반 동안 각자 선택한 과목을 학습하는 과정이었다. 5학년 과정을 복습하고 6학년 1학기 예습도 한다니 생각지도 못한 예습 과정에 내 눈동자가 커졌다. 하하 드디어 내 딸도 예습이라는 걸 하는 건가? 갑자기 산뜻한 이 기분은 뭐지? 더군다나 선생님이 제 마음에 쏙 들었는지 너무 재미있다는 말을 하며 툴툴거렸던 일에 사과까지 했다. 


"집에서 풀던 문제집이 있으면 가져오라고 하셨는데 나는 없다고 했어" 그렇다. 문제집을 사본적이 없다. 종류별로 사서 풀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 친구의 엄마들은 문제집 산다고, 학습지 출판사에서 이벤트 한다는 둥 정보를 보내왔지만 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한 번은 아이 친구 엄마가 "다음 단원은 ***이잖아요~" 했을 때 내가 했던 말은, "책도 학교에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였다. "문제집 있잖아요!" 앗! 문제집이 있었구나. 내 아이에겐 사주지 않았던 문제집에는 단원별로 정리가 되어있었구나. 맞다. 내가 초등학교 때는 아주 두꺼운 전과를 방학에 사서 예습을 했었다. 아... 그걸 몰랐다니 잠깐 나의 태도가 민망하긴 했지만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멘토링 선생님이 집에서 풀던 문제집을 거론하셨다니 기회는 이때였다. "네가 선생님과 수업을 하면서 네 수준을 한번 점검해 봐. 그런 다음 서점에 가서 네가 직접 고르는 거야."  


며칠 후, 문제집을 사러 가자고 했다. (한미서점에는 학습물을 취급하지 않는 관계로 타 서점엘 가기로 했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몇 가지 문제집 중 아이는 맘에 드는 것을 골랐고 열심히 풀었다. (주말에는 문제집을 절대로 풀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이렇게 칼라로 되어있고 책으로 되어있으니까 너무 재밌어." 저학년 때 연산 문제를 프린트해서 풀도록 했는데 문제만 쭉~ 있는 그것을 두고 하는 얘기였다. 








한 번도 안사준 덕분에 아이는 문제집 풀이에 흥미를 붙였고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공부 앱을 다운로드하여 스스로 학습하는 시간을 체크 하기도 했다. 

"엄마! 나랑 같은 학년인데 하루에 8시간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대!" 

"야! 그건 너무한 거 아니야? 초등학생이 무슨 공부시간이 그렇게나 많아! 그리고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야. 얼마나 집중해서 하느냐지."

도서관에 가서 보는 책도 <미친 집중력>이라는 책을 찾아서 보더니 책상 옆에 붙여놓은 이것. 귀여웠다.


단원평가 100점 맞자!



욕심이 생겼나 보다.




한 달 반 동안의 멘토링 수업은 아이에게 좋은 습관을 길러 현재까지 자기 주도 학습을 잘하고 있다. 물론 멘토링 수업이 끝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풀던 문제집을 끝까지 다 풀었으니 이만하면 꽤나 성공적이지 않나 싶다. 서점에는 가끔 문제집을 팔고자 오시는 손님들이 계신다. 우리는 학습물을 취급하지 않기에 매입하지는 않는다고 하면 "아이가 안 해서 새 거예요." 이렇게 말씀하신다. 풀지 않아 새 거라니... 아깝다. 인터뷰 중 받은 질문이 있다. "책을 좀 깨끗하게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그냥 책장에 꽂아두시면 돼요. ^^" 책이 아깝지 않으려면 충분히 읽고 충분히 활용하면 된다. 아까워서 깨끗하게 보는 것보다는. 물론 중고책으로 판매할 땐 판매 불가하거나 원하는 금액을 받을 수 없으니 중고책으로 판매할 목적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다시 아이의 문제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남은 분량을 계획성 있게 풀었고 다음 단계의 문제집을 원해 지난번 갔던 서점을 방문했다. 다음 단계의 수학 문제집과 영어 문제집을 사고 싶다던 아이는 갑자기 사회 문제집을 골랐고 문제집도 편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표지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벽면 빼곡히 꽂힌 문제집 중 마음에 드는 문제집 고르기는 문제 유형도 물론 중요하지만 골라 놓은 문제집 중 최종 선택은 표지와 편집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엄마! 나 이번 주말에는 아빠 출근하실 때 같이 나가서 도서관에 갈 거야~ 지난 주말에 조금밖에 못했어. "

초등학교 때 영어나 수학 중 하나는 확실히 잡고 가야 한다는데, 아니 실은 다 잡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저 책만 많이 보기를 바라서는 안된다고, 중학생 되니 차원이 다르다며 후회했다는 지인의 말이 있었는데, 이 기회에 수학 한 번 잡아 봐? 


'네가 알아서 하거라~ 엄마는 그만한 에너지가 없다. 대신 문제집 다 풀면 문제집은 또 사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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