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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Apr 02. 2022

눈이 부시게

손으로 생각하기



* 이 글은 2019년 8월에 써 둔 글입니다. 





서점에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다. 주로 어린이와 중년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2019년 5월부터 8월까지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손으로 생각하기'를 진행했다. 시작은 엄마였다. 젊은이들의 눈초리에 못 이겨 수십 년 동안 다니시던 헬스장에서 지역의 주민 센터에서 운영하는 헬스장으로 옮기셨고, 당신의 책은 책꽂이에 둔 채 도서관 한 귀퉁이에 있는 큰 글씨 책을 빌려 읽게 되셨으며, 애장품인 재봉틀을 큰딸인 내게 물려주셨다. 또, 살림에는 관심이 없던 둘째 딸에게 살림의 일부를 내주셨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십 년을 매일같이 다니시던 새벽기도는 몇 년 전부터 기도처를 바꿔 집에서 대신하신다. 이렇게 엄마는 미처 노년을 준비하지 못한 채 노년을 보내고 계셨다. 


어쩌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한 딸들 덕에 할머니 소리가 영 불편하시던 엄마였지만 손녀가 서투른 발음으로 “할미~!”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더 이상 ‘할머니’ 소리를 어색해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준비했던 것 마냥 자연스러워지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로당이나 노인복지 시설을 이용하시는 것은 내켜하지 않으셨다. 노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어쩐지 당신에 대한 예를 갖추지 않은 느낌이실까? 나 또한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기에 생각은 켜켜이 쌓여만 갔다. 

    

"어린이 도서관은 있는데 왜 노인도서관은 없을까?
죽어라 열심히 살았는데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이분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으셨을까?"

서점에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런 문제들을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노년의 삶에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되고싶었다. 감히 내가 찾아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이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미래의 나를 위해서도 필요한 부분이다.


한번은 서점 밖에서 동네 어르신과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는데 70대에 접어든 그분이 말씀하시길, “늙으면 다 아파.” 늙으면 다 아프다는 말씀이 가슴에 콕 박혀 메아리쳤다. 100세 시대가 올 줄 몰랐다며 미처 노년을 준비하지 못한 채 노년을 맞이한 분들은 당황스러워 하신다. 가뜩이나 급변하는 시대에 얼마나 정신이 없으실까. 노인에 대한 인식개선도 필요하다. 죽는 날만 기다린다는 말씀, 죽지 못해 산다는 말씀, 한번쯤은 자살을 생각해봤다는 말씀....... 


이러한 생각들은 비단 경제적인 문제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이 들어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살아가는 이유가 하나쯤은 더 생기지 않을까?' 인생의 즐거움은 취미의 가짓수와 비례한다고 하지 않는가. 다행히 이러한 생각들을 실천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2019 인천 지역문화예술교육 기획 지원사업>이 그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사업설명회에서 나의 생각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  


서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지역의 어르신을 강사로 모신다던지, 지역의 치매센터에 수제 기록장을 만들어 기증하거나 손작업을 해 보시라고 뜨개실과 바늘을 기증하기도 했었지만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처음이라 긴 프로그램은 아직 자신 없었다. 그런데 이번 사업의 경우는 3개월짜리도 괜찮단다. 소수의 수혜자를 대상으로 해도 상관없단다. 어쩌면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사업계획서를 썼고 감사하게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주요 내용은, 엄마께 권해드렸던 감사일기를 쓰는 것이다. 날마다 감사한 일을 기록하며 일주일에 한 번 만나 '한주간의 일상과 가장 큰 감사를 나누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풍요로움과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자 직접 손과 몸을 써서 당신만의 의자를 제작하는 목공 과정을 넣었다. 1주일에 한 번씩 만나 나눈 내용은 기억 통장을 만들어 차곡차곡 저축 해 드렸다. 당신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는 내용을 담아 손 글씨로 '기억통장'에 저축 해 드리는 것이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3개월간 쓰게 될 감사일기는 습관이 되어 하루의 일과가 되길 바랐고, 당신이 손수 만든 의자에 앉아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이어진다면 더이상 바랄것이 없었다.

1주일에 한 번씩 만나 나눈 내용은 기억 통장을 만들어 차곡차곡 저축 해 드렸다. 당신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는 내용을 담아 손 글씨로 기억통장에 저축 해 드리는 것이다. 


늘 감사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굳이 일기를 써야 하냐며 감사일기 쓸 시간이 없다하시던 참여자는 100% 출석에 서점에 오는 날을 좋아하셨고, 공개 해 주신 감사일기를 보며 무척이나 행복했었다. 평생을 목회자의 아내로 살아오시면서 어디서도 할 수 없던 얘기를 하신다며 속이 다 후련하다 하셨고, 방구석을 탈출할 수 있게 해 줘서 너무 고맙다고도 하셨다. 또한 당신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당신만의 의자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매우 큰 자랑거리가 되셨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여전히 일기를 쓰고 계시다며 100일째를 마치고 공책을 바꾸셨다는 이야기, 만든 의자를 보여줬더니 여기저기서 부러워하신다며 언제 또 하느냐는 이야기로 후기를 들려주신다. 

그렇게 3개월간의 감사한 과정은 마무리 되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명대사를 인용한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낮 꿈에 불가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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