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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Mar 10. 2021

엄마가 설거지도 하고 그러셔?

3년 동안 살던 신혼집에서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다. 나무계단이 있는 2층 집이라 좋았고, 바다가 보이는 전망도 좋았다. 친정과 가까운 이곳은 내가 어릴 적 놀던 오래된 공원도 여전한 모습인 데다가 지척에 있는 문화예술 공간도 더없이 좋았다. 더군다나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어린이 도서관 공사가 시작되어 곧 개관을 앞두고 있었다.


3살짜리 아이 손을 잡고 도서관으로 가는 상상.

전시 및 공연이 열리는 문화예술 공간에서 다양한 것을 누리는 즐거운 상상. 

모든 것이 좋았다.


은행의 힘을 빌려야 했지만,"아파트도 아닌데 빌라를, 그것도 오래된 빌라를 뭣하러 사냐"는 시어머님의 걱정을 들어야 했지만, 내가 마음에드니 양가 어른들의 의견보다는 내 마음이 제일 중요했다. 특히나 그땐 몸이 많이 아팠던 시기여서인지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다'라고 확신했던 터라 지금이 가장 중요했다. 


이사 후 나는 매일매일이 좋았다. 2년 동안 시달렸던 불면증도 조금씩 사라진 덕분에 일도 시작할 수 있었으며, 바깥나들이를 꺼렸던 내가 아이 손잡고 외출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갔다. 조막 만 한 손 잡고 걷는 기분이란.......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보폭을 맞추며 걷다가 개미라도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관찰하는 아이와 이야기를 했고, 봄이 오면 빼꼼~! 올라오는 식물을 관찰 했다. 5분이면 도착할 도서관인데 한참을 걸려야 도착한 그곳.





그때 '후다닥!'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어린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몇 번 마주친 후, 같은 빌라에 살고 있는 것을 알았고 그 후로 우린 종종 시간을 같이했다.  나와 내 아이는 한 몸이었던 반면 그 여자아이는 아직 어린 초등학교 1학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혼자였다. 언니를 마주친 내 딸아이는 항상 물었다. "엄마! 엄마는?"

자기는 늘 엄마와 손잡고 도서관을 찾는데 언니는 늘 혼자인 것이 짐작하기 조차 어려웠을 테니 그저 궁금했나 보다. '언니는 왜 혼자 오지?, 왜 혼자 다니지?, 언니의 엄마는 왜 언니랑 같이 오지 않지?'

엄마는 일하러 가셨나 봐. 여기에서 '일'의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얘기를 더했다. 회사에 가신 것 같다고.......

 

혼자인 아이가, 아직은 어린아이가 안쓰러워 우리 집으로 데려와 놀기도 하고 식사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한 식사를 마친 후 설거지를 하는데 장난감 싱크대에서 놀던 두 아이의 대화에 귀가 활짝 열렸다.


"언니! 엄마느은?"

"엄마는 일하러..... "

"응?"

"회사에."

"엄마가 집에서 설거지도하고 그러셔?"

"어."


간질간질한 느낌의 어린아이들의 대화로 나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엄마가 집에서 설거지도 하고 그러시냐니... 내 아이는 언니에게 그것이 제일 궁금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1학년 언니는 "어"라고 짧게 대답했는데 꼬맹이의 질문이 어땠을까,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가늠하기 어렵다. 


지금은 이사 가서 볼 수 없지만 고등학생이 된 그 아이가 아름다운 성인으로 자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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