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연 Apr 29. 2021

깜짝 선물


엄마! 나 1등 했어!

삑삑삑삑 삐~~~ 현관문을 들어선 아이가 중문을 헐레벌떡 열며 말한다. "엄마! 나 1등 했어!" 어깨에 멨던 에코백은 무게를 지탱하기 어렵다는 듯이 팔뚝에 반쯤 걸린 채 늘어졌고, 발은 벗어내지 못한 신발을 꾸긴 채 상체를 쑤욱! 들이밀었다. "뭐어! 뭐가?" 난 아이 이마 위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흥분한 아이보다 더 흥분되는 목소리로 다음 말을 재촉했지만 '어!' 순간 감이 왔다. 전날 아이와 함께 도서관엘 갔다가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에 참여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책을 대출하면 벽에 붙어있는 레트로 느낌의 뽑기를 할 수 있었는데 얼마 남지 않은 쿠폰 중 신중하게 골라 볼펜 뒤 꼭지로 긁었더니 5등이 나왔었다. 연필과 지우개를 사이좋게 하나씩 골라 쥐고, 잡은 손을 흔들며 집까지 걸어오는 길은 날씨만큼 좋았다.


 "나, 내일 또 해야지!"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를 줘야지 뭐하러 또 하느냐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필과 지우개는 넘쳐나는데 뭐하러 또 하느냐는 말을 생략한 것이다. "재밌잖아~" 아이는 뽑기 하는 것 자체가 재밌으니 상품은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1등 쿠폰을 뽑은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쿠폰 안에 1등이 숨어있었다니, 대~~ 박 사건!





사진도 찍었다고 했다. (이쁘게 나왔을까? 그것부터 궁금했다. 난 내 딸의 엄마니까.) 부지런히 포장재를 벗겨내는 순간! 아이는 신났다. 흥분은 가라앉을 줄 몰랐고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목소리는 하이톤이 되고 만다. 깜짝 선물의 힘은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다.





해마다 연초에는 사업계획서를 쓰느라 바쁘게 보낸다. 1년 동안 먹고 살 일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서점에서 책만 팔아서는 운영하기조차 어렵다 보니 시작하게 된 나라 보조사업이다. 지원사업이니 그냥 '옛다!' 하고 던져주는 건 줄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적어도 우리에겐 그렇다. 우선 연말까지는 한해에 진행했던 사업의 정리(정산 포함)가 이루어진다. 12월 31일까지 가까스로 끝내기도 하며 식사를 거리기도 일쑤. 다음 해 1월에는 드디어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기지만, 정산에 따른 보완 요청이 있을 때에는 기꺼이 시간을 내어야 한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2월부터 당해연도의 사업을 살펴본다.


시청 및 구청, 문체부 홈페이지 등에서 수많은 공모사업을 볼 수 있으나(알게 된 후 많이 놀랐다. 이렇게 많다니... ) 우리의 경우엔 인천문화재단의 사업을 메인으로 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지역문화진흥원의 공모사업(지자체 사업보다 중앙부처의 사업이 일을 하는 입장에서 훨씬 우월하다.)을 보고 있다. 나라 보조사업을 알려주는 앱도 있다던데 해당된다고 모두 할 수도 없으니 이전부터 해왔던 일들을 중심으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12월에는 문화재단의 홈페이지를 들어가지 않는다. 정산하느라 무척 바쁜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늦어진 사업의 정산 건으로 방문했다가 2020년 12월, 때 이른 2021년 사업공고를 발견했다. 예술 표현활동 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문인이나 공연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연구모임 부문이 있다. 2020년에 이 사업을 처음 알게 되어 '점자를 활용한 인천의 문화상품 개발 연구'계획서를 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 채 탈락했던 사업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하기엔 문턱이 높은 건가 싶어 잊고 지내다가, 해가 더해져도 한글점자를 활용한 문화상품 개발에 대한 목표가 사그라들지 않아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때 이른 공고로 그나마 쉼의 기간인 1월부터 사업계획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마감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부리나케 정산 건을 마무리하고 2019년에 냈던 사업 계획서를 열어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었다. 그리고 제출 완료. 하지만 3월이 되어도 묵묵부답이었다. 새해 처음 제출한 사업계획서인데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으니 우울감까지 밀려왔다. 올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코로나 상황의 악화만큼 마음의 불편함이 악화되었다. 하지만 지난 일에 매달리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기에 이어서 올라오는 사업의 계획을 위해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낼까 말까, 할까 말까' 망설였던 사업까지 총 3개(예술 표현 활동 지원사업까지 4개)의 사업계획서를 써서 제출했다.


서류 발표날까지는 그런대로 기다릴만하다. 하지만 서류가 선정된 후 인터뷰를 보게 되는데 그 이후의 기다림이 내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니 하... 자생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러던 어느 날 문자 한 통이 왔다. 3월의 끝에 다다랐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메일에 대한 회신 요청 문자였는데 똑 떨어진 줄 알았던 예술 표현 연구모임에 대한 알림이었다. '잘못 온 문자인가?' 혹시나 싶어 메일을 열었고 이어 재단의 공지사항을 확인했다. 이미 보름 전에 발표한 내용에는 나의 이름이 떡 하니 쓰여있었다. 1월에 제출한 서류가 3월이 되어도 소식이 없었으니 또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하하하 됐네!'


'20%나 깎인 예산으로 과정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개발 가능성에 대한 연구 모임에 선정된 것이 그 무엇보다 기뻤다. 서점에서 벌였던 사업과 다른 과정이었기에 더 그렇다. 이름부터 연구모임이라니 멋지잖아? 하지만 1년 동안 해봤자 100만 원도 안 되는 인건비를 받는 사업이라 다른 궁리를 해야 한다. 그렇게 3월 내내 사업계획서를 써냈고 4월 중순까지 발표가 있었다.  3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인터뷰도 있었고  모니터링도 있었다. 제출했던 계획서는 최종 발표까지 마쳐 총 3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연구모임에 떨어진 줄 알았고 지원사업도 어떻게 될지 몰라 덜컥 수락한 학교 수업도 있으니 모르긴 몰라도 올 한 해, 무척 바쁠 듯하다.


정신 차려보니 5월이 코 앞. 그냥 서점만으로도 먹고사는데 문제없으면 참 좋겠다.

언젠가 남편이 물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도 이런 사업들을 하겠느냐고. 또 어떤 단체의 대표는 그랬다. 재밌어서 하는 거 아니냐고. 음... 글쎄다. 일단 경제적으로 여유 있으면 조마조마 한 마음은 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땐 지원사업 말고 자체 사업으로 유료로 진행하고 싶다. 사업계획서야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서 옮겨 적으면 되는데, 발표가 날 때까지 조마조마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힘들고 프로젝트 진행 외에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은 것이 그 무엇보다 정말 힘들다.


서점에 사람이 오도록 하기 위해, 그러면 자연히 매출도 올라갈 거라는 생각에 서점에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나라 보조사업)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폐업의 위기에서 벗어났고 다양한 사업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시야도 확장되었다. 내성적인 내가 해야 했기에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나의 성격과 성향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나도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며 가끔씩은 카페에 앉아 수다도 떨고 싶다.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어쨌든 깜짝 선물 덕분에 내 어깨가 봉긋 올라갔다. 파이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