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렇다고 오늘이 마지막인 거처럼...

by 시연


일요일 아침이면 우리 가족은 TV앞에 모여 앉아 SBS동물농장을 시청한다. 아이가 TV를 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어진 루틴이다. 최근 아이는 이 자리에 들락날락 하지만 우리 집에 고양이가 온 이후로는 내가 더 열심히 보는 프로가 되었다. 지난해 마지막 일요일인 12월 29일 아침도 예외는 아니어서 간단한 아침식사와 함께 나는 SBS동물농장을 보고 있었다.

연말이라 스페셜 방송을 예고했지만 간혹 보지 못한 날도 있었고 방송 이후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보여주어 집중하여 시청하고 있었다.


시청 후 20분쯤 지났을까.

하단에 속보를 알리는 자막이 나왔다.

제주 항공 여객기 사고를 알리는......


자막을 보고 너무 놀라 검색해 봤지만 자세한 뉴스는 없었기에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이기도 하고 공항에 도착한 상태이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합장하고 기도하며 희생자가 없기를 바랐다.


잠시 후 중간광고 시간이 되자 속보를 알리는 뉴스가 시작되었고 그 뉴스는 하루 종일 이어졌다. TV를 끄지 못한 채 하루 종일 뉴스를 보며 지낸 시간.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그 현장이 그려져서 너무나 무섭고 슬펐다. 급기야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는데 옆에 앉아있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가 저 비행기에 탔을 수도 있는 거잖아."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러게 말이다. 살고 있는 지역은 다르더라도 생각지도 못한 참사 앞에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방학이 시작되었을 텐데..... 생존자 소식이 단 2명뿐이라 두통에 이어 입 안쪽에 병이 생겼다. 참을 수 없어 두통약을 하나 먹고 간신히 잠든 밤에는 관련한 악몽으로 슬픔과 무서움이 이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합동 분향소를 찾아가 간절히 빌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빨리 좋은 몸 받고 다시 태어나 못다 한 생 활짝 펼치기를.....




실은 태국여행을 계획했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될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대만을 갈까 홍콩을 갈까 에라 모르겠다. 아예 유럽을?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결정한 여행지였다.

그러니 결코 남의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엊그제 아이의 중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식에서 자꾸 눈물이 나서 나는 침을 여러 번 삼켰다. 내 아이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사고로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떠올라 슬픔이 턱까지 차올랐다.


돌아가신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오래 살고 싶지는 않지만 하나뿐인 손주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크는지가 보고 싶으시다고. 궁금하시다고. 물론 친정엄마는 노년기를 보내시는 중이었고 노년에 죽음을 맞이하셨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그 슬픔과 아픔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아이가 유아기 때였다. 잠을 재울 때면 함께 누워 자장가를 불러주었는데 자장가의 끝에는 소리 내어 기도를 했더랬다. 그 기도문 중에 '무병장수'가 포함되었는데 아가였던 아이는 '무변잔수'가 뭐냐며 혀 짧은 소리로 질문을 했었다.


사람이 태어나 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차근차근 맞이하고 보내는 것. 그것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저 지금의 시간과 마주하고 있음에 감사해야겠지.


오늘이 마지막인 거처럼 살라고 한다. 그거야 열심히 살라는 거지. 정말 오늘이 마지막인 거처럼 그렇게 살 수는 없는 일인데, 그러면 너무나 슬픈데..... 일요일이면 생각나는 그날의 참사가 떠올라 먹먹하고 눈물 나는 날이다.


- 합장 시연 -




작가의 이전글나는 내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