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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Jun 12. 2021

서점에서, 피아노 공연

기록을 찾아보니 2016년 9월. 

서점에서 그림책 「노란우산」의 작곡가와 피아니스트의 연주회가 있었다.


그분들과의 인연은 더 오래 전인 2007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와 함께 작은 공연을 본 뒤 공연 후기를 개인 블로그에 남겼는데 

그 글을 작곡가님이 보시고 댓글을 남겨주셨다. 

감사했고, 신기했다. 

공연이 너무 좋았기에 일기 쓰듯 쓴 글이었는데 

작곡가가 글을 남겨주시니 나 같은 일반 사람에겐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가끔씩 올리는 글에 흔적을 남겨 주셨고 이웃이 되었다.


어느 날, 마음이 몹시 힘든 때였다.

'사람들에게 과연 진심이란 게 있는 걸까?' 하는 물음을 던지며 혼자 울기도 여러 차례.

그런 속상한 마음을 안고 있던 어느날, 선생님의 연주회를 서점에서 하면 참... 따뜻하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포스팅을 보면서 였는지 선생님이 남겨주신 댓글을 보면서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분의 진심이 묻어나는 글을 보았기 때문일 거다.

글에는 말로 하는 것 이상의 힘이 있어 글로 옮기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니 생각을 그대로 두지 못하고 소근소근 댓글을 남겼는데 피아노가 있느냐는 답글이 올라왔다. 

피아노만 있다면 좋다고........

 

첫 번째 남겨주신 댓글보다 더 놀랍고 감사했으며 뛸 듯이 좋았다.

이런 분이 계시다니.......

그 말씀만으로도 실은 충분했다. 




아이가 아기 때의 일이다. 

기저귀 때문으로 보이는 발진 같은 게 보여 대학병원에 갔었는데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괜찮아요~ 약 처방할 것도 없고 그냥 가시면 돼요~"

남편과 나는 괜찮다는 말에 안도하며 "그냥 가라고? 이런 의사도 있네?" 하며 그냥 집으로 왔다.

선생님 말씀대로 그냥.


그런데 얼마 후 대학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진료비 결제가 안됐어요! "

하하하하하! 남편과 나는 그냥 가라는 말이 별 것 한 게 없으니 그냥 가라는 말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참으로 어리숙한 부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부부가 운영하는 서점에 작곡가분이 다녀가셨다. 그때의 사진을 들춰보면 너무도 허술한 모습인데 그런 모습을 보고도 선생님은 흔쾌히 공연을 수락하셨고 그 외의 다른 어떠한 질문도 요구도 없으셨다. 

피아노도 피아노지만 연주에 대한 대가를 어느 정도 지불해야 하는 건지 어리숙한 부부가 알 턱이 없었다. 그저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을 말씀드리니 연주자에게 주면 고맙다는 말씀만 덧붙이셨을 뿐이다. 

그 비용은 서점에서 진행한 문화프로그램의 예산 안에서 충당하는 거라 아마도 선생님들이 받으시던 금액과는 거리가 먼 약소한 금액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용은 생각도 하지 않으신 눈치였다. 


며칠 후 피아니스트와 통화하며 수락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더니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동일 씨가 한미서점 다녀온 날, 이렇게 얘기했어요. (참고로 두 분은 부부다.)

무척 이쁜 부부가 서점을 운영하는데 아이도 얼마나 예쁜지 몰라. 그곳에서 연주회를 했으면 하는데 하지 않을래? ....... 저는 그 이쁜 가족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흔쾌히 그러겠노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데 눈물이 목 아래까지 차올랐고 들키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


'동일 씨가 한미서점 다녀온 날.......'

여기까지 들었을 땐 뒷 이야기가 뻔하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환경이 열악하다던지, 너무 좁다던지.......


따뜻한 분들 덕분에 어리숙한 사람들한테, 어리숙한 공간에 꿈같은 일이 생겼다.





남편과 나는 가끔 이야기한다. 

"어느 날 문득 그때의 사진을 봤는데 말이야~ 우리 그분들께 정말 감사해야 해. 

공간의 상황이 너무 열악하고, 정리도 안되고 너무했더라."


그랬다. 

우리로서는 최선이었지만 여건이 안된 건 '우리의 사정'이다.

내가 피아니스트였다면, 내가 작곡가였다면, 아마도 수락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그런데 피아니스트는 고운 드레스로 갈아입기까지 하셨다. 그리고 아름다운 연주로 공간을 빛내주셨다.

비단,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지 않으셨더라도 그분들의 모습만으로도 이미 깊은 감동을 받았다.

사람으로 힘들었던 일들이 사람으로 씻겨졌다고 할까?


생각해보니 그분들의 아름다운 기운이 피아노 선율과 함께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들었으리라. 

오래된 건물 곳곳에, 

책장 사이사이에,

책들 하나하나에,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다시 한 번 작곡가 신동일 선생님과 피아니스트 신은경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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