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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Apr 30. 2020

한미서점은 서점입니다

책을 매입한다. 매입한 책 점검한 후, 고치고 닦고 매만지는 과정을 거친다. 상태 및 시세에 따라 값을 매기고 분류한 후 데이터화 시키면, 그제야 한 권의 책이 책장에 꽂히게 된다. 그 책장에서 꺼내 드는 책은 적어도 한 번은 선택받았던 녀석으로 새 책에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런 것들이 좋아 헌책방 나들이를 취미로 삼았었다. 책을 넘기다 부스러질까 조심스러운 오래된 편지도, 한 귀퉁이가 이미 떨어져 나간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도 그대로 이야기가 된다. 조금은 특별한 애정을 갖고 동네 책방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물론 서점으로서 말이다.     


 




헌책방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점을 찾는 이들 중 무례한 사람들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 많아, 한번 생각해 보았다. 헌책방에서의 손님은 책을 구매하는 사람에게만 그치지 않고 책을 팔러 오는 이들 또한 귀한 손님이니


1. 책을 판매하기 위해.

2. 책을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해.

3. 어릴 적 읽었던 책을 구하기 위해.

4. 절판된 책을 구하기 위해.

5. 오래된 책 냄새가 좋아서.

6. 책을 보며 시간 때우기 위해.

7. 책방 주인과 이야기하기 위해.

뭐 이 정도로 좁혀지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책을 매개로 모여지는 곳임엔 틀림없다.


“어서 오세요~” 손님이 오시면 인사로 맞이한다.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타 지역의 ** 서점에서는, 손님이 불편할까 봐 일부러 인사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작정을 해도 자동으로 인사를 하게 되니 안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하고 불편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오시는 관광객들로 책 손님들이 불편해 하자, '내부 촬영 금지' 안내판을 걸었다. 관광객이 많은 서점 안은 출입구에 붙여놓은 ‘사진 촬영 금지’ 안내 문구가 무색하게, 몰래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부 촬영 금지예요~.” 하루에도 몇 번씩 내뱉다 보면 뭐하는 짓인가 싶다. 그냥 상관하지 말까....... 싶어 모른 척하다가도,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어 다시 시작하게 되는 이 불편한 상황. 서로 지킬 것만 지키면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한 번은, 드르륵 문을 열고 문 밖에서 무뚝뚝한 어조로 묻는 분도 계셨다. "여기는 왜 사진 촬영 금지예요?"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비 온 뒤 개인 그날, 서점 앞 인도에 그것도 가로질러 우산이 버려져 있기에 도대체 누가 렇게 버리고 간 건가 싶어 밖으로 나가 일단 한켠에 세워놓았다. 웅성웅성 소리에 고개 돌려보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 네다섯 명이 장비를 가지고 와서는 서점을 배경으로 촬영하고 있다. 출입구 옆 윈도우 앞에 가방이 쭈르르 놓인 모습이 기분 좋지는 않았지만, 뭐라 말하기도 그렇고 외부 촬영이니 그대로 들어왔다. 한참 후 건물 오른쪽으로 이동하더니 이번엔 서브 출입구 쪽에서 촬영을 한다.


그렇게 촬영하고 나서는 들어와 묻는다. “촬영해도 될까요?” 내부 촬영은 안 된다고 하니 밖에서만 촬영할 거란다. 그런데 그걸 이제 물어보나...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용도'를 물으니 '대학생'이란다. 밖으로 나간 그들은 서점 외부에 진열 해 놓은 미니북을 들고 주 출입구를 차지하고 촬영을 이어간다.


하지만 주 출입구에서의 촬영은 영업에도 지장을 줄뿐더러 손님들에게도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밖으로 나가, 이곳은 영업장이며 사전에 얘기도 없이 이렇게 긴 시간 촬영은 곤란하다고 말하고 5분 안에 정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얼마 후 문밖이 조용해 나가 보니 그들은 거기에 없었다. 내가 세워놓은 우산과 함께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가족이 들어온다. 아이가 서서 만화책을 보길래 앉아서 보라고 의자를 내어주었다. 아이가 책을 읽는 동안 부모는 서점 구경을 한다. 만화책 한 권을 다 읽은 후 가족은 조용히 밖으로 나간다.    

  


손님이 책을 읽는다. 관광객이 많았던 그날, 책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남편은 손님들과 좁은 공간에서 엇갈리다가 책을 읽는 손님에게 앉아서 보시라고 권해드렸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손님은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있는 책을 보고 계신다. 서점의 것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 자리를 비워 달라 했더니 잠시 후 아무 말 없이 나간다. 어디 이뿐이랴.......


자, 그러면 여기서 빠진 것이 뭐가 있을까? 그렇다. 바로 인사가 빠졌다. 요즘의 사람들에게 느끼는 건 인사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에게 '인사를 바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책 한 권을 다 보고 가는 건데 잘 봤다고 인사하고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넓지도 않은 공간에서 개인의 책을 들고 와서 읽는 건 또 무슨 경우인지......., 아무리 외부라지만 출입문을 차지하면서까지 한 시간 정도를 촬영하고 갈 땐, 적어도 고맙단 말은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사람들은 한미서점이 서점이 아니라 촬영지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가 더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천시에서 조차 관광지로만 홍보를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타 지자체에선 지역의 작은 서점 살리기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작된 지 오래, 적어도 수십 년 운영해 온 서점이 문을 닫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심심해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저 책이 좋아서... 책을 매개로 만나는 사람들이 그동안엔 다른 공간의 사람들보다 따뜻하고 좋아서.. 그리고 조금, 어쩌면 많이 더디지만 오래된 건물을 우리의 손으로 고치고 다듬어가며, 그 이야기를 만들어가기에 묵묵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40여 개의 헌책방이 있었던 배다리에는 그 일을 묵묵히 지켜온 사람들이 남아 현재 5개의 헌책방이 남아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인천에서 선거 유세를 하셨을 때 한미서점을 거론하신 기사를 봤다. 그 기사의 댓글에 ‘역시 젊은 대통령’이란 글이 있었고, 지지하는 국민으로서 한미서점을 거론하셨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 촬영되어 극장에서 접한 한미서점의 모습은 어쩐지 홍보용으로만 쓰이는 것 같아 아쉬움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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