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연 Apr 26. 2020

헌책방 나들이



나의 취미는 헌책방 나들이다. 책은 정가에 구입하는 것이 당연하던 때 우연히 헌책방에 갔다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입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운 좋게 저자의 싸인이 있는 책을 발견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난 헌책방에 들어서며 맡는 책 냄새가 좋다. 대형서점과는 달리 책장과 책장 사이가 넓지 않은 곳을 미로 찾기 하듯 천천히 둘러보며, 책 제목이 맘에 든다는 이유로, 혹은 원하던 책을 찾았을 때의 기쁨으로, 난 헌책방 나들이를 취미로 삼았다. 인생의 즐거움은 취미의 가짓수에 비례한다는데 지금부터 취미 한 가지를 더하기 해도 좋을 일이다.     





내 나이 오십이 되면

'헌책방 나들이'가 취미인 나는, 책을 사러 헌책방에 갔다가 책방 주인과 결혼을 했다. 책을 많이 좋아하시는 엄마 덕분에 남부럽지 않게 책장 가득 책이 있었지만, 전집류의 책이 많아서라고 주장하는 난, 책 읽기는 그다지 즐겨하지 않았다. 그냥 책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는 그냥 헌책방이 좋았다. 15년 전 친구내게 물었다.
“나중에 뭐하고 싶어? ”
“나? 난... 내 나이 오십이 되면 헌책방을 하고 싶어. 음악 틀어놓고 앉아서 차 마시다가, 책 읽고 싶으면 책 읽고, 바느질하고 싶으면 바느질하고, 책 사러 오는 손님 있으면 책 팔고.......”

친구는 질문을 해놓고 의아해하는 눈빛이더니, 이내 “야야~! 너 밥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하며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다. 경제적 개념이 부족했던 탓인지 그냥 그렇게 살면 좋겠다 싶었다.  

    

사람들이 고마워해야 해

헌책방에서 만난 남편과의 인연은 나의 꿈을 일찍 실현시켜주었다. 꿈은 꿈이었을 뿐일까? 헌책방 운영이 생각처럼 낭만적이진 않았다. 어떻게 말해야 빨리 이해가 될까? 잠시 눈을 감고 집안일을 생각해보자.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표도 나지 않는 집안일, 그것도 최악의 집안일이라고 보면 된다.


휴일도 없이 10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남편을 보며 손님도 없는데 일찍 들어오라고 채근하면, 들어온 책 닦아야 하고 정리도 해야한단다. 또 가끔씩은 퇴근해서 늦게 오시는 단골손님도 계시다며 늦을 수 밖에 어뵤는 이유를 댄다.


작년 가을이었나? 여학생이 부평에서 책을 사러 왔다. 해는 이미 져 어둑어둑해졌는데 마침 난 집으로 들어갈 예정이었기에 여학생을 역에까지 바래다주었다. 늦은 밤 퇴근한 그남자는 여학생 잘 바래다주었냐며 서점에 불 밝히고 늦게 문을 닫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했다. 어두운 거리에 불을 밝혀둔 한미서점. 그곳으로 인해 거리를 좀 더 환하게 하고 싶었단다. 난 완전 감동받아 눈에선 이미 하트 뿅뿅! 입에선 내 남편 멋지다~ 고마워~ 를 연발하고 있었다.


1950년대부터 시아버님이 운영하시다가 쓰러지시는 바람에 도와드리고 있던 그 남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함부로 접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생활이 되지 않아 폐업의 위기에까지 갔으나 생각을 고쳐 잡고 고쳐 잡기를 수차례. 1500원짜리 책을 죽어라 500원 깎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책값이 너무 싸다며 거스름돈을 놓고 도망(?) 가는 손님도 계셨다. 20년 전 오셨었다며 미국에서 오신 교포 손님은 “책값을 좀 올려 받지 그래? 책값이 너무 싸. 이 자리에서 헌책방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고마워야 해” 하시는 나이 지긋한 분도 계셨다.


헌책방은 숲 속이다.

헌책방은 책을 함부로 다뤄도 되는 책들이 모여진 곳이 아니다. 값이 싸다고 그 가치까지 낮게 봐서도 안 될 일이다. 내 것으로 소유해 편안하게 읽다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어 돌려 읽혀지는 것이다. 책 한 권을 만드는데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며 책 한 권이 내 손에 오기까지 약 300g의 CO²가 발생한다고 하니 생태학적인 측면에서도 헌책방은 지속되어야 마땅한 곳이 아닐까? 또한 새 책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다양한 히스토리를 만날 수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다.


지금 당장 내가 사는 곳과 제일 가까운 헌책방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자. 그리고 그곳에서 책을 구매해 읽는 것으로 이 가을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 가면 헌책방에서 생기는 다양한 일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깨비가 다녀간 ‘노랑노랑 한미서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