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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 고등학교 입학 전

by 시연

초등학교만 길지 중*고등학교는 금세 지난다더니 어느새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순하고 지극히 평범한 아이라 놀랄만한 일도, 걱정할 일도 없이 물 흐르듯 학창시절을 보낼거라 예상했는데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전 느닷없이 '자퇴하고 싶다'는 말로 잔잔하기만 했던 호수에 파장을 만들었던 아이. 하나뿐인 딸이다.


자퇴를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큰 걱정이었지만 미션을 주기도하고 대화를 나누며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털어버릴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다행히 이후에는 별다른 문제 없이 중학교 생활을 이어갔다. 단짝친구도 있고, 친구들이 주는 정직상을 2년 연속 받을만큼 학급에서 모난데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특하게도 혼자 하는 공부도 곧잘하여 전교에서 7등 8등을 유지했으니 그저 감사할 수 밖에. 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에서 이견이 생겨 서로를 설득하고 때론 부딪혔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3학년 2학기, 고등학교를 선택 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특성화고'를 가고싶다고 했다. "특성화고? 특목고도 아니고 특성화고라고?" 월등하거나 뛰어나지는 않지만 조금 더 신경써서 특목고에 보내는 게 어떠냐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는데 나의 역량 부족으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특성화고라니......

갑작스런 아이의 발언에 속으론 한숨이 절로 나왔다. 특성화고 자체가 낯설기도 했고 당연히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고등학교(다니던 중학교와 같이 있는 사립학교)에 가는 거라는 생각에 의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를 물어었더니 세무고등학교가 있다는 것이다.

회계사나 세무사가 되고싶다는 아이는 세무 고등학교에 가면 관련한 공부를 더 집중적으로 하게 되는 것 아니냐며 엄마랑 아빠는 알지도 못하면서 반대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아이 말대로 잘 모르니 좀 더 알아본 후에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그날의 대화는 마무리 지을 수 밖에.


수학을 잘 하는 아이가 원하는 직업은 회계사나 세무사다. 생각만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하여 이해하기 어렵지만 남궁민 배우를 좋아하는 아이가 드라마 '김과장'을 본 후 결정한 진로로 짐작된다. 문제는 세무 고등학교가 있다는 것. 그무렵 학교와 학교 밖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특성화고에 대한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듯, 자칫하면 현혹되기 십상이다. 남편과 나는 지인찬스를 쓰기도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특성화고에 대해 알아봤는데 추천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니, 실은 없었다.


아직은 어린 아이가 세무사가 되고 싶다는 이유로 세무고등학교에 갔다가 다른전공을 하고싶으면 그때는? 나만 보아도 그렇다. 어릴적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중학교때에는 강단에 올라 여러차례 상장도 받았다. 자연스럽게 나의 꿈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고 원하는 학과에 진학해 원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왜 공예나 의상학과는 염두에두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는 그쪽이 더 잘 맞았을 것 같다는 뒤늦은 후회와 아쉬움이 있었으니 충분히 걱정되었다. 더하여 짐작하건데 세무 고등학교에 가는것이 아이가 원하는 세무사가 되기위한 지름길은 아닐 것이라는 것. 아이를 설득해야만 했다.


강요하는 느낌은 최대한 배제하며 대화와 설득을 이어갔다. 결국 일반고에 가는 것이 더 많은 선택지가 있고 더 많이 공부하게 될 거라는 말에 최종 설득을 당한 아이는 희망하는 일반고등학교 3개를 나열했다. 고등학교 배정은 일명 뺑뺑이 방식. 일반적으로는 1순위에 써낸 학교로 배정된다고 알고 있었기에 1순위에 어느 학교를 써내야 하는지가 중요했다.


"그런데 말야~ 1순위와 2순위를 바꾸면 어떨까?"


당연히 가까운 학교가 1순위였다. 특성화고에 대해 알아보기 전까지는. 특성화고 때문에 덩달아 알아본 바에 의하면 집 근처의 학교는 공부를 너무 안시킨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인문계지만 다양한 활동으로 아이들은 행복하다는 학교라는 정보를 갖고있었다. 아이들이 행복하면 됐지 뭐. 그렇게 편하게 생각했는데 들리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저 편안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그나마 공부를 좀 시키는, 학습분위기가 좋은, 때문에 대학 진학률이 높은 인문계 고등학교가 낫다는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내신등급 따기는 어렵다는 단서가 붙지만 이왕이면 학습분위기가 좋은 곳이 낫지 않겠나 싶어 아이에게 넌즈시 이야기했다. 아... 쉬운일이 없다더니 아이는 도리질을 하며 싫다고 했다. 그 학교는 교복도 안이쁘고 친구들도 모두 자기가 원하는 학교를 쓴다며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별수없이 이번에는 아이의 의견을 따를 수 밖에.


결정하고나니 5분 거리의 학교를 두고 25분 걷는 거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까운 게 최고라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어차피 거기서 거기일 거라며. 괜한 말로 아이의 마음을 속상하게 만들었다 싶었다. 이제는 아이가 원하는 학교에 배정되길 바랄 뿐.


발표 날 아침.

여느날과 다름없이 아이는 가방을 챙겨 도서관으로 갔다. 뛰지 말고 차조심 하라는 말로 배웅을 하고 1시간 쯤 지났을까? 아이가 엉엉 울면서 전화를 했다. 심장이 쿵.


친한친구들은 모두 1순위 학교로 배정을 받았는데 본인만 2순위 학교로 배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학교 안 간다고. 특성화고로 전학갈 수 있을 거라고.

너무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며 그러라고 했다. 학교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그냥 검정고시 보면 된다고. 나도 슬쩍 화가 났기 때문에.


남편과 내가 2순위로 쓴 학교에 배정받기를 바랐기 때문일까? 처음에 말이다.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아이와 입장바꿔보니 무척이나 속상할 아이의 마음이 먼저라는 지점에 닿았다. 3시간여 후 퉁퉁부은 눈으로 들어온 아이를 마주하고는 꼭 안아 주었다. 속상하겠다는 말과 함께. 아이는 다시 울기 시작했고 특성화고로는 전학갈 수 있다며 이미 알아본 내용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교복도 예쁘지 않고, 더 멀고, 내신따기 어렵고, 시험도 더 어렵다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헤어지게 된 건 속상하지만 너는 늘 그랬던 것처럼 친구를 또 사귀게 될 거야. 그리고 어쩌면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신호일 수 있어. 중학교까지는 학습량이 적어도 공부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고등학교는 많이 달라지니 친구들과 노는 대신 열심히 공부하라는 신호.


고등학교는 네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었지만 대학교는 네가 원하는 학교를 가서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3년 후,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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