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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Apr 04. 2021

고양이와의 거리 좁히기 - 3

‘그래! 싱크대 앞쪽에 물건 주르르 놔봐. 방묘문? 그것도 설치해! 커튼으로 나를 막겠다고? 당신이 아직 나의 진가를 몰라서 그런가 본데 나야 나. 고양이. 아침에 일어나면 핑크빛으로 물든 코끝을 당신의 코에 대며 첫인사를 하는 난, 고양이란 말이야. 앉으라고 하면 앉잖아. 손 달라고 하면 손도 주고, 하이파이브도 하는데 나를 멀리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무리 밀어내려고 해도 다 소용없을 거야. 부질없는 짓이란 말이야. 모르긴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 스스로 내게 다가올 걸? 그러니 너무 애쓰지는 마. 대신 내가 시간을 좀 줄게~’     





  태어난 지 2년 3개월이 넘도록 목욕한 번 해본일이 없는 셈버가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카펫 위의 털을, 소파 위의 털을, 옷에 뭍은 털을 제거하느라 청소 솔을 수시로 꺼내 들며 문지르기에 바빴고, 청소기를 꺼내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그렇게 점점 늘어가는 나의 일로 ‘내가 한 선택에 과연 책임질 수 있을까?’ 의구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셈버는 나의 이런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다가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입양 후 냉장고 뒤로 숨던 아이는 4일째 되던 날부터 영역을 점점 확장하기 시작했다. 계단을 우다다 올라가 점프하며 실력을 뽐내기도 하고, 자꾸만 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고 폼을 잡아, “너 여기서 뛰어내리면 큰일 나~! 아야야 하는 거야~!” 마치 아기 키우 듯 말했다. 식탐이 어찌나 많은지, 식사 때가 되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습식이라도 준비하게 되면 어떻게 냄새를 맡은 건지 2층에 있다가도 쇼트트랙 선수처럼 초스피드로 달려 배식하는 내 앞에 선다. 7kg에 육박하는 몸무게로 내게 다가올 땐, 처음엔 좀 무서웠다. 하지만 점점 좁혀지는 내 마음의 거리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음을 느꼈는데, 그런 일련의 모습들이 귀엽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식사 전과 식사 후의 얼굴형이 달라지는데, 육중한 몸무게에 맞게 넙데데한 얼굴이 식사 때만 되면 갸름해지면서 약간 애처롭게 보이기도 하고 눈동자는 동글동글 ‘귀여움’ 그 자체다. 


식사시간, 냄새를 맡으며 코를 벌름버린다. 눈은 살짝 게슴츠레...

  

 시간은 지나 입양한 지 한 달이 되던 날. 이날은 우리 가족이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다. “오늘은 셈버가 목욕하는 날이니까 일찍 들어오세요~!” 남편에게 얘기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고양이 목욕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수의사가 운영하는 유튜브부터 유명한 집사들의 동영상은 물론, 지인들의 목욕시키는 비법까지 전수받았다. 물론 그중에는 “저는 여전히 목욕시키기 힘들더라고요. 성공하면 꼭 그 비법을 전수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1년 5개월 된 집사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10분 안에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걱정은 산이 되고 ‘후우~’ 한숨부터 나왔지만 “어쩌면 순한 우리 셈버는 잘할 수도 있어. 괜히 우리가 미리 걱정하는 건지도 몰라~” 그렇게 진정시키며 아이와 함께 시나리오를 짰다.  


  타월도 크기별로 준비해 두고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츄르로 유인하며 욕조 안의 대야로 들어오게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욕실 안에서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첫 번째 도전 대실패. 결국 수건에 따뜻한 물을 적셔 닦아주는 것으로 끝냈다. 대신 그토록 들어오고 싶어 했던 침실을 잠깐 허락하며 ‘씻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했다. 하지만 잠깐이다. 제대로 씻지 않은 녀석에게 침실을 휘휘 젖게 만들 수는 없었다. 


  우리의 계획을 알았던 지인이 상황을 궁금해하며 다음 날 연락해 왔다.

“목욕, 성공했어요? 잠은? 그래서 잠은, 어디서 자요?”

“잘 때는 침실 문 닫았죠. 그리고 잘 때 되니까 알아서 숨숨집에 들어가던데요?”

불쌍하다고 했다. “아니야~! 불쌍하다고 하지 마요. 그럼 내 마음이 불편해진단 말이야~ 알아서 자기 집에 잘 들어가서 자는 데 뭐~~~” 이렇게 말했지만 방묘문을 폴짝폴짝 뛰어넘으며 침실에 들어오고자 애썼던 셈버를 문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밤에 혼자 두는 것이 슬슬 안타까워지기 시작했다. “셈버야! 목욕할까?” 그렇게 다시 도전! 


  아무리 순한 아이도 목욕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물이라고는 먹는 물만 봤으니 내가 이해해야지 별 수 있나. 결국 샴푸를 따뜻한 물에 풀어 수건에 적신 후 닦고, 다시 깨끗한 수건에 따뜻한 물을 적셔 3회 닦아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아쉽긴 했지만 이전보다는 말랑해진 마음에 방묘문과 방문을 열어놓았다. ‘따라라라라~~~ 셈버 입장!!!’ 좋은 건 알아가지고 새로 깔아놓은 러그 위에서 잠이 든다. 마치 발레리노의 모습을 보는듯한 포즈로.


내 다리 위에서도 잠이 든 사랑스러운 고양이 셈버


  결국 그날부터 우린 함께 잠을 잤다. 어쩌겠는가, 그날 이후로는 낮이고 밤이고 숨숨집에는 일체 들어가지 않으니. ‘거봐~!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했잖아~’라는 듯이 고개를 10도 정도 기울여 치켜들고 도도한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손은 이미 셈버의 몸을 쓰다듬으며 하는 말, “셈버야 사랑해~~~.” 내 귀를 의심했지만 이미 내 입을 통해 나온 말을 우리 가족 모두가 들었다. ‘그래, 비웃을 테면 비웃어봐. ’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 엄마는 셈버가 오고 나서 변했어!” 아이는 말했다. 나도 내 입에서 “아휴 귀여워~” 라든지 “사랑해~”라든지 그런 말을 고양이에게 내뱉을지 몰랐다. 나는 분명 고양이를 싫어했다. 지금도 고양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우리 식구가 된 셈버를 사랑하게 된 것뿐이다.


쎄엠버~ 잘 잤쪄? 셈버~ 코!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아이 때문에 키우기 시작한 고양이는 우리 가족에게 또 하나의 공통 주제를 만들어 주었고, 그로 인해 함께 웃는 시간이 늘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13분이라던가? 같이 놀고, 같이 얘기하고, 같이의 가치가 올라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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