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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May 22. 2020

맑고 향기롭게

훗날 아름다운 네 모습을 상상해봐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우리 식구 자고 나면 주고받는 말.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엄마 아빠 일터 갈 때 주고받는 말.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신이 나지요.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일 맛나지요.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가슴이 콩닥콩닥인데요.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나는 나는 이 한마디가 정말 좋아요.
사랑 사랑해요.


아이가 다섯 살 때였나? 밤잠을 재우는데 어린이집에서 배웠다며 갑자기 이 노래를 한다.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작은 목소리는 어두운 방안을 금세 환하게 만들었고, 어설픈 음정은 오히려 사랑스러움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했다. 참으로 예쁜 말. 기분 좋은 말.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 스승의 날 써 보낸 카드




서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 있다. 13명의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규칙을 정하게 되는데, '배려하기, 인사 잘하기, 예쁜 언어 사용하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휴대폰 및 장난감은 수업시간 후에 꺼내기'가 그것이다. 


나는 언어에 조금 민감한 편이다. 특히 아이의 언어는 맑고 향기로웠으면 좋겠다. 그 뜻도 알지 못하면서 어린아이의 입에서 욕설이 나오면 너무 화가 나서 견디기 어렵다. 그런 내게 들려온 한 아이의 언어. “C땡” 

1년 과정의 긴 호흡으로 진행되기에 함께하는 아이들의 몸짓과 언어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입에서 어떻게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이 담기는지 알 수가 없다. C땡 이라니... 난 순간 너무 놀라고 화가 나서 표정을 관리하기조차 어려웠다. 


조용히 아이에게 다가가 주의를 주고는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다. "얼굴만 예뻐서 되는 게 아니야. 입에서 나오는 언어가 예뻐야 해~" 아이는 알아들었다는 듯 신호를 보냈고, 수업은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다음 주에도 아이의 언어는 고쳐지질 않았다. 전해 듣기로는, 예쁘지 않은 말로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이 나 있었다. 하지만 직접 들은 것이 아니었기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연달아 목격된 아이의 나쁜 언어는 나를 고민에 빠뜨렸다.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되겠다 싶어 타 단체와의 만남에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모두들 '하하하하하!' 박장대소하며,  ‘C땡', '존*’는 아이들 사이에서 욕도 아니라는 것이다. 순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그러한 사실이 너무 슬프다고 했더니 앞일이 걱정이라며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무리의 학생들 입에서 나오는 대화를 들으면, 뒤통수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나설 용기가 없는 난 귀를 틀어막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도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도대체 아이들이 왜 이러는 걸까? 내 아이라고 안심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들만의 언어려니 생각해야 해. 엄마한테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모르는 아이들의 무리는 내가 어쩌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아이들 말씨는 단속시켜야겠다. 난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책장 사이의 손님용 자리로 옮겨 앉았다. 잠시 눈을 맞추고 숨을 고르고는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아이는 장래희망을 이야기한다.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면 사용하는 언어도 예뻐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 서점에서 말이야~ 창밖을 내다보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돼. 더러는 마음 불편하게 하는 손님들도 계셔. 그 손님들을 대할 때 많이 속상해. 너도 있지? 쟤는 왜 저럴까? 싶은....... 저 어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모두가 다 꿈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을 거야.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고,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도 있어. 처음엔 이것쯤이야 괜찮겠지 했던 일들이 누적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 거야. 그 누구도 잘못된 삶을 원하지는 않아. “


그리곤 또 덧붙이기를 

“ 너는 어떻게 살고 싶니? 어떻게 살아야겠니? ” 하는 물음과 옐로카드를 줬다. 레드카드를 받으면 퇴장해야 한다고도 일렀더니 도리질을 한다. 이제는 나쁜 말 하지 않겠다며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훗날 아름다운 네 모습을 상상해봐.       



꾸욱 누르면 튕기는 풍선 같지 않게 수긍을 해 줘 고마웠다.     

맑고 향기롭게 살아야지.

맑고 향기롭게 길러야지.

내 아이나 네 아이나 사랑이 가득한 아이들로 아름답게 자라주길 바란다. 일주일에 고작 한 번이지만 배움을 얻어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치지 않고 바른 자세를 잡아주기를 바란다. 원래 그렇다고, 다 그런 거라고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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